오늘 읽은 책 :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모든 동화수업이 끝난 날, 신촌에서 첫 오프수업이 있었다.
수업의 대부분이 줌으로 이루어진 비대면 수업이었지만 수료증과 문집을 수령을 위해 마지막 날은 오프라인 수업으로 이루어다.
문집 건으로 한 번 다녀왔던 신촌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업 시작 전 미리 만난 문우와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찾은 곳은 '베이글 앤 커피하우스'라는 카페였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많이 올라와있던 카페라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
1층에 베이커리와 주문을 받는 곳, 테이블이 몇 개 있었고 2층엔 꽤 많은 테이블과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고고.
2층 계단은 조금 가팔라 조심조심 올라가야 한다.
내려갈 때도 조심조심.
올라간 곳에는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앉아 있었다.
운 좋게 마지막 테이블이 비어 있어 그곳에 착석하고 진동벨이 울리길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액자도, 환풍기도, 화장실 들어가는 문 마저 예뻐 보이던 마법.
라테가 올라오기 전에 읽으려고 가져간 [필경사 바틀비]를 한 번 찍어보았다.
여러 번역본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괜찮아 보였던 책이다.
필경사는 손글씨로 글을 적는 사람을 말한다.
대통령의 임명장을 쓰는 사람도 필경사라 불린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이 책은 소설세미나 교수님이 추천한 책이었는데 현재 합평을 받고 있는 작가님 역시 추천했던 책이다. 우연히 읽게 된 은유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에도 이 책이 나온다.
소설을 읽다 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그 허탈함, 황망함, 난간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 - 다가오는 말들 , p45
필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직장에서 필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바틀비의 행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이니까를 외치며 이 책을 읽었다.
또 다른 직원인 터키와 니퍼스의 등장도 재미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고집이 세다. 그 점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 높이는 듯하다.
화자 역시 이상한데 꽂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내가 고용한 이 말라빠진 빈털터리 인간에게 굴욕적으로 퇴짜 당할 만한 일이 또 없을까? 완전히 합당한 요구지만 그놈이 어김없이 거절할 게 또 무엇이 있지? p36
필경사 바틀비라는 책은 여러 출판사에서 발간했다. 창비와 문학동네에서도 나왔는데 나는 문학동네에서 나온 가로로 긴 판본을 읽었다. 번역의 차이는 없었지만 일단 사이즈가 다르다 보니 갖고 다니기엔 이 책이 더 작아서 편했다.
그림이 전혀 없는 책이라 재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 자체가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어떤 책이든 읽을 만하리라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거하는 바틀비의 흔적을 살펴보며 그동안의 괴이한 일들을 떠올린다. 말을 하려 하지 않고 딱히 드나드는 곳도 없다. 고향을 물어봐도,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말을 하는 바틀비의 고집에 문장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올라왔다. 주인공은 더하겠지?
떠나라고 하지만 떠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는 바틀비, 그럼 글을 베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나는 저 필경사와 관계된 나의 고통은 모두 운명적으로 먼 옛날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확신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쯤 되면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자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점점 가혹하고 특별한 방법을 찾는다. 결국 화자는 새 사무실로 떠나고 바틀비 혼자 텅 빈 방에 남겨지게 된다.
새로운 건물 주인이 바틀비를 쫓아내지만 바틀비는 늘 건물에 나타나 거처를 옮기지 않는다. 그 책임을 화자에게 묻게 되고 주인공은 바틀비를 찾아간다. 옮기기를 권하지만 또다시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를 만발하는 바틀비.
결국 건물주인에 의해 부랑자로 교도소로 쫓겨나게 된다.
화자는 바틀비를 찾아가지만 먹지도 않고 초췌한 모습의 바틀비를 보고 마음이 좋지 않다. 사식업자에게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해보지만 여전히 바틀비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벽 밑에서 이상하게 몸을 웅크려 두 무릎은 세우고, 싸늘한 돌에 머리를 대고 옆으로 누워 있는 초췌한 바틀비를 보았다. 그러나 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흐릿한 두 눈은 뜨여 있었다. p81
바틀비의 눈을 감겨주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부서에서 근무했던 말단 직원 바틀비의 심정을 생각해 보게 된 화자는 그를 떠나보낸 후 착잡한 심정에 빠진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민폐 끼치는 한 사람이 하나 있구나 로만 생각을 했으나, 그렇게 되기까지 바틀비는 많은 상처를 받고 사회에서 버림을 받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그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에는 <필경사 바틀비> 말고도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이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제목만 읽어도 익살스러움이 느껴진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씌어졌고 유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을 나타낸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문장이 수려하기 때문에 필사를 해도 좋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