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헤이리 블루메
10월엔 연휴가 정말 많았던 달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남편이 없는 휴일에는 대체적으로 엄마의 의견을 많이 따라주는 편이라 내가 원하는 대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에 가면 자신들이 읽고 싶은 만화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간혹 게임도 할 수 있으니.
파주 헤이리에 있는 <블루메 카페>에 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 연인들이 많았다. 주차장도 거의 꽉 찰 정도로.
아이들과 동네 산책하듯 걷다가 발견한 카페다. 외관이 정말 멋져 보였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나 시간이 좀 지나자 금방 자리가 다 찼다.
단체로 오면 작은 룸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었는데 그곳에는 미술관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간 날은 휴무여서 카페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는 늘 먹던 대로 카페라테, 행복이는 달고나가 올려진 셰이크, 넝쿨이는 애플주스를 골랐다.
커피가 고소하고 깊은 향이 났다.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편히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조금 오래 있었나 싶을 무렵, 아이가 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무화과로 골랐고 아이스티를 추가로 주문했다.
이곳 디저트 음식도 참 맛난다.
행복이가 산 오리는 사진 곳곳에 등장한다.
나도 하나 살 걸.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 찍을 때 옆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우리는 이곳에 갔다가 카페 앞에 있는 <수비>라는 라멘집에 갔다.
라멘을 먹은 영수증을 들고 <블루메>에 가면 할인해 준다.
다음에는 그렇게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정소연 작가의 [이사]라는 SF소설이다.
이 소설집에는 <이사>, <재회>라는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뽑아 든 책이었는데 먹먹함과 감정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이사>는 동생의 치료를 위해 다른 행성으로 이사 가려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하는 사실에 슬퍼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사는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p15
아이가 상당히 성숙한 마음을 지녔다.
성인이 된 지금도 가족을 위해 내 꿈을 포기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데 말이다. (건강과 관련되어 있다면 포기할 수도 있겠다 싶다만.)
우리가 보는 자주색 하늘 너머에 있는 우주라는 것은 새까만 어둠이 아니라 우주선이 다니는 길이다. p16
이 소설집은 굉장히 얇다. 감동은 책의 두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몰려와 좀 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사 가기 싫어도 혼자 여기 남을 수 없는 어린 나이지만, 내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에 부모님 앞에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할 만큼은 다 큰 나이였다. p32
너무 슬프지 않나?
부모님에게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에도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니.
K장녀라 그런지 저 마음이 또 이해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 작품은 <재회>.
우등생 수미는 시험장에서 탈락하고 만다.
탄탄대로를 보장받았던 그 자리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항로를 이탈해 여객선을 구하다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5년 동안 공부한 것이 물거품이 되었고 사랑하는 연인은 그녀를 떠났다.
시간이 흘러 남자친구였던 형진이 수미를 찾아온다.
여객선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자녀가 형진이가 진행하는 수업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아직 잊지 않고 있음을 전한다.
학교로 돌아오는 비행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괜찮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일단 저지르긴 했는데, 옳다고 생각했으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안 괜찮아서, 나이 들어 요양원에 앉아 기계가 먹여 주는 죽을 꾸역꾸역 삼키며 희미한 정신으로 그때 괜한 짓 했다는 후회만 간신히 부여잡고 늙어 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했어. p86
사람을 구하고 난 후의 불안감은 구하지 않는 이상 모를 것이다. 목숨을 구해줬다. 그 뒤의 상황은?
현실에서도 좋은 일을 하고 되려 욕을 먹기도 한다.
더 이상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도약 사이사이 불쑥 형진을 사로잡던 공허를, 때때로 아무 이유도 없이 우주선 주변을 거듭 스캔하던 형진의 두려움을 수미가 모르듯이. p89
정소연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남유하 작가의 강연을 들었을 때다. SF작가로 유명하고 추천한다고 했다.
이 작가의 소설은 차갑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다.
흔한 SF소설처럼 읽다가 덮고 싶지 않았다. 물론 소설이 짧아서 후루룩 읽은 것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앞에 이 작품을 마중물 삼아 [옆집의 영희 씨]를 읽어보라고 한다.
네, 읽어보겠습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