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전에는 도서관 공용 컴퓨터로 이력서를 날리고,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상점에 들어가 이력서를 건넸다. 점심시간은 피했다. 바쁜 점심시간에 이력서를 주려고 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 생각될 수 있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어서다.
새로 뽑은 40장의 이력서도 모두 소진되어 20장을 추가로 뽑는다. 별 감흥은 없다. 그는 하던 대로 이력서를 계속 뿌린다. 새로 뽑은 20장의 이력서 중 절반 정도가 없어질 때 즈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 속 목소리는 전혀 새로운 목소리다. 목소리는 자신이 Tom이라고 소개했다. Tom은 사람을 구하고 있다며, 이력서를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날아갈 듯이 기뻤지만 일단은 Tom의 말을 듣는 게 먼저다. Tom은 그에게 아직 구직 중이냐고 묻는다. 당연히 구직 중이다. 그와 Tom은 바로 *Trial 일정을 잡는다. 다음날 바로 오라고 한다. 그는 알겠다고 하지만, 전화 영어는 처음이라 모두 알아들은 것은 아니다. Tom에게 지금 전화로 한 이야기를 문자로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Tom은 알겠다고 한다.
*Trial은 호주 구직 과정의 하나로, OJT나 현장 면접과 비슷하다. 하루 직접 일을 시킨 뒤, 지원자가 일을 잘할 수 있을지를 대략 판단한다. 워홀러들의 썰에서는, 트라이얼 때 당연히 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 일부러라도 도와줄 것이 있냐며 액션을 크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원래는 Trial도 최저 시급을 지급해야 하지만, 법은 언제나 멀리 있다.
그는 숙소로 돌아와 마음의 준비를 한다. Tom이 보낸 문자를 보고 구글 검색을 하니, 쇼핑센터 안에 위치한 조그마한 초밥 Take-away 가게였다. 기억을 되뇌어 봤다. 바로 떠오르진 않는다. 그가 쇼핑센터 내의 초밥집에 이력서를 준 기억이 있던가. 조금 있으니 떠오른다. 그다지 좋은 인상의 가게는 아니었다. 건너편의 큼지막한 식료품점과 대조되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당시 그는 이 조그만 곳에 이력서를 굳이 줘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60곳 넘게 이력서를 돌린 상태였으므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건넸다. 가게 주인(Tom)은 중국인이었다. 이력서를 건네자 주인은 표정 없이 이력서를 받는다. 이 가게는 그의 이력서를 받고 가장 반응이 없었던 가게 중 하나였다.
그래도 연락이 오다니 이게 어딘가. 그는 다음날 시간에 맞춰 쇼핑센터로 향한다. 늦지 않으려 30분 정도 빨리 도착해서 쇼핑센터 밖에서 기다렸다. 이력서를 돌릴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엄습한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그가 들어가니, Tom은 그를 반기며 들어오라고 한다. 쇼핑센터 안에 있지만, 가게를 구분하는 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초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유리 진열장과 카운터가 전부다. 이 곳이 그의 워킹홀리데이의 첫걸음이 될 공간이었다.
Tom은 중국인으로, 덩치가 크진 않다. 표정 변화가 많지 않고, 조용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조그만 체구임에도 뿜어져 나오는 강인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 강인함은 외국에서 살면서 Tom이 맞닥뜨려온 상황들의 결과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중국인이 초밥 가게를 한다는 것이 오묘하고, 같은 아시아인들끼리 영어로 대화한다는 것도 오묘하다.
트라이얼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당연하지만, Tom은 그에게 초밥을 만드는 등의 특별한 일은 시키지 않았다. 그는 Tom이 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다가, Tom이 설거지를 시키면 식기와 칼을 닦았다. 물론 그는 Tom에게 잘 보이기 위해, 도와줄 것이 없냐, 청소할 것이 없냐는 등의 액션을 했다.
트라이얼이 끝나고, Tom은 일주일에 4일 정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답한다. 그렇게 그의 호주 첫 번째 일은 스시샵 Kitchenhand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