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한 30분쯤 지났을까.
엄마의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가래 끓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고 했다.
의료진은 엄마를 임종실로 옮기겠다고 했고, 그 말은 이제 곧 마지막 시간이 임박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서둘러 오빠와 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일산에서 안양까지 달려가야 했지만, 월요일 오후의 도로는 끝없이 막혀 있었다.
가까워질 듯 멀어지는 길 위에서 초조함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도착하지 못했다.
엄마는 오후 4시 45분, 내게 마지막 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숨을 거두셨다.
내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5시 15분.
차 안에서 전화기를 통해 들은 엄마의 임종 소식은 내 숨통을 조여왔고, “겨우 30분 차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온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마지막 순간 엄마 곁을 지킨 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동생 부부였다.
동생은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몇 번이나 울부짖듯 내 이름을 불렀다.
“언니, 빨리 와… 제발...”
그 목소리에는 애타는 간절함과 두려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동생의 전언에 따르면, 엄마의 호흡은 이미 거칠었고,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르렁거리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에는 입가에 하얀 거품이 맺혔다고 했다.
그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동생은 간호사를 불러 거품을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산소호흡기를 잠시 들어 올려야 했고, 바로 그 순간 엄마의 호흡이 멎어버린 듯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이미 안치실로 옮겨질 준비를 하고 계셨다.
동생 부부가 “꼭 봐야 할 사람이 있다”라고 간곡히 부탁해 내가 도착할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손은 아직 따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온기는 빠르게 식어갔고 얼굴에는 서서히 푸른빛이 돌았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며,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엄마의 생일은 매년 추석이 지나고 정확히 일주일 뒤인 음력 8월 23일이었다.
엄마는 2022년 9월 19일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신 날은 음력으로 하루 전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한다고 했으니, 결국 엄마는 향년 70세, 자신의 생일날 우리 곁을 떠나신 셈이었다.
엄마,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이제 더는 아프지 마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아 있는 아빠도 잘 돌보고, 우리 삼 남매는 사이좋게 살아가겠습니다.
엄마가 떠난 뒤, 마지막을 곁에서 지킨 동생은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임종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던 걸까.
신경정신과에서 얼마동안 신경안정제와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또한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나에게 일부러 임종을 보여주지 않으신 게 아닐까.”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밤낮없이 엄마 곁을 지켰던 내게 마지막 순간만은 곁에 없도록 하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끝내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한 서운함은 어느새 조금씩 사라져 갔다.
엄마는 내게 ‘그 무거운 장면’을 남기고 싶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