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추석 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낸 후 바로 다음날, 엄마의 통증은 더 깊어졌고 의식은 자꾸 희미해졌다.
2022년 9월 13일 화요일, 나는 마침내 엄마를 모시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가 이곳이 어떤 병원인지 알고 계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의식이 돌아올 때면 “병원 안 간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 한 마디가 내 발목을 붙잡았지만, 나는 “집에서는 통증 조절이 안 되고 식사도 못 해서 안 돼” 하고, 거의 아이를 달래듯 말씀드렸다.
간신히 모시고 온 호스피스 병동.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가 한 달은 버텨줄 거라고 믿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보호자가 머무를 수 없는 곳이었다.
입·퇴원 때만 옆에 있을 수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환자와 간병인, 그리고 의료진에게 맡겨야 했다.
몇 달간 이어진 간병으로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엄마를 병동에 두고 거의 보름 만에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웠을 때, 그 낯선 고요와 안도감,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동시에 찾아와 내 마음을 괴롭혔다.
9월 13일 (화) — 임종 D-6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선 순간, 기분 탓인지 공기마저 다른 냄새를 품고 있었다.
소독약 냄새에 묘하게 섞인, 오래 눌러앉은 고요와 슬픔의 냄새.
엄마는 물 한 모금도 삼키기 힘들어하셨다.
폐전이, 간전이, 늑막전이, 복막전이... 병명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숨은 짧아졌다.
늑막 전이로 폐 속에 악성 흉수가 차오르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마치 모래를 삼키는 듯한 거친 소리가 났다.
의사들은 더 강한 진통제, 결국 모르핀을 권했다.
투여량은 조금씩 늘어갔고, 그와 함께 엄마의 혈압은 내려가고 의식은 멀어졌다.
침대 위 엄마는 눈을 감은 채,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사람처럼 가수면 상태를 이어갔다. 그 숨결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두려워, 나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9월 14일 (수) — 임종 D-5
아침이면 간호사실로 전화를 걸어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하세요.” 그 말이 이어질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간병인의 도움으로 잠시 통화를 하니, 엄마는 “퇴원시키러 오라”며 화를 내셨다.
평생 조용한 성격의 뭐든 참는 분이셨는데, 그날은 어린아이가 된 듯한 목소리였다.
동생이 제부와 함께 찾아갔지만, 그 앞에서도 엄마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물조차 삼키기 어려워진 몸, 염증 수치와 콩팥 기능은 나빠졌고, 칼륨 수치까지 떨어졌다.
간호사는 호흡곤란이 심해지면 모르핀과 수면제를 써서라도 잠들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모르핀의 부작용이 두려웠지만, 그 약 없이는 엄마가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그 두려움조차 사치였다.
9월 15일 (목) — 임종 D-4
어제저녁까지 60대였던 혈압이, 아침엔 90대로 올랐다고 했다.
혈압이 조금 오르자 엄마는 간병인에게 물었다고 했다. “태평동이 가까워요? 거기까지만 데려다주면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태평동은 엄마가 50년 넘게 우리 삼 남매를 키운,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 기억 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건강하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엄마의 식사는 수요일 아침, 한 숟가락이 마지막이었다. 그마저도 토해내셨다. 이제는 수액만이 엄마의 몸을 채웠다.
9월 16일 (금) — 임종 D-3
통증이 심해 모르핀을 두 번이나 맞으셨고, 오후엔 24시간 들어가는 무통 주사가 연결됐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줄었지만, 혈압은 여전히 70~80대. 나는 내일 오빠와 함께 면회를 예약했다.
병실 문을 열면 들려오는 기계음과 희미한 산소의 냄새 속에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그 생각만 반복했다.
9월 17일 (토) — 임종 D-2
아침 일찍 오빠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힘겹게 “집에 가자”라고 했다.
며칠 전만 해도 발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수액과 소변 배출 덕분인지 부기는 많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벽엔 폐전이로 인한 호흡 곤란 때문에 “살려달라”며 소리치셨다고 했다.
그날 엄마는 눈을 뜨기 힘들어했고, 말도 가늘게 끊겼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셨다.
면회 시간이 끝나 인사를 하자, 대답은 없었지만 그 손끝이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가지 말라’는 말 대신 같았다.
9월 18일 (일) — 임종 D-1
어제, 병원에서 엄마를 보고 돌아와 요양원에 있는 아빠를 뵈었다.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아빠와, 병실에서 고통에 잠긴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 용기도 나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9월 19일 (월) — D-Day, 오후 4시 45분
아침부터 이상했다. 매일 하던 전화를, 오늘은 손이 떨려 걸 수 없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오후 1시쯤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호흡곤란이 너무 심해 산소 호흡기를 달았습니다. 오늘 임종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임종실로 옮기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고, 거리가 멀면 올 준비도 하라고 했다.
그때 병실에 있던 공기, 창문으로 스며든 흐린 빛, 그리고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낮고 일정한 기계음.
이 모든 것이, 엄마와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으로 나를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