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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Oct 29. 2024

기술자들

헤이리 르시랑스


언젠가 파주 헤이리에 한 번 들른 후로 자주 오게 된다. 

널찍한 주차장이 가장 큰 장점이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설치물, 미술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다. 

이곳 카페 <르시랑스> 역시 미술관을 겸하고 있어 궁금했다.


 

굉장히 넓은 공간에 걸어가는 곳마다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카페 주인이 꾸준히 수집한 작품들이라고 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할까? 

곁을 지나갈 때 최대한 떨어져서 조심조심 걸어 다녔다. 



의자에 새겨진 얼굴을 찾았을 땐 와, 하고 감탄했다. 

이런 작품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다 돌아보지 못했을 정도다.



야외에도 자리가 꽤 많았다. 

우리가 왔을 땐 분명 빈자리들이 많았으나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그 자리는 주인을 찾아 점점 하얀색에서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많은 자리들이 있었다. 

우리가 골라 앉은 곳은 퇴식구 바로 옆 자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적게 들렸고 다 마시고 나갈 때 편할 것 같았다. 




이곳에서 꺼내든 책은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 작가의 신작 [기술자들]이라는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기술자들>등 총 7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기술자들>에 나오는 기술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바로 부르고 싶다. 

요즘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소위 '눈탱이'를 맞았다는 후기가 자주 올라오고 있어서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집에 사는 나로서는 참 암담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이것저것' 다 잘 해내는 조가 신기한 최. 둘은 환상의 콤비다. 

신혼부부가 인테리어 시공 후 마음에 들지 않자, 자신들이 직접 셀프시공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망치게 되자, 이 '대승시공' 업자들을 부른다. 

결과는 완벽한 마무리에 서비스까지 받았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현실에서 만나고픈 기술자들이다. 



세 번째 실린 작품인 <황금 꽃다발>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은 형제를 두었다. 큰 놈은 박사학위에, 유학도 다녀왔다. 유학 갈 때 결혼을 해서 간다고 돈을 달라고 하고선 아버지 장례식에도 안 온 녀석이다. 

작은놈은 결혼도 못하고 하는 일마다 잘 안되어 엄마와 둘이 시골 고향으로 내려온다. 


옆집 사람하고도 인사하지 않는 도시에 살다가 언덕 너머의 일도 내 집 일처럼 참견하는 동네로 오니 그제야 고향이 내려온 게 실감 났다. p75


나는 언젠가 나이가 들어 아이들이 다 독립하고 나면 시골에 가서 글 쓰며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남편도 같이. 

주인공이 이동해 간 곳의 배경이 시골이라 좀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시골집을 마련 후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갑자기 큰 놈과 기자가 들이닥친다. 알고 보니 둘째 놈이 형이랍시고 때 되면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고. 

큰 놈이 사실인 듯 아닌 듯 쓴 글이 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나마 잘 먹어서 해 먹였던 동치미국수가 가난으로 상징되고 있었다. 


집안일 한번 하지 않고 때맞춰 학교나 다녔던 놈이, 허이고 기도 안 찬다. p83


작가의 구성진 문체가 <토지>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시골이 배경이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온갖 거짓말로 사는 큰 놈의 태몽은 '고추'에서 '황금 꽃다발'로 바뀐다. 하지만 이 '황금 꽃다발'은 작은놈의 것이었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마음이 풀렸다. 이렇게 끝나기엔 작은놈이 너무 안 돼 보였는데 이 꽃다발이 작은놈의 것이어서 다행이었다. 


<뼛조각>은 30분 걸리는 수술이면 사라지는 무릎 뼛조각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30분만 참으면 되는 수술인지 의아할 정도로 그 과정이 길었다. 

2박 3일간의 입원이 필요했고 1.5센티미터 뼛조각을 제거하고 5센티미터의 흉터를 얻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버지와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세입자>를 읽으며 너무 저렴한 부동산은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화자가 불쌍해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보증금도 날리고(그 보증금은 엄마가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집도 없어진(과연 정말 집주인은 돈을 넣어놨을까?) 화자가 불쌍해도 너무 불쌍하다. 


다른 소설들도 괜찮았다. 괜히 '김려령'일까?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건 행복하다. 

아직 건재하다는 뜻이니까. 

좋은 작품 꾸준히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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