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은 캐주얼과 파트타임이 섞인 듯한 제안을 한다. 무슨무슨 요일에는 고정으로 나오고, 가끔 바쁠 때는 그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흔쾌히 OK라 한다. 100장이 넘게 이력서를 돌린 상점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일을 시켜주는 Tom이 너무도 고마웠다. 천사와 같이 보였다.
Tom은 그에게 여러 서류를 주며 작성해달라고 한다. 그와의 계약을 호주 정부에 알리려나 보다. 하지만 그는 Tom에게 TFN을 알려 주는 것이 조금 켕긴다. TFN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건데, 혹시 Tom이 그의 TFN을 악용하는 것은 아닐까? (당시는 이런 식의 TFN 악용은 거의 근절되었을 때다) 그는 방어적이다. 하지만 Tom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다만 Tom은 계산기를 두드려본 뒤, 텍스잡으로 고용을 하는 경우와 캐쉬잡으로 고용하는 경우 그가 받는 소득은 차이가 거의 없다고 말하며, 그에게 선택권을 준다. 그는 옳다구나 싶어, 자신의 TFN을 알려주지 않는 캐쉬잡을 선택 한다. Tom은 그러라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Tom만큼 정부의 법규를 준수할 만한 고용주는 만나기 힘들었다.
스시샵은 작았고, 장사가 아주 잘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캐쉬잡을 선택했고, 가게 매출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Tom은 그의 시급을 13.5불로 제안했다. 이는 최저 시급 18불에서 세금을 뗀 15불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당장 돈이 급했다. 백패커스에서 매일 꼬박꼬박 나가는 숙박비, 식비 등으로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입 안이 바싹 마르는 터였다. 13.5불, 최저 시급에도 미달하는 돈이지만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직접 방문해서 이력서를 돌리다가 성공한 곳이라는 점, 고정적인 수입이 생긴다는 점, 무엇보다 한인잡이 아니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Tom이 제안한 시급 13.5불의 오지잡(?)-파트타임-캐쉬잡을 받아들였다.
Kithenhand는 주방 보조라는 뜻이다. 그는 Tom이 운영하는 초밥 샵의 주방 보조가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청소와 설거지만 했다. Tom은 위생에 있어 굉장히 철저하다. 조그마한 스시샵이 이 정도라면, 더 큰 레스토랑은 얼마나 빡센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Tom은 자신이 쓴 식기들을 설거지할 때, 항상 네 단계를 거쳤다.
1 -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닦는다. 식기에 따라 수세미의 접촉면이 다르다. 그는 수세미의 활용을 이렇게까지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 알았다.
2 - 물로 헹군다.
3 - 스프레이로 된 세제를 다시 뿌린다.
4 - 물로 헹구며, 세제가 남아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Tom은 그에게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대로 따랐다. Tom은 설거지를 끝낸 식기에 손자국이 남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단계도 단계이지만, Tom이 설거지할 때 식기를 잡는 손 모양, 싱크대에 긁히지 않게끔 하는 등의 모습은 일종의 신성한 의식을 연상케 했다. Tom은 그가 워킹홀리데이 기간에 만났던 고용주 중 가장 깔끔했다.
설거지와 청소가 익숙해지자, Tom은 그에게 초밥 마는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름은 Sushi, 즉 초밥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김밥과 비슷한 초밥이었다. 도마에 김을 놓고, 밥을 펴서 올린 뒤, 메인 재료를 넣고 말아 버린다. 그리고 반으로 자르면 완성이다. Tom은 자르는 부위가 먹음직스러워 보여야 한다고, 재료를 가운데에만 많이 넣으라 했다. Tom은 청결하지만, 식재료는 상당히 아끼는 편이다.
Tom은 그의 일하는 능력에 대해 대부분 칭찬했지만, 여러 지적사항도 많았다.
초밥을 반으로 자를 때 김까지 깔끔하게 자를 것. (요령이 없으면 김 부분이 칼에 씹히면서 찢어진다)
초밥을 말고 나면 도마를 반드시 깨끗이 닦을 것.
도마를 닦는 수건과 다른 곳을 닦는 수건을 구분할 것.
어떠한 수건이던 이물질이 묻어있는 수건은 바로 세척할 것.
등등이다.
초밥 이외에도 튀김, Meal(한 끼 식사가 가능한 메뉴로, 주로 덮밥이나 카레 등)이 있었다. Meal의 경우는 그도 나중에 조리가 가능하게 되었으나 Tom은 그다지 만족하지 않는 눈치였고, 튀김은 항상 Tom의 몫이어서 그는 관여하지 않았다. Tom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그의 김밥말이 초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초밥 마는 실력은 향상되었고, 그도 자부심을 가졌다. Tom은 2주일~3주일 후부터 초밥을 그에게 모두 위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