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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Jun 03. 2024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

오늘 읽은 책 : 틈 - 서유미

틈이 보인다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 서울여행을 떠났다. 그곳 지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대표님을 선두로 10 벤져스는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부암동은 어떤 곳일까? 굉장히 한적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지만 주차공간이 부족하고 (거의 없고) 개인 카페가 많으며 문학과 관련된 박물관이 더러 있었다.


맛난 점심을 줄을 서서 먹었다. 줄 서서 먹느니 바로 옆집을 가겠다는 내 이념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마성의 냄새에 이끌려 줄을 서고야 말았다. 작성한 명단에 2번째였기 때문에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가지튀김이라는 독특한 음식을 맛보고서야 이래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구나 감탄을 했다.


약간의 느끼함을 잡아줄 커피가 필요했다.

씁쓸하지만 고소하고 시큼한 커피가 당겼다.

우리 박 대표님은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이곳으로 데려갔다.

청와대 재임당시 즐겨 마셨다는 '문블렌드'가 있는 이 카페로.

바로 <클럽에스프레소>라는 곳. 커피값보다 주차비가 더 나온다는 이곳.


가정집을 개조한 것일까? 외관은 가정집으로 보였다.

풀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주차장이 좁다.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시 올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리라 생각을 하며 들어갔다.



뭔가 굉장한 것들이 모여있다.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커린이가 이런 곳에 당도하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양한 원두, 기구, 차가 담긴 병들.

선반 곳곳에 커피와 관련된 용품들이 가득하다.



텀블러를 가지고 오는 방문객들을 위한 세척대도 따로 있다.

이건 좀 감동이었다.

물만 담아도 눅지근한 냄새가 남는데 여기서 잠깐 서서 세척한 후 커피를 다시 담으면 고소한 냄새가 다시 풍기겠지?



드디어 만난 문블렌드!

안녕?

다양한 원두들 틈에 뿅 하고 보이는 '문'. 정말 반갑습니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되는데 라테를 선택하면 원두를 선택하라는 화면이 나온다.

당연히 문블렌드 아니겠습니꽈?

따뜻한 라테로 주문했다.



캡슐도 판매를 했다.

당연히 문블렌드도 포함한.

곧 다시 가서 사 올 예정이다.


1층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궁금했다. 2층은 어떤 곳일까?

밖에서 본 2층과 안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은 어떻게 다를까?



굉장하다.

캡슐커피 하나 내려 거품기에 우유거품을 만든 다음 연유를 살짝 뿌려 먹는 정도의 귀찮음을 고수하고 있는 내게, 2층이라는 공간이 주는 '헉'함은 대단했다.

커피와 관련된 기구들이 이렇게도 다양한가?

근데 또 예쁘다.


가구도 직접 만들기도 한다고 들었다.

짝이 맞지 않아 보이는 의자들이지만 나름 통일성이 보인다.

국민학교 시절 앉을 수 있었던 책상 위로  보이는 풍경은 역시 내게 추억을 내비쳤다.


2층 창가 너머로 보이는 집들이, (어쩌면 가게들일 수도 있지만) 어릴 적 동네를 뛰어놀던 집들과 흡사했다. 반가운 마음에 계속해서 그 집들을 보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가지고 간 책을 책상 위에 올렸다. 

두 테이블 사이의 틈이 가지고 간 책 []과 만났다. 

예쁘다.



이번에 읽은 책은 서유미의 []이라는 소설이다. 

아주 얇은 소설책이라 도서관에서 보고 냉큼 빌렸다. 

얇은 책을 고르는 이유는 들고 다니는 백에 넣고 다니며 잠깐씩이라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읽으려고 고른다. 요즘에는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다 보니 확실히 가방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종이를 넘기는 행위, 휴대폰을 향해 있는 내 눈보다는 책을 향하고 있는 눈을 더 보고 싶어서다.

(쯧. 겉멋만 들어서는. -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



세 여자가 목욕을 하고 나와 떡볶이를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굉장히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가족이 아닌 남과 함께 목욕탕을 간 것은 일상적이지 않다. 

셋이 모이게 된 이유가 그 뒤로 서술된다. 


화자인 여자는 모두들 등교하고 출근한 아침 은행을 들렀다가 남편의 차 안에 다른 여자가 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고 그 일로 평화로웠던 일상이 바뀐다. 

보통 아이 친구의 엄마로 만난 사이는 누구 엄마로 불린다. OO엄마 또는 OO맘, OO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욕을 하면서 이들은 다시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김승진, 정윤주, 임정희라는 자신의 이름들을 찾고 그렇게 부르고 불리며 거의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목격한 윤주, 홧김에 남자를 만나던 승진, 담배를 끊지 못해 사우나 흡연실을 이용하는 정희의 삶은 목욕탕에서의 만남 이후로 바뀐다.


지금 바꾸겠다고 마음먹으면 ㅈ어말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어. P106


세 사람 모두 생김새도, 성격도 다르다. 하물며 목욕탕에서 마시는 음료 취향도 다르다. 

벌거벗은 몸과 화장을 지운 맨 얼굴로 만난 사이, 진실게임을 하듯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했다. 서로 공감하고 이해를 하게 되면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온전히 삶 자체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조만간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간이 된다고 한다. 

책의 덮개는 사라진 채 초록빛 표지만 남아 있던 얇은 책은 곧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부암동이라는 곳은 걷기 좋은 동네다. 

걷다 보면 웰시코기가 반겨주고, 새로운 글귀를 볼 수 있다. 


<윤동주 문학관>이 보여 잠시 들렀다. 

좁디좁은 공간에 갇혀 문학적 탐색을 한 그에게서 아픔이 전해져 온다. 

가느다란 길을 걸어 좁은 통로를 들어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통로는 우물이었을까?

그 우물보다 좁은 곳에 갇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주 조금씩 들어오는 빛을, 나는 원 없이 즐기고 있다. 

선대의 문학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통해 후세에서는 그 문학을 함께 울고 웃으며 즐기고 있다. 

아픔을 밟고 일어나 웃음을 일으켜 낼 수 있었구나 싶다. 

우리 이후의 후세대들에게 길이 남을 문학 작품 하나 남기고 가고 싶다. 

내 삶이 아닌 후세대대들의 삶을 위한 작품 하나. 


꿈도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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