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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Oct 18. 2021

자화상과 마주해야 할 시간

자하문고개와 윤동주문학관

열린 우물 /  그림 이호정 



 그해 봄날, 저는 꼬꼬마였던 아이들이 근처 팔각정에서 꼬깔콘을 다 먹자마자 부리나케 문학관으로 달려갔습니다.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우르르 줄지어 가던 사람들 중 누구 하나도 떠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도 푸르렀다는데, 그런 하늘은 보이지 않고, 우물 위로 언제나 조곤조곤 나직하게 말할 것 같은 얼굴을 쓱 내밀고 시인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들려줄 것만 같았습니다. 하물며 이곳이 수도가압장의 감춰진 물탱크였다니요.


 착공을 코 앞에 두고 공사현장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발견된 두 개의 물탱크로 인해 설계를 원점으로 되돌린 건축가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모티브로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문학관은 시인에 대한 소개와 친필원고 등 유품이 전시된 시인채와 두 개의 우물로 구성되어 있지요. ‘열린 우물’은 ‘닫힌 우물’로 가기 위한 통로이자, 그의 시 ‘자화상’에 나온 우물을 재해석하여 조성한 공간이었고, 실제 진짜 물탱크이기도 했습니다.


 ‘열린 우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오랫동안 차가운 물이 담겨 있었을 그곳으로부터 축축한 냉기가 전해집니다. 마침 텅 비어있던 이상한 공간이 무서운지 아들 녀석이 성큼 나아가지 못합니다. 괜찮아. 진짜 괜찮아. 원래 안으로 들어가는 게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겁나는 일이야. 몇 번이나 주춤거리던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니 그제야 조금씩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담겨 있었을 물은 육중한 콘크리트 벽에 어떤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물이 이만큼 차올랐다가 줄어들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마치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색면 추상처럼 깊숙한 내면의 감정을 건드리는 빈 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빈’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담겼다가 빈’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에서 울며 주저앉는다고 하더니, 얼룩진 벽면, 녹슨 자국, 물이 차올랐던 경계, 흘러내렸던 모양, 사다리를 떼어낸 자리의 검은 구멍들까지 우리 내면에 어떤 오브제가 있다면 아마도 저런 형상일 것만 같았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차고 어두워지는 ‘열린 우물’은 그렇게 ‘내적 빛으로 가득 한 공간’*으로 우리에게 열려 있던 것이었지요.


 ‘열린 우물’을 지나 문을 열면 거기가 ‘닫힌 우물’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냉랭한 습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사다리를 걸기 위해 뚫어 놓은 네모난 구멍으로 비현실적으로 쏟아지는 빛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윤동주시인의 시와 짧은 생애가 담긴 영상이 물탱크의 빈 벽면을 비추었습니다. 거기서 본 시인은 너무도 젊고, 너무도 맑아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죄다 먹먹하게 만들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다들 한 주먹씩 그런 마음이 되어 나오니 ‘열린 우물’ 밖으로 하늘은 더욱 파랗고, 차마 들어오지 못한 바람이 우물 밖으로 설설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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