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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Mar 21. 2024

삿포로에서 취직할 뻔한 일에 관하여

취업난 극복~!~!

이 여행기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오늘은 짧은 이야기다. 별 거 없는데 아직도 J와 나는 생각하며 키득거리는 일화.


우리는 삿포로에 돌아와서는 살짝 헤매기 시작했다. 주요한 여행 목적을 다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삿포로는 돌고 돌아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가 되었다.


노르베사 노리아 대관람차.


무사히 홋카이도를 한 바퀴 - 정확하게는 반 바퀴 - 돌았다는 안도감에 빠져 기분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계획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됐고, 대충 계획을 짜다 보니 얼기설기 비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날이 금요일이었다는 거다. 스스키노 거리에 사람이 제일 많은 시기. 어딜 가든 예약이 다 차 있었다.


일본어로만 된 메뉴판.


여행 마지막 날에 들어간 야키니쿠 집은 그러니 순수하게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다. 갈 곳이 없어 근처 아무 데나 문을 두드렸는데, 마침 자리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 분 대기. 야키니쿠 집의 문을 조심스레 여니 남자 사장님 한 분이 계셨다. 좀 무서운 인상에 괜히 긴장하게 되는 중년이었다.


음 여긴 안 될 각인데. 그래도 물어봤다. “손님 두 명인데요.” 사장님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한 십 초쯤 뒤에 다시 문이 열렸고 사장님은 고개를 빠꼼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파이브 미닛츠 웨이토.


처음엔 앞에 다섯 팀이 있다는 걸로 이해했다가, 아니 오 분? 오 분이면 아무것도 아니지~~ ㅋㅋ 냉큼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걸로 저녁은 해결~!


작은 야키니쿠 집이었다. 아저씨가 좀 묵묵한 쾌남 느낌이었는데, 불친절한 듯하면서 한국어 메뉴판을 보여주고, 사진이 없으면 사진을 가져다 보여주고 했다.


이런 느낌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집.


신기하당. 얌전히 먹고 싶은 고기들을 예산에 맞춰 골랐다. 야키니꾸는 처음이었는데, 앞에 불판이 하나 있어 스스로 구워 먹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비좁고 고기 연기가 자욱한 곳.


현지인들이 많았는데, 많다고 해봐야 자리가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었어서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은 갑자기 담배를 폈다. 대박! 나는 담배냄새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실내 흡연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일본 thing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J는 극혐했다.


아니 우리 고기도 시켰으니 술도 마셔야지? 뭐로 할까... 메뉴판은 온통 일본어였다. 나는 일본어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만 조금 읽을 줄 안다. 근데 메뉴판은 거의 다 한자였다. ㅆㅂ... 뭐가 술이고 뭐가 고기지...?


파파고 이미지 번역도 여기서만큼은 영 시원찮았는데, 글씨가 다 꼬부랑거렸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이승만 어록 비석. 독립기념관에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숭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같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맥주나 사케 같은 건 끌리지 않았다. 가볍게 하이볼 종류 한잔이 필요했다. 때마침 우리 바로 맞은편 벽에는 어떤 여성이 레몬사와를 들고 행복하게 웃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J는 힘차게 주인아저씨에게 외쳤다.


고레, 후타리!!!!!


참고로 말하면 J는 일본어를 잘 모른다. 짐작했겠지만 후타츠(두 개)와 후타리(두 명)를 구별하지 못하는 정도, 딱 여행자 수준의 일본어만 구사한다. 너무 거침없이 얘기해서 말릴 틈도 없었다.


아저씨는 키득대는 웃음을 섞으며 사진을 가리켰다. 이거? 두 명? ㅋㅋㅋㅋ


그 그림이 어땠냐면...


“아르바이트 구함”


“저건 직원 구하는 거야“


.................. 실화냐고. 그제야 여자의 얼굴 옆에 ‘아 루 바 이 토’라고 히라가나로 쓰여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저게 무슨 ‘이’냐고;; ‘루’는 왜 또 3 같이 써 놓은 거임?


그렇다. 나는 한자는 아예 몰라서 시급이 천 엔인 일자리 모집 공고를 레몬사와 - 천 엔으로 이해한 거다. 아저씨는 왠지 신이 난 듯했다. 막 멀리서 일하느라 바쁜 알바생을 어이어이 불러가면서까지 이 가게에 한국인 알바 두 명이 생겼음을 알리려고 했다.


아 진짜 차라리 오바를 떨었다면 데헷 쿵~ 하고 넘어갔을 텐데 말실수가 너무 웃겨서 ㅠ J와 둘이 뒤로 넘어갈 것처럼 웃었다. 진짜 좀 더 웃었으면 야키니쿠집 바닥에 누웠을 듯.


너무 급했다.


아마도 등심? 과 호르몬 고기. 호르몬은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마지막날까지 알차게 마무리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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