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2022년 8월 26일,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9월 2일까지 일주일 동안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다.
담당 교수님은 “이번 추석이 어머님의 마지막 추석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번 추석은 병원보다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거라며, 퇴원을 권하셨다.
이번에는 우리 집이 아닌 엄마의 집으로 모셨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엄마 곁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아빠가 요양원에 계셔 아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지만, 아무리 딸이 잘해도 자기 집만큼 편안한 곳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퇴원할 때 처방받은 경구용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엄마는,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갔다.
의식이 또렷할 때도 복부 통증이 자주 찾아왔다.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식은땀을 흘리며 배 전체가 꼬이고 배 속을 후벼 파내듯이 아프다고 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 진정이 되었고, 어떤 날은 약조차 듣지 않아 배를 움켜쥐고 침대에 엎드린 채 그 고통을 홀로 견디셨다.
엄마는 등을 편하게 펼 수 없을 만큼 아파했고, 호흡곤란으로 숨쉬기가 어려운지 똑바로 누워서 자지 못하고 등을 구부려 침대에 엎드려서 자거나 침대 등에 기대어 앉아서 겨우 잠을 자기도 했다.
진통제를 먹은 뒤에는 약에 취한 건지 잠든 시간이 길어졌다.
깨어 있을 때도 무기력했고, 가끔 멍하게 있다가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동작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제 아빠라는 존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빠와 동생의 존재는 잊은 듯했다.
식사량도 급격히 줄었다. 억지로라도 잘 먹어야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던 분이, 밥 한 공기에서, 반 공기, 그 절반, 또 절반으로 줄더니 마지막엔 한 숟가락도 힘들어하셨다.
그 무렵 나는, 혼자서는 엄마를 더 이상 케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언니는 추석 연휴 동안 호스피스 병원에 자리가 나는지 매일 확인해 줬고, 안양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입원하기로 했다.
집에서 보낸 연휴 마지막 날, 엄마는 거의 음식을 드시지 못했고, 과일이나 식혜 같은 음료만 간신히 넘기셨다.
급격히 음식 섭취가 줄어들자 소변량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다니던 엄마가 이제는 하루 두세 번, 나중에는 한 번만 보게 되었다.
그와 함께 발과 종아리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불편하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점점 부어가는 다리가 무섭고 걱정스러웠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매 순간이 두려웠다.
엄마가 잠들면 숨을 쉬고 있는지 습관처럼 확인하며, 무서웠던 밤들을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