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시절 나의 양식
‘과자를 먹느니 과일이 좋지’
‘빵보단 쌀로 만든 떡이 좋지’
중얼대며 마트로 출발을 한다.
예전에는 마트에 가면 분명 쌀을 사러 왔고 반찬거리를 사러 왔음에도 결국 내 시선을 빼앗는 건 과자류들이었다. 혼자 자취를 할 때면 밥을 차려 먹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지, 또 설거지는 어찌할 거며 말이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내 곁에서 쉽게 자신의 배를 갈라 단짠의 행복을 주는 과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세 끼 정성스럽게 챙겨주시던 그 수고가 얼마나 감사한가? 집을 떠나야 그 고마움을 아나 보다. 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서 과식하며 꺽꺽 되었다. 한 숟갈이라도 더 내 위에 저장시키고 싶었다. 물론 반찬의 감칠맛은 적절한 미원이 엄마의 손을 거치면서 진짜 손맛이 된다. 엄마도 삐쩍 말랐다며 많이 먹으라고 강요했다.
직장을 다녀보니까 말이다.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하면 녹초가 된다. 그저 빨리 드러눕고 싶다. 차가 없었기에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은 나에게 극기훈련 같았다. 만성피로증후군을 달고 사는 나로서는 나를 위해 꼬박꼬박 삼시 세끼를 차리는 것도 일이다. 퇴근하면 빨리 씻고 시체처럼 드러눕고 싶다. 누가 내 입에 밥을 넣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특히 아침을 굶는 일이 허다했다. 당장 입에 간단하게 넣을 수 있는 건 과자였다. 오전 10시쯤 되면 허기가 져서 하늘이 노랗다. 늘 아침을 못 먹고 오는 건 나뿐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서러움이 밀려오곤 했다.
사실 아침을 못 먹는 이유 중 하나가 입맛이 없어서고 불면증 때문이기도 하다. 뭐 그리 예민한지 밤에 잠을 설친다. 몸은 피곤해서 방바닥에 척척 들러붙어 있는데 내 의식은 제 혼자 광란의 밤을 보낸다. 그러다 내 꼴이 왜 이러나 싶어 혼자 또르르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콧구멍을 벌렁 된다. 그러다 코가 막히면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어두운 방에 혼자 청승맞은 검은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직장에서 배가 고파 너무 힘들면 그래서 죽겠으면 슬면서 과자를 조심히 뜯는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 물건을 줍는 척하면서 재빨리 과자 하나를 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 씹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고개를 숙일 때 의자 소리를 일부러 삐걱대면서 재빨리 저작근 운동을 한다. 그때 내 모습을 거울로 비춰 보았다면 피가 쏠려 뻘겋게 변한 얼굴이 꽤나 웃기게 보였을 것이다. 라바나 당나귀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았는가? 내 입 모양도 사뭇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가끔은 군대 갔다 생각하고 화장실에서 과자(특히 초코파이)를 먹을까? 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것만큼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쿨의 ‘더 이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보는 눈이 너무 많기에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조금씩 요령도 생기고 과자도 슬슬 피하게 되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일부러라도 먹으려 한다. 힘들었던 시절, 내 인생의 보릿고개 시절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 시절에 내 입에 들어가 근근이 버티게 해준 과자. 이제는 즐기지 않지만 힘들었던 사회 초년생 시절, 나에게 쉽고 편히 다가와 손을 잡아 주었다. 과자를 무시하지 말라. 누군가에겐 한때를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너도, 나도 마스크를 쓰기에 마음 놓고 몰래 과자를 씹어 삼킬 수 있게 되었지만, 과자를 잘 먹지 않는다. 힘들었던 시절 과자든, 책이든, 뭐든 간에 나에게 힘이 되고 버티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잊어버리곤 한다. 뜯어놓고 맛이 없다고 방치된 과자를 보면 내 마음은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사회 초년생 시절, 얼마나 젊고 예뻤을까 싶다. 힘들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때 그대로 내가 어떻게든 버티어 냈다는 것이다. 악악대며 버텼던, 호호되며 버텼던 간에 배가 고프면 과자라도 입속에 디밀어 주었다는 것이다. 굶지 않고 뭐라도 먹었으니 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확신한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나이든 간에 힘들어도 나를 버티게 해주고 힘이 되게 해주는 천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밥을 못 먹어서 간편하게 씹어 삼킬 수 있는 것이 과자뿐이라서 서러운 마음으로 먹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과자가 그렇게 큰일을 한 것이다. 고맙고 참 감사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서럽던 것도 고마운 것이 되고 힘들었던 것도 감사한 것이 된다. 지금이 나를 버티게 해주는 고마운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앞으로도 고마운 천사들은 내 인생을 밝게 비춰줄 것이다. 그것이 힘들어도 버티고 잘 살아갈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