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존재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들이, 종종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아빠는 주말이면 꼭 우리 삼 남매와 엄마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향하셨다.
코펠과 텐트, 삼겹살과 김치, 쌀까지 챙긴 묵직한 배낭을 메고, 아빠는 온 힘을 다해 우리와 시간을 나누었다.
그곳이 어디든, 가족이 함께 있는 순간은 곧 멋진 캠핑장이 되었다.
차도 없던 그 시절, 아빠는 새벽 4시나 5시, 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를 깨우셨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고속버스에 올라타 한참을 달리면, 도착한 곳은 늘 설레는 푸른 바다였다.
낙산 해수욕장의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치고, 밥을 짓고, 고기를 구워주던 아빠.
바닷바람 속에서 먹던 그 삼겹살 맛은 지금도 선명하다.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바싹 구운 삼겹살만큼은 유독 좋아하는 건 아마도 그때의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이면 산에 올라 고기를 구워주셨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함께 해주셨다.
가을이면 온 가족이 밤을 주우러 다녔고, 저수지에서는 새우를 잡았다.
아빠가 족대를 들고 저수지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삼 남매는 그 옆에서 메뚜기를 잡는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혹시라도 산이나 저수지에서 뱀에 물릴까 봐, 아빠는 백반을 곱게 빻아 우리 삼남 내의 양말 속에 넣어 주시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
그 시절, 우리를 위해 늘 몸을 아끼지 않던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하고 큰 사랑이었는지를.
주말마다 산과 들, 바다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던 아빠는, 야외로 나갈 수 없는 어떤 날엔 온 가족을 데리고 시장으로 가셨다.
그곳은 성남의 성호시장. 토요일 오후가 되면 우리 가족은 그 시장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장 구경은 언제나 설렘과 따뜻함이 섞여 있었다.
형형색색의 과일, 갓 구운 전, 사람들 사이를 가득 메운 웃음소리.
필요한 물건을 사고 먹을거리를 사다 보면, 우리 삼 남매는 점점 지쳐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럴 땐 엄마 아빠가 시장 한가운데 먹거리촌에 우리를 앉혀 두고, "여기서 떡볶이 먹고 있어. 장 다 보고 올게." 하시곤 하셨다.
그때 먹던 떡볶이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달큰하면서도 매콤한 양념, 쫄깃한 떡,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초록색 플라스틱 그릇.
내게 최애 음식이 뭐냐 묻는다면, 지금도 주저 없이 ‘떡볶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여중생 시절, 학교 앞 똘이분식 노총각 사장님과 결혼하고 싶을 만큼 떡볶이를 사랑했다.
아마 그 떡볶이는 나에게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안전함과 행복이 그대로 스며든 맛이었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가족에게 최선을 다한, 멋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