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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r 25. 2024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사람이 모든 혐의를 인정한 순간부터 사건은 내 손을 떠나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긴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한 걸음 무사히 디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기약없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초조와 불안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라면서 어렴풋이 배웠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은 버리고 오로지 합리적인 감정만을 취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평온.


그래봤자 한낱 범죄자밖에 못 되는 그런 것 따위에 나는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그런 조잡한 일에 계속 흔들리기에는 내가 너무 귀했다.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귀하고 소중해서 무엇 하나 잃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바랐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이 평온하고 안정된 내가 되기를.

그래서 담담하게 서점으로 향했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 출근하기 전 자투리 시간에 서점에 들르려 했다.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스티커가 거의 다 떨어져서 예쁜 새 스티커를 사고 싶었던 것이다.

색색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꾸며진 스티커 진열대 앞에 서서 열댓 장의 스티커를 신중하게 골라집었다.

내 눈엔 그게 그건데 조그만 아이들 눈에는 뭐가 그렇게 다른지 취향이 제각각이라 아무거나 사 가면 구박을 받을 터였다.

어느 새 양손 가득 찬 새 스티커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길,

습관처럼 신간 도서 진열대를 눈으로 훑는데 문득 한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당신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라고 쓰인 그 문장이 꼭 지금의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 그대로 들어 계산대로 갔다.


-


다음으로 차에 돌아와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사건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다.

주말에 올린 글을 이미 보았던 것이다.

담담하게 전화를 받아준 언니 덕분에 나 또한 입을 열기가 한결 쉬웠다.

언니에게 부탁이 있었다.


“엄마랑 아빠한테는 아직 말할 준비가 안 돼서. 당분간 모르는 척 해줄 수 있어?“


언니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네 마음에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일단 지금은 너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자매는 지독히도 많이 싸웠다.

한 번 붙으면 누구 하나 피를 봐야 싸움이 끝났고, 손에 감긴 서로의 머리카락을 절대 먼저 놓는 법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언니가 서울로 독립한 뒤,

매일 마주치던 얼굴을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한 사이가 되자 그제야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우린 서로에게 아주 살갑고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용건이 있을 때나 한 번씩 연락을 하는 그런 자매였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적 동네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울면서 집에 돌아온 날,

언니는 내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가서 거기 있던 아이들을 모두 쥐어팼다.

그 애들의 엄마들이 화가 나 집에 전화가 빗발쳤을 때도 언니는


“그러니까 남의 동생을 왜 괴롭혀!”


라며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차마 혼낼 수 없었다.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서 집을 비웠던 며칠간,

언니는 매일 떡꼬치와 슬러시 같은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라고 건넸다.

덕분에 6살의 나는 엄마가 곁에 없던 시간동안 울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매해 생일이 다가오면 언니로부터 연락이 온다.

‘생일 축하해, 뭐 필요한 거 없으면 용돈 부친다.’

라는 간결한 문장과 함께.


같은 부모 밑에서 함께 자란 20여년의 시간,

말하지 않아도 언니는 알고 있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내 마음을.

말할 수 없는 비밀 덕에 무거워진 마음도.


언니가 내 결정에 그저 ‘그래, 그렇게 해.’라고 말해준 그날,

혼자 감당하기 무거웠던 비밀을 꼭 언니와 나누어 든 것만 같아서.

그게 내게는 참 큰 힘이 되었다.


-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잔병치레가 잦고, 낯가림이 심해 7살이 되도록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문턱은 밟아본 적도 없는,

편식이 심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지금도 조금만 몸이 아프면 엄마의 걱정이 쏟아진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랑의 흔적 같아서 내심 관심 받는 것을 즐겼던 적 때도 있었다.

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 세 남매를 먹이고 입히기 위해 바빠진 부모님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걸 깨달은 건 언제일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에는 이미 알아서 용돈 벌이를 하고 진로를 준비하는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다.

혼자가 편해진 나를 보며 이따금 엄마는 마음 아파했다.

예컨대 코로나에 걸려 5일 내리 빈 속에 앓아 누워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전화를 받았던 날.

지금이야 안 걸린 사람이 더 드물다고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걸리면 큰일이 나는 무서운 병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터라 가족에게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쇳소리가 나는 쉰 목소리를 듣자마자 엄마는 상황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애미가 돼서 자식은 혼자 빈 집에 갇혀 앓아누운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두 다리 뻗어 잠을 잤다.”


말을 한 적이 없으니 몰랐던 게 당연한데도 엄마의 목소리에는 속상함이 가득했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엄마는 다음 날 아침,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집앞에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밤새 만들어 양손에 한 가득 들고 와 문 앞에 두고는,

‘입맛 없다고 밥 굶지 말고 다 먹어, 남기면 안 돼.’

라고 말한 후 다시 먼 길을 돌아갔다.


-


어른이 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생각보다 소중한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입사한 지 3년쯤 됐던 해의 어느 날, 시간에 쫓기며 수업 7개를 모두 마쳤다.

밤 10시가 되어 집으로 향하는데 문득 그날 밥은 커녕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것을 깨달았다.

대뜸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며 모든 것이 지치고 피곤하게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랑 두부조림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차를 돌려 부모님 댁으로 가려던 순간 이내 마음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힘들고 약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사랑하는 이들의 밤을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 느꼈다.

소중한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한 가지,

그건 가장 지치고 약해진 순간의 초라한 내 모습.


-


혼자서 해결하기에 무섭고 막막한 일이었지만 도저히 남은 가족들에게 이야기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할 엄마, 아빠의 모습이 눈 앞에 선했으니까.

차라리 시간이 흐르고 무사히 일을 잘 해결한 후에 웃는 얼굴로 이야기해야지.

엄마, 아빠 딸이 이제 어른이 돼서 이런 일도 혼자 잘 이겨낼 수 있게 됐다고.

나는 이제 정말 괜찮으니까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젠가 때가 오면 그렇게 꼭 말해줘야지, 다짐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을 때 부모님이 날 질책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처음 운동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했을 때부터 엄마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몸도 약한 애가 무슨 그런 무식한 운동을 해, 그냥 밥이나 제때 잘 챙겨 먹고 가볍게 산책이나 해.”


그러니 어쩌면 모든 사실을 알고난 엄마가 도리어 나를 책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두려움, 걱정 등이 있었다.

‘그러게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왜 쓸데없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 모두 차치하고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온전히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어떤 반응을 보아도 괜찮아질 때까지,

마음이 다시 단단해질 때까지 모든 것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


그렇게 나에게는 졸지에 큰 비밀이 하나 생겨버렸다.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마음 한 켠이 콕콕 쑤셨다.

이 상황을 바로잡고 싶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는 주제에 정작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는 무엇 하나 말할 수 없는 삶.

사실은 내가 두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밝힐 어느 날,

이 책이 두 분의 손에 전해질 그 날에 엄마, 아빠가 느끼게 될 감정의 무게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웃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무뚝뚝한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괜시리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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