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 원도
주말 동안 일산에서 춘천으로 픽업을 해야 했다.
첫날은 큰 아이를 보내고 두 남자와 문학관을 들렀고, 둘째 날은 나만 춘천으로 가 첫째와 친구,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토요일이어서 일찍 출발했다. 막혀서 늦어지면 우리 아이들만 남는다는 생각에. ㅋㅋㅋ
밟았다.
12시 반까지 오시면 됩니다, 했지만 나는 자유를 만끽하고픈 마음에 7시 반에 출발을 했고, 10시쯤 도착해 소양강댐을 한 바퀴 돌고 카페를 검색했다.
근처에 괜찮은 카페는 늦게 열거나 좀 떨어진 곳이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고 상위에 뜨는 카페에 왔다. 11시 오픈이라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 <슬로우데이>는 한옥형태의 브런치 카페였다.
차 안에 있다 보니 두 아이와 그들의 엄마가 각자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이어 두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카페로 들어갔다.
이런, 11시 전이어도 들어갈 수 있었던 건가?
서울과 다르다. 그전에 똑똑 두드리면 기다리세요 하던 경기도의 모 카페도 생각나고.
암튼, 나는 좀 더 구경을 했다.
마당에는 예쁜 꽃들도 심어져 있고 아이들을 위한 모래놀이 공간도 있다.
그래서 아이 엄마들이 오픈 런을 했구나.
외부에도 테이블이 있어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았다.
나는 카페 안쪽,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았다.
주문한 음식은 프렌치토스트와 따뜻한 카페라테.
오늘 읽은 책은 유명한 작가 최진영의 [원도]이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을 전면 개정하여 나왔다.
초판 발행날짜는 2013년 12월 24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24년 3월 개정판이 나왔다. 원래 작가가 원한 책제목으로 이름을 바꿔서.
책표지가 미술작품처럼 예뻐서 어디든 어울린다.
고가구 같은 테이블에 올려두니 또 그것대로 멋스럽다.
이 날 가져갔던 책이 3권 정도 된다.
두 권은 작법서였고, 한 권이 [원도]다.
작법서를 읽다가 음식이 나오고부터 [원도]를 읽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읽는 것은 좋지만, 쓰기까지는 힘들어서.
소설의 시작은 '원도'가 아이일 때 모습을 그렸다. 정말 떼쟁이 아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어른'으로.
여관방에 혼자 숙박을 하면 주인은 의심하게 된다. 행여나 나쁜 마음을 먹게 되면 그 뒤처리를 감당해야 하니까. 결국 걸린 원도에게 주인은 돈을 건네고 말한다.
"아저씨, 살아....... 이 밤만 버텨. 생각하면 안 돼."
원도는 정말 그럴 마음으로 여관을 갔던 것일 테지?
원도의 주변 인물이 문제일까, 원도 자체의 문제일까?
어둡다. 불투명한 먼지가 이 사람을 덮고 있는 것 같다.
폭주하는 온갖 감정. 뒤섞이는 기억의 파편. 시소 위 몸이 한쪽으로 기운다. 떠올려선 안 된다. 위험하다. 원도의 기억력은 재앙과 같다.
기억할 수 없는 것.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 원도를 꿰뚫어버린 것.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내버린 것. 상처는, 징그럽게 곪다가도 자연과 약속한 시간을 정직하게 지키면, 새로운 살로 그 구멍을 메운다. 메워진 구멍은 고통을 견딘 대가다. p66
뭐랄까? 자꾸 파고든다. 괜찮을까? 영화를 볼 때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는다. 책을 읽을 때 눈을 감을 순 없다. 상상이 되지만 계속해서 눈으로 글씨를 좇는다.
이 소설은 공포소설이 아닌데, 원도의 삶이 두렵다.
장민석과 원도의 만남은 질긴 악연이었다. 왜 이런 운명을 만들어야 하나?
진품과 모작을 구분하는 서명 같은 것. 미세한 질감 차이. 점 하나 혹은 선 하나의 차이. 사소한 차이가 전체를 바꾼다. 뒤집는다. 당신과 나를 구분 짓고 갈라놓고 다다를 수 없게 한다. p91
원도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원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죽은 아버지도, 산 아버지도, 어머니도, 장민석도.
그리고 군대 선임도 폭력을 휘두른다.
원도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다. 모두가 원도에게 기억을 강제했다. 원도를 뒤흔들고 지배하여 결국 파멸시켰다. 기묘한 작용으로 원도의 삶을 간섭하면서도 기어이 혼자이게 했다. p174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까?
기억을 털어내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상처만 생긴다. 죽기만을 바라는 원도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줬다면? 믿을 수 있는 아버지가 생존했다면?
소설은 뒤로 갈수록 알 수 없는 말들이 나온다. 원도에게 어려운 말이었다. 산 아버지가 친아버지고, 죽은 아버지가 새아버지라고 한다. 원도는 새아버지가 죽고 난 후 친아버지가 나타난 순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면서, 믿으라는 명령과 너는 왜 죽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검은 양복을 꺼내 입을 때마다 원도는 결국 한 점으로 수렴되는 수많은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p181
장민석의 죽음으로 원도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어본다. 죽은 아버지를 누가 죽였냐고 묻는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듣고 원도는 어머니를 쓰다듬고 안긴다.
뭔가 계속해서 불안이 나타나는 원도의 모습에 나 역시 불안하다. 더 큰 사건이 터질까 봐.
이 책을 읽고 미처 다 읽지 못한 [단 한 사람]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만족스럽다'는 글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 뒤로 남겨진 사람의 삶이 과연 '만족 스러'울까라는 생각을 하며 먹먹해진 기분을 달래려고 작가의 다른 책을 뽑았다.
전작 [오로라]를 읽을 때는 주인공에 매료되어 제주도의 삶을 꿈꾸게 되었는데 이 소설 [원도]를 읽고 나니 지금 이대로의 삶도 충분이 매력적이구나 싶다. 누군가에겐 내 삶이 꿈꾸고 싶은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간해 준 출판사와 작가에게 감사를. (중고도서가 몇십만 원에 팔린다는 소식에 작가가 다시 내기로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