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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Nov 15. 2024

아! 나는 칼잠이 좋아

"침대 모서리, 이곳에서 소정이와의 꿈같은 시간이 흐른다."

새벽 4시 1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직 떠지지도 않은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노트에 적었다.


4시 알람이 울리고 몸을 휙 돌려 알람을 반사적으로 끈다. 이불 속의 포근함에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으려다 문득 가슴에 파고들어온 딸의 얼굴에 움찔 몸을 멈췄다. 낭떠러지 같은 침대 끝에 아슬아슬하게 모로 누워 잠든 지 벌써 4년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편하지도 않다. 4년간의 노하우로 애벌레처럼 몸을 움츠리고 조금씩 자세를 고쳐 누울 때, 나보다 먼저 깨어난 내 뇌가 속삭였다. "침대 모서리에 이렇게 누워 소정이와의 꿈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순간 의식이 번쩍, 나를 깨웠다. "적어!"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잠자리 독립을 시도했지만, 결국 남편이 잠자리 독립을 한 꼴이 되버렸다. 예쁜 슈퍼싱글 침대와 딸만의 방을 꾸며주었지만, 정작 딸에게는 엄마의 귀가 더 필요했다.(아직 귀를 만지며 잠든다.) 그 후로 4년 동안 혼잣말로 수십 번 불평했다. 편하게 잠도 못 잔다고, 이렇게 불편하게 자고 어떻게 일하러 나가냐고. 몇 번은 말도 안 되는 협박으로 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럴 거면 혼자 자라고...


딸은 참 쉽게 키울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기 때부터 까다로웠다. 11개월부터 치과 치료를 받았다. 내가 잘못 키운 것인지, 내 충치균이 아이에게 옮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어린 나이부터 충치 치료가 필요했다. 원래 치아가 약한 것인지 어쨌든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레진 치료한 치아만 15개쯤 된다. 11개월부터 3개월 단위로 치과 검진을 계속 받아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치열이 엉망이라 이른 시기에 교정을 시작했고, 매달 치과를 다녀야 했다.


7살 때부터 이유 없이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 번 어지럽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여러 번 머리 MRI를 찍고 소아과,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결국 습관성 구토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학년 때는 등교 후 수업에 한 시간도 참여하지 못하고 보건실에 누워 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조퇴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 집에 올수도, 집에와도 돌봐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복되었고, 마음이 타들어갔다.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어느 날, 키가 130cm밖에 안 되는 작은 아이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났다. 놀란 마음으로 소아과를 찾았고, 성조숙증 진단을 받았다. 만 8세였던 딸의 뼈 나이는 이미 만 11.5세였다. 초경이 시작되고 성장이 멈추는 시기를 뼈 나이 만 12세 즈음으로 보고 있었기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당장 치료를 시작했고, 성장 호르몬 치료도 추가하지 않으면 최종 예상 키가 150cm였다. "150cm? 뭐 어때!" 싶다가도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 성장 호르몬 치료도 시작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성장 호르몬은 혈당을 높인다. 6개월마다 혈액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늘 경계선을 밟고 있었다. 당뇨가 생길까 늘 조마조마했다.


한때 매달 소아과, 이비인후과, 치과를 방문해야 했다. 그 한달들은 어찌나 빨리 돌아오던지... 5년 동안 일주일에 6번씩 배에 주사를 찔렀다. 말로 쓰니 간단해 보이지만, 참 많은 고통이 있었다.


어제는 특별한 날이었다. 2학년 때 성조숙증 진단을 받고 5년 동안 맞았던 성장 호르몬 주사가 드디어 끝났다. 치아 교정도 끝나가고, 습관성 구토도 이제는 연 1~2번 정도로 줄었다. 2차성징을 늦추는 성호르몬 주사는 이미 1년 전에 끝났고, 이제 성장 호르몬도 종료되었다. 현재 키는 160.7cm, 예상 키는 166cm라는 소식을 들었다.


참, 이런 결과를 알았더라면 그동안의 힘들었던 날들을 조금은 덜 괴롭게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치료의 시작은 정말 캄캄했었다. 치아 교정만 빼고는 장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모두 잘 건너왔다. 기쁜 마음에 마지막을 기념하는 인생 네 컷 사진도 찍었다.


이제 남은 건 딸의 잠자리 독립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게 칼잠을 자는 지금이 오히려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 내 무의식이 나에게 던져준 이 꿈같은 시간의 소중함을 간직하며 딸과의 남은 꽁냥꽁냥한 시간을 감사히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저녁의 불편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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