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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Mar 15. 2024

크리스마스는 삿포로 아니고 하코다테에서 1

히나상을 만나러.


하코다테는 한적한 항구 도시다.

나는 홍대입구역을 걷고 있었다. 홍대에 별 볼일이 있는 건 아니었고, 그저 환승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매일 출퇴근하며 홍대입구역을 거쳐간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공항철도에서 2호선까지 홍대입구역의 환승 구간은 거의 영원의 시간에 가깝다. 그걸 아는 듯 홍대입구역에서는 그 긴 구간에 디지털 광고를 운영하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광고 운영에 꽤 불만이 많다.


가장 큰 불만은 트래픽 증가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광고 타이밍을 기다리는 인파가 구름 떼같이 몰려드는데, 희한하게 꼭 퇴근시간에 그렇게 많다. 썩은 표정으로 인파를 헤치며 걸어가는데 카메라를 켠 사람들을 지나쳐야 한다면? 표정이 두 배로 썩을 수밖에 없다.


이건 아이돌 광고를 기록하려는 팬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많을 것이다. 나의 아이돌이 담긴 영상을 - 그러고 보니 영상의 영상을 촬영한다니 참 기이하다 - 찍으러 왔는데 앞에 썩은 표정에 대체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파파라치를 피하는 연예인 마냥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걸어간다고 생각해 봐라. 코웃음 나오겠지.


두 번째 불만은 열기에 있다. 이게 겨울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여름에는 몸으로 확 느껴지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다. 영상을 24시간 띄우며 홍보하다 보니 스크린이 과부하되고 과열된다. 게다가 지하철 환승구간은 특별히 환기가 될 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 있기야 있겠지만, 인파가 워낙 몰리는 곳이다 보니 환기 효과가 크진 않다. 서울 지하철에 롱패딩을 입은 출근자들이 꽉꽉 들어차 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서 여름 시즌이 되면 환승구간은 사우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후덥지근하다. 스크린을 가까이할 때마다 열감이 더 느껴지는 건 정말 가관이다. 나는 지난여름 매일을 홍대입구역을 지나치며 속죄했다. 더 빠르게 멸망으로 향하는 지구에게 너무너무 미안하다며. 물론 지금은 겨울을 이제 벗어나고 있으니 그저 모르는 아이돌 - 이제는 슬 모르는 얼굴이 많아지고 있다 - 을 구경하며 역사 안을 거닐고 있다.


아무튼 여느 때와 같이 2호선 구간으로 넘어가기 위해 스피드게이트에 잠시 멈췄을 때였다.


텅!


갑자기 (개) 큰 소리가 나며 내 앞으로 발 하나가 들어왔다. 아니 이 새치기 하수는 뭐지 ㅡㅡ 고개를 드니 복잡한 홍대입구역에서 길을 잃은 일본인 여자의 불안한 얼굴이 보였다.


이 순간


히나상이 사 준 수프.


나에게는 히나상이라는 친구가 생겼고


붉은 벽돌 창고를 오르는 산타들.


딱 두 달 뒤 나는 그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보통 홋카이도 여행을 가면 하코다테까지 가진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기차로도 세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다. 하코다테라는 도시는 홋카이도의 아주 남쪽에 있다. 보통 삿포로에서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품을 들여 방문하는 노보리베츠보다도 훨씬 남쪽에 있다. 그리고 홋카이도의 지형이 좀 특이해서, 직선거리보다도 훨씬 긴 거리를 우회해서 가야 한다. 만이 형성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보통 삿포로와 근교만 여행하는 사람들은 직접 운전도 한다. 물론 하코다테까지도 운전해서 갈 수 있다. 다만 피로의 문제다. 그래서 보통 JR열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제는 일본의 교통비가 상당히 사악하다는 점이다. JR 프리패스 이용권을 거의 20만 원에 샀다. 좀 마음이 아픈 순간이었다.


하코다테 가는 길에 먹은 빵과 커피.


그럼 왜 굳이 하코다테를 갔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역시 히나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히나상은 한국의 문화가 좋아 한국에 혼자 여행을 온 상태였다. 한국 여행은 처음이고, 평일 러시아워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경험 역시 처음이었던 것이다. 히나상은 영어는 잘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피곤해 보이는 한국인들에게 감히 길을 물을 방법이 없었고, 고민하다가 급하게 나를 잡은 거였다.


그날 히나상이 가려던 곳은... 정말 처음 보는 옷가게였다. 홍대를 많이 다니면서 그런 가게는 처음 들어봤다.


아무래도 ‘홍입9출로나가서걷고싶은거리를지난다음에쭉찍진하여걸어가다보면왼쪽에다섯번째집으로가세요’라고 하면 못 알아듣겠지... 나는 일본어를 못하니까... 게다가 히나상도 한국말이 아직 서툴기도 하고...


그래서 히나상을 가게 앞까지 데려다주며 이야기를 트게 되었다. 히나상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하코다테였다.


홋카이도 여행 오면 말해줘요
나는 거기에 살고 있어요.


네!! 우리 꼭 다시 봐요!!!


긴 긴, 한반도에 맞먹는 홋카이도 영토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열대식물원 가는 길에. 트램.


하코다테는 가는 것부터가 고난이었다. 물론 과장을 보태서 하는 말이다. 과장이기는 해도, 세 시간이나 기차에 앉아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와 J는 전날 비에이에서 2만 보를 걸었기 때문에 오전 기차를 타자마자 잠에 빠졌다. 그건 정말 최근 잤던 것 중 가장 맛있는 잠이었다. J가 너무 피곤해해서 내 무릎을 빌려줬다. Shibuya Meltdown Again... 도저히 잠을 자고 자도 하코다테는 멀리 있었다.



깔끔한 시오라멘.


하코다테가 삿포로보다는 남쪽이어서 그런지, 도착하니 비가 애매하게 내렸다. 기차역에 바로 연결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기고 나니 정말 마음의 짐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무사히) 하코다테에 도착했어! 그렇지만 여전히 빡빡한 일정이 남아있었다.


구글맵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다보면, 그러니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상상으로만 계획을 짜면 각 명소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종종 잊게 된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코다테는 역 근처에 호텔이 좀 있고, 거기서 한 17분 즈음 걸으면 유명한 붉은 벽돌 창고가 나온다. 17분이면 걸을 만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하코다테가 항구 도시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바람이 정말 정말 매서웠다. 어느 정도로 매서웠냐면 이날 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내리면서 바람에 택시 문이 부러질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하코다테 열대식물원의 원숭이들. 시설은 열악하다.


J와 나는 띄엄띄엄 떨어진 맛집과 관광지를 찾아다녔다. 버스를 타고 트램을 타고 걷기도 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본 평일 하코다테의 풍경은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뭐랄까, 길이 널찍하고 깨끗한데 사람은 없다. 약간 파주 느낌?! 근데 이제 바다를 곁들인?!


신기한 도시였다. 놀라운 건 이곳이 홋카이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히나상은 이곳을 ‘시골’이라고 했다. 여긴 사람 많이 없어요, 시골.


하코다테역 근처 숙소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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