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정 Oct 20. 2021

비로소 걸어온 길들이 오래된 풍경이 되고…

낙산 정상에서 /  그림 이호정



 서울에 사는 동안 저는 서울이 가진 많고 많은 것들 가운데 ‘오래된 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분위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것이 뭔가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거나, 성향이 유별나게 과거 지향적이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대학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그때까지 살던 곳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저에겐 추억소환이나 취향 따위를 운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서울은 ‘오래된 것’ 말고도 저를 놀라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으니까요.


 합격 통지를 받고 얼마 후 학교를 찾아갔을 땐 하필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던지…. 반대쪽 출구로 잘못 나가서 지저분한 눈길 속을 헤매다가 어찌어찌 학교에 도착했을 땐, 혼이 반쯤 나가고, 바지 밑단은 눈 녹은 흙탕물로 시커멓게 젖어 있었습니다. 눈 쌓인 선로 위로 고압 전선들이 얼키설키 지나가고, 높게 둘러친 방음벽, 방음벽 위로 보이는 아파트와 빌딩들, 낡은 2층의 양옥집들, 그리고 재빠르게 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은 저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원대한 포부나 대단한 미래를 꿈꿨던 것도 아니었어요.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뿐, 솔직히 대학원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모르는 것, 못 하는 것 투성이었고, 그 사실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못 하는 것을 못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그것은 있기 마련이고, 그걸 깨닫기 위해선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나도 좀 달라졌을까.


 부끄러움은 입을 다물게 했고, 잘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과 잘 해내고 싶다는 바람과 사람들 앞에서 가만히만 있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는 강박은 방음벽 너머의 낯선 풍경들과 함께 언제나 저를 긴장시켰습니다. 그것은 우습게도 자주 저를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의 나락으로 빠뜨렸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성실한 가면을 뒤집어쓴 채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재학시절에도 과제 준비나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의 오래된 장소들을 찾아 현장조사도 다니고, 이런저런 곳들을 많이 쏘다녔지만, 그땐 그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주어진 일들을 날짜에 맞춰 하는 것조차 버거웠으니까요.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며 직장 선배로 만난 언니가 어느 날 한양도성과 최순우 옛집을 보러 성북동에 가자고 했을 때도 몰랐습니다. ‘역사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역사적’으로 얼마나 희소한지, 그런 ‘역사적’인 것들과 무관하게 오래된 것들로부터 우리가 위안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성북쉼터에서 한양도성을 따라 오르며 본 오래된 풍경들은 서울이라는 드넓은 바다에서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저에게 안도감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진정제로 다가왔습니다. 마음 편하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저절로 그래지는 건지, 그렇게 되는 환경이 따로 있는 건지 모른 채 설설 걷다 보면, 한양도성의 성곽이 산자락 속으로 굽이치며 아스라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더구나 서울의 오래된 풍경들은 하나같이 길을 품고 있었습니다. 묵은 이끼로 뒤덮인 성곽 옆 오솔길,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맞댄 동네의 골목, 원래 모습을 꼭꼭 숨긴 채 복개된 옛 물길,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즐비한 궁궐의 숲길, 고층빌딩 사이로 낮게 웅크린 소로들, 한옥 담장으로 이어지던 곁길, 그리고 근사한 건축물로 둘러싸인 탐방로와 잘 정비된 산책로까지, 수없이 얽히고설킨 많은 길들이 저를 그리로 이끌었습니다.


 비록 저의 시야에 담기는 건 별것도 아닌 데다, 정작 중요한 건 놓치기 일쑤였지만,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과 작은 풀꽃, 여장의 유난히 검은 부분이라든가, 멀고 가깝게 구멍이 뚫린 총안의 규칙이라든가, 긴 오후 햇살로도 닿지 않는 한옥 처마의 어두운 곳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들어선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며 뒤돌아본 순간, 높다란 언덕바지에 올라 저기까지만 가서 쉬자며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 순간, 비로소 걸어온 길들이 오래된 풍경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역사는 사실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우리 실존에 어떤 의미체로 등장하지 않으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역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미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나, 여기, 오늘의 삶의 정감 속으로 투입되어야만 한다. 
                                                                                                             도올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 219쪽



 길을 걸으며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 어렵게 남아준 오래된 풍경들이야말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유구라도 누군가의 경험 속에서 어떤 의미체로 남지 못한다면 그것은 낡은 조형일 뿐, 마찬가지로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유구라도 누군가에게 의미체로 수용될 때, 그것은 역사적 가치를 뛰어넘어 무엇보다 소중한 무언가로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나, 여기, 오늘의 삶의 정감 속’에서 각기 다른 수많은 의미체로 아로새겨진 이 도시를 ‘역사 도시’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한 개인의 좋았던 경험은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해 보길 바라는 방식으로 전파됩니다. 그것이 때론 이기적인 행동일지라도…. 그러니 이것은 저의 경험일 뿐, 다른 누군가도 이와 같으리라 기대하지 못하면서 청해 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지나간 길이지만, 어느 날 하루 또는 반나절의 시간을 내어 한양도성과 이어진 이 길들을 천천히 걸어보기를…


 옛 벗들과 하하 호호하며 사뿐히도 걷던 길들을 아이 둘을 데리고 다시 걸었습니다. 그때와 지금 사이의 시간 동안 몇몇 일들이 조각처럼 떠올랐으나, 주마등처럼 스쳐 갈 일은 못 되었지요. 그저 아이들 뒤통수 너머로 보이는 지금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경험이 켜켜이 쌓여 왔지만, 그것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이 나와 너 사이에 줄자를 대놓고 살았던 지난 시절의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그것이 더는 저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막상 하기 싫은 일들의 연속이더라도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감내하며, 아이들 밥 잘 먹이고, 몇 해쯤 지나 아이들과 순성 했던 기억들도 가물가물해지면 사나흘 눈이 내린 겨울날을 기다려 성북동 쉼터에서 백악 정상으로, 인왕산에서 남산으로, 낙산을 지나 다시 순성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땐 아이들 대신 핫팩과 등산용 스틱이 저와 함께 하겠지요.




 저는 찬란하다는 말도 모자랄 만큼 좋았던 4월 어느 날 혼자 한양도성을 따라 낙산에 올랐습니다. ‘나도 이 산 아래로 이사하고 싶네我欲移家住山下’* 시구가 절로 떠오를 만큼 만개한 꽃들이 흩날리던 봄날이었지요. 낙산 정상에서 보현봉 봉우리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이 세상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모습대로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뿐…. 


 풍경이 더는 저의 불안을 치유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도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생각들로 사로잡혔던 시간을 지나와 그것이 지금이라 해서 그럴싸하게 바뀌었을 리는 만무하나, 어쩐지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저기 비스듬히 있으면서도 언제나 의연해 보이는 보현봉, 저 바위처럼 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의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충실하며 그렇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 번 보았는데도, 늘 처음 보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나 어차피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렇게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잊히지 않고 오래오래 남아 지금 여기 있어 준 오래된 것들을 향해 다시 한번 존경과 찬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전 20화 다시 시작되는 여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