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존재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아빠는 우리 삼 남매에게 늘 공평하셨다.
한 번도 “오빠를 더 좋아하네.”, “동생을 더 예뻐하네.”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으셨다.
무엇이든 똑같이, 한 치의 차이 없이 나누어 주셨다.
겨울밤, 아빠가 귤 한 봉지를 사 오시면 우리 삼 남매게 똑같이 오빠 3개, 나 3개, 동생 3개를 나누어 주셨다.
남은 귤 몇 개는 다시 돌아가며 한 개씩 나누어 주셨고, 마지막 남은 것은 엄마와 아빠의 몫이었다.
종합과자세트가 집에 선물로 들어오면 오빠가 먼저 한 개를 고르고, 그다음 나, 그리고 동생 순으로 한 개씩 고르게 하셨다.
그리고 다시 오빠에게 돌아가 한 개, 나에게 한 개, 동생에게 한 개.
항상 이렇게 돌아가며, 차례대로, 똑같이.
이런 공평함 속에서 자랐기에 편애란 말은 우리 집에 자리할 틈이 없었다.
물론 유난히 몸이 약했던 나를 오빠와 동생이 속으로는 ‘편애’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우리를 똑같이 사랑해 주셨다.
아마 그 습관이 이어져서일까.
엄마 아빠가 건강하시던 젊은 시절부터 우리 삼 남매는 매달 같은 금액을 회비로 모아 부모님과 식사하고, 여행을 다녔다.
가족 행사가 있을 때는 공동 경비 통장에서 지출했고, 돈 문제로 다툰 적이 없었다.
부모님 두 분의 장례식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의금을 각자 리스트로만 정리했을 뿐, 들어온 총액은 셋이 똑같이 나누었다.
부모님이 남기신 집과 예금과 적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항목도 예외 없이 셋이 똑같이 나눴다.
주변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많지 않은 재산 때문에 형제간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빠의 그 공평함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줬구나.’
어릴 적 귤 세 개로 시작된 아빠의 공평함은 지금까지 우리 삼 남매의 마음을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울타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술을 참 좋아하셨다.
몸이 고된 일을 하셔서인지 일을 끝내고 술 한잔으로 하루의 피곤과 스트레스를 푸는 거 같았다.
나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그 술 때문에 가족이 힘들었던 날도 많았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다정한 분이었지만, 술이 깊어지면 그 온화함이 사라지고 때로는 폭군처럼 변하기도 했다.
술기운에 평소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가까운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저 기분 좋게, 적당히 마시면 좋았을 텐데, 아빠는 술을 한 번 입에 대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혹은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를 만큼 마시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 가족은 불안 속에 밤을 보냈다.
그 영향인지 오빠는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아빠는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로 나가셨다.
어린 나이의 나는 그게 참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빠의 성실함과 책임감은 유난히도 강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 삼 남매도 성실함과 책임감을 자연스레 물려받았다.
매달 아빠의 월급날이면 아빠는 늘 두 개의 봉투를 들고 퇴근하셨다.
하나는 누런 종이봉투 속 현금이 든 월급, 또 하나는 누런 종이에 싸인 통닭이 들어 있는 검정 비닐봉지였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그달의 공과금과 생활비를 정리하고, 사용할 돈을 남기고, 우리 삼 남매 이름으로 만든 적금 통장과 각종 예·적금 계좌에 돈을 나누어 넣으셨다.
그 모습이야말로, 아빠가 우리에게 해준 가장 현실적인 경제 교육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지금도 남편과 나의 월급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적금을 붓고, 생활비를 정리하며, 여러 개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장에 돈을 나눈다.
아빠에게 배운 습관이 내 삶에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그 옛날 우리 아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멋진 사람이었다.
결혼 전, 내가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면 골목길 입구에서 날 기다리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빠의 장례식날, 같은 동네 살았던 초등학교 친구들도 기억하는 우리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점마저도 아빠라는 사람을 더 깊이 기억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