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치매 진단을 받은, 태어나서 제일 슬펐던 그날

아빠라는 존재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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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를 살려낸 슈퍼맨이었고, 가족의 온기를 알려준 사람이었다.

공평함과 성실함을 몸소 보여주며 살아온, 나의 전부이자 나의 우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빠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던 날.

그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갑작스럽게 세상이 멈춰 서버린 것 같았다.


병원 진료실 안에서 의사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는 아무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오직 “치매”라는 단어만 공기 중에 남아 내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날보다,

그리고 엄마를 실제로 떠나보내던 그날보다도 더 큰 충격과 공포가 밀려왔다.

엄마의 병과 죽음은 삶의 슬픔이었지만, 아빠의 치매는 ‘내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절망 같았다.

숨이 막혔고, 심장이 쪼여드는 듯이 아팠다.


나는 아무도 없는 교회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싸늘한 공기와 환기가 안된 무거운 교회의 공기가 나를 감쌌다.

사람이 없는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 그제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꺼이꺼이 목이 터져라 울었다.

내 울음소리는 텅 빈 예배당 안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겹쳐서 들렸다.


아빠 같은 강한 사람이, 아빠 같은 독립적인 사람이,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그렇게 싫어하던 분이 치매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토록 꼿꼿하고 자존심 강하던 아빠가 앞으로는 누군가를 의지해야 살아갈 수도 있다는 현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빠가 너무 가여워서,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날 처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모든 힘줄이 끊어지는 듯했고, 가슴은 깊은 구덩이에 빠져드는 듯했다.

그리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함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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