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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Mar 24. 2024

동전과의 싸움에 관하여

변하지 않으면 낙오되는 사람도 적다

하코다테의 버스에서. 글 내용과는 무관하다.


일본 여행을 다니며 가장 난제였던 건 역시 현금을 사용하는 일이었다. 동전을 분류해서 넣을 통까지 사서 갔건만 그래도 일본에서 현금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현금 쓰는 것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지폐와 동전을 적절한 타이밍에 쓰는 게 가장 어렵다. 한국과 화폐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갔다 돌아오는 날에는 지폐가 가득한 졸부가 되고, 일본에 갔다 돌아오는 날에는 동전을 하나 둘 주섬거리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여튼 우리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타려면 동전을 내야 했는데, - 우리는 스이카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 실제로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동전을 딱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거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60엔’. 아니 누가 항상 오백 육십 엔을 준비해 다니냔 말이다. 게다가 조금만 정신을 빼놓으면 오백엔 하나만 있거나, 십 엔짜리만 수십 개가 가득해 두둑한 지갑으로 다녀야만 했다.


굳이 따지면 후자가 제일 곤란한데, 돈이 많은 줄 알고 다 세어 보면 애매하게 520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잔돈을 또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너네 지금 장난하니?




후쿠오카에서. 이 여행도 만만치 않게 다사다난했다.


이건 삿포로에 갔을 때는 아니지만, 일본에 가서 동전으로 애먹었던 경험이기에 이곳에 쓴다. 내가 윤주 언니와 2박 3일로 후쿠오카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는 역시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앞서 잔돈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음! 편의점에 가서 작은 음료를 하나 사면 되겠군!


아니었다. 차라리 돈을 어디서 바꾸면 바꿨지 애매한 가격의 물건을 사 버리면 십 엔짜리가 부족하거나 백 엔이 부족하거나였다. 아... 참고로 나는 문과다. 잔돈 계산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당신이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어떤 외국인이 핸드폰에 이런 문장을 쳐서 보여준다고 해 보자.


560엔짜리 버스를 탈 수 있도록
잔돈을 거슬러주실 수 있나요?


어떨 것 같나? 참고로 내가 갔던 후쿠오카 지하상가 내 로손편의점 알바생은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불쌍하고 책임감 있는 이 알바생은 열심히 통하지 않는 언어로 나를 도와 버스를 탈 수 있는 돈을 만들어 줬다. 혼또니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이거 하나 하는데도 땀이 뻘뻘 났다. (그리고 우리가 후쿠오카를 갔던 건 10월 중순이기도 했다. 아직 더울 때란 말이다.) 문제 해결~


그러자 윤주 언니가 다시 카운터로 갔다. "저도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뒷말은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금 그 알바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코다테의 전차. 보이듯 많이 낡았다.


비록 500엔은 5000원에 상당하는 거금이고, 이런 일본만의 화폐 작동 방식으로 이들이 동전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수 요소지만, 나는 일본 여행을 하며 동전을 사용하는 것은 번거롭고 구식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생각은 이번 여행으로 조금 바뀌었다.


다시 하코다테로 돌아가자. 이곳에 도착한 날 우리는 버스도 탔지만, 옛날에 번성했던 도시의 정취를 느껴보자며 전차도 탔다.


하코다테와 삿포로 등에는 여전히 시내에서 전차를 운영하는데, 특히 하코다테의 전차는 많이 낡은 것이었다.


역시나 우리는 전차를 타기 위해 편의점에서 음료수나 초콜릿 따위를 사며 난리를 쳤고, 제시간에 탈 수 있을까 말까 조마조마하며 -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참 바보 같은 걱정이었다. 다시금 J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 정차역에 도착해 겨우 전차에 오를 수 있었다.


전차는 아주 느리게 갔다. 그리고 바닥이 오래된 나무 따위로 되어 있어서 옛 철길을 지나며 생기는 충격도 고스란히 내 엉덩이로 전해졌다. 디스코팡팡 ㄹㅈㄷ.


그러던 무렵 어느 정거장에서 아주 나이가 많아 보이는 - 어떻게 보면 먼 길을 이동하는 것이 놀라울 정도인 - 노파가 전차에 타는 걸 봤다.


그분은 아주. 아~주 천~천~히 전차에 탔고, 자리에 앉았다. 오... 그러다가 우리보다 먼저 내리셨는데, 혹시나 돈이 부족하진 않을까, 이렇게 내리는 게 맞을까 안절부절못하며 걱정하느라 부산스럽고 정신이 없던 우리완 다르게 편안하고 익숙하게 계산을 하고 내리셨다.


아무래도 이곳에 산지 오래되신 분이면 이 전차를 아주 많이 타셨겠지. 이 생각에 다다른 순간 동전 사용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았다. 무언가를 쉽게 바꾸지 않으면, 이전부터 사용하던 사람들이 적응하기 참 쉽다!


반면 한국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나라다.


사실 어떤 때는 그렇기에 지금의 한국이 만들어진 것이라서 이 속도감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맥도날드 키오스크 - 이상하게 맥도날드 키오스크가 제일 어렵고 불편하다. 나는 바나프레소의 키오스크가 아직까진 제일 좋다 - 앞에서 결제를 어떻게 할지 몰라 헤매는 나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아빠는? 자꾸 생각이 나는 거다.


그 노파의 나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우리 할머니랑 비슷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은 나이가 아~주 많으셔도 정정하신 노인 분들이 정말 많으니까.


그럼 우리 할머니는? 할머니가 키오스크를 쓰는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 정도로 한국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그냥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니, 별 걸 다 한국과 관련지어 생각하게 됐다. 이건 내가 여행에서 돌아올 즈음에 항상 걸리는 고질병. 여행의 의미를 만들기 위해 다분히 노력하기.


이번 여행에서는 오래된 것들이 많이 남은 일본을 생각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다시금 바쁘고 빠른 한국의 속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삿포로 마지막 숙소의 야경.




삿포로 여행기 『삿포로를 생각하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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