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책 : 오로라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 최진영
강변북로를 타고 잠실로 가는 길은 멀고, 막히고, 막히고, 막혔다.
언제나 막힌다.
평일, 주말, 낮, 밤 할 것 없이, 언제나.
새벽은 좀 다를까?
이 날 간 카페는 <37.5 광진점>이다.
대기가 있는 줄 몰랐는데 굉장히 유명한 카페였고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웨이팅을 꽤 오랫동안 했어야 할 그런 카페였다.
맛난 브런치와 향긋한 커피냄새, 그리고 좋은 사람들.
또 좋은 책.
계속 앉아 있다 보니 조금 쌀쌀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은정선생님이 핫팩을 하나 건넸다.
초등교사인 은정샘에게 선택받은 핫팩은 귀여운 고래모양의 핑크 핫팩이었다.
집에 갈 때까지 내 허벅지에 두고 따뜻함을 계속 느꼈다.
라테를 마시고, 따뜻한 레몬티를 마셨다.
음식도 맛나고 차도 맛나고.
이 날 가져간 책은 최진영 작가의 [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나는 이 시리즈의 책들을 좋아하는 데 작은 가방에 쏙 들어가서 책을 미처 고르지 못할 때 들고나간다.
구병모의 [파쇄] 역시 위픽시리즈다.
최진영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된 건 [이제야 언니에게]라는 책을 통해서다. 출판사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서 읽게 된 이 소설은 일본소설만 읽던 내게 한국소설도 이렇게 청아하고, 재미가 있음을 알게 해 준 소설이라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최진영'이라는 작가파기를 하기도 했다.
2024년 2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새책.
천천히 읽어보았다.
보통 동화는 1인칭, 또는 3인칭 시점으로 쓰인다. 이것이 어쩌면 소설과 다른 점일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2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제주로 여행을 간 최유진의 이야기를 또 다른 화자가 전한다.
'혼자'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상태가 존재한다. 너는 너에게 가장 적합한 혼자의 상태를 찾고 싶다. 혼자인 채로 사랑하고, 실망하고, 단념하고, 이별하고 다시 사랑하고 싶다. 사랑에 이기거나 지지 않고 화합하고 싶다. p12
친구가 예약해 뒀던 숙소에 머물게 되는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소설을 읽으며 또 최유진에 빙의해 본다. 위약금이 아까워 다른 이를 찾았으면서 오롯이 내가 원해서 여행을 떠나게 된 양, 말하는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을 보며 나도 공감을 했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숨은 뜻을 찾으려다 결국 네 문제를 찾아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문제를 찾아본다. 이건 자존감과는 또 다른 사고다.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아버리는 것일까?
불쾌감을 결국 내 탓으로 돌려버리고 마는 그런 습성.
3층에 위치한 숙소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리고 앞에는 두 달 동안 머물기 위해 꾸린 짐이 든 트렁크가 있다. 답답함이 끊임없이 끓어오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설의 묘미.
현관문을 여는 동시에 꼭대기층의 불편함은 달아난다.
검은 돌과 하얀 파도.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과 비상하는 새. 창을 연다. 태양과 수평선의 거리는 한 뼘 정도. 바다의 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방이다. p22
갑자기 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가방하나 둘러메고 떠나고 싶다.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묵고 싶다.
바다를 보자마자, 마음이 사르르 녹는 유진의 모습을 떠올리자 나도 미소가 지어진다.
전화를 받지 않을 때마다 돌을 쌓는다. 끝까지 읽지 않았을 때 이건 무슨 의미일까? 고민에 빠졌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필사하고 싶어지는 문장을 만난다.
어느 순간 '최유진'에서 '오로라'로 변하고 '오로라'에 어울리는 역할을 해낸다.
발코니에 떨어진 새를 처리하는 남자와 여자. 여기까지 읽었을 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진 않을까 하며 기대하면서 읽었다.
그녀에겐 2번째 제주도 여행 이후 혼자였으니까.
지난밤 갉아낸, 조각낸, 떼어낸 최유진의 조각들. 긁어낸 공간만큼 텅 비어 간다.
하늘 가득 다채로운 빛깔의 노을이 펼쳐진다. p61
사랑을 멈춘 사람의 행방은 묘연하다. 어디로 갔을지, 갑자기 사라지면 사랑을 받은 당사자는 두려울 것이다. 행여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헤어짐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명확해진다.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 더더욱 숨으려 할지 모르겠다.
커다란 돌, '사랑'이 여기에 있다.
이곳에도 사랑이 있다.
작가만의 산뜻한 문체, 먹먹함이 느껴지는 문장, 흔하지 않은 소재가 어우러져 시집 같은 소설을 읽었다.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공범이 되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