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빠를 찾아서

아빠라는 존재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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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7일, 월요일.

엄마의 체력이 너무 쇠약해져 있어, 항암 치료를 잠시 쉬고 계셨지만, 아무 치료도 하지 않으면 엄마는 불안해하셨다.

그날은 온열치료와 고용량 비타민C주사를 위해 동네의 작은 병원에 오후시간에 예약을 잡아드렸다.

나도 수술한 지 겨우 3개월 된 유방암 환자였기에, 이날은 내 병원 스케줄 때문에 엄마 혼자 택시를 타고 다녀오시도록 했다.

엄마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아빠를 혼자 집에 두어야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저 오늘 하루는 조용히 주무시길 바랐지만, 그렇게 바라던 일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언젠가 아빠를 병원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던 터라, 우리 가족은 모두 휴대폰에 GPS 위치 추적 앱을 설치해 두고 늘 부모님의 위치를 확인하곤 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아빠의 위치는 ‘집’이었다.

그런데 오후 2시가 넘자, 아빠의 GPS는 집이 아닌 광주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몇 시간째 멈춰 있었다.

치료 중인 엄마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만 가고 받지 않더니 결국 전화기 전원이 꺼졌다.

불안감이 가슴을 조여 왔다.


나는 오빠와 새언니, 동생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 신고를 고민했다.

그러나 먼저 엄마가 집에 돌아가 아빠가 계시는지 확인하는 것이 순서라 생각해, 초조하게 그 전화를 기다렸다.

엄마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안 계셨다.

집 안은 마치 도둑이 다녀간 듯 난장판이었고, 옷장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신발은 짝이 맞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오후 5시가 넘도록 어떤 연락도 없었다.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나는 광주로 아빠를 찾으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스로 운전할 자신이 없어, 군 복무 중인 조카에게 부탁해 태우러 와 달라고 했다.

퇴근 시간의 막히는 도로 위에서 마음은 더 타들어 갔다.


오빠는 경찰과 함께 CCTV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녁 7시 40분경, 경찰이 보내온 사진 속 아빠는 낮 12시 23분, 큰 배낭을 메고 아파트를 나서고 있었다.

배낭은 잠기지 않았고, 손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긴 막대가 들려 있었다.

이후 1시 30분까지 버스정류장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찍혔다.

아빠는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고, 기사가 내리게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태워 주었다고 했다.

오빠가 버스회사에서 찾아온 아빠의 가방 안에는 꺼진 휴대폰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찢어졌다.

‘또 머릿속이 하얘졌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배고픈 거 못 참으시는데 배고프면 어쩌지?’

수백 가지 생각이 몰려오고, 눈물만 흘렀다.


저녁 8시, 나는 경찰에 안전재난문자 발송을 요청했다.

경찰분은 아빠의 지인들까지 문자를 받을 수 있다고 정말 동의하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주저 없이 동의했다.

광주시에서 배회 중인 서** 씨를 찾습니다. (남, 76세)

작고 왜소한 체형, 남색 점퍼에 배낭을 메고 막대기를 들고 있음.

신고 182. [경기남부경찰청]


문자가 발송되자, 목격 전화가 두 통이 왔다고 했다.

그중 한 통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아빠를 본 곳은 광주시 삼동역 부근의 한 아파트 앞이었다.


그날 밤, 아픈 엄마와 나, 오빠, 조카, 사촌 오빠까지 달려와 아빠를 찾으러 함께 거리를 헤맸다.

아빠가 오래 머물렀다는 버스정류장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경찰이 연락을 주었다.

삼동역 근처의 한 아파트에서, 아빠가 자신의 집이라 착각하고 문을 두드리다 신고를 받은 것이었다.

아파트 1층에서 기다리던 나의 눈앞에, 초췌해진 아빠가 경찰차에서 내려왔다.

나는 아빠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하루 종일 굶었을 아빠를 씻기고, 밥을 차려드린 뒤 주무시게 했다.

그날 밤, ‘앞으로 아빠를 어떻게 지켜드려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끝내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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