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후 찾아온 첫 주말, 분주한 아침이 시작됐다.
2개의 협창 일정을 위해 아침 일찍 서울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압구정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하고, 저녁에는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 관람을 해야 했다.
전날 밤에 미리 준비해 둔 캐리어를 끌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조금도 설레지 않는 마음으로.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길, 멍하게 노래를 들으며 창 밖만 봤다.
사실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시체처럼 질릴 때까지 잠이나 자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엄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책임감 없는 선택은 현재의 나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사람 때문에 내 계획이 틀어지고, 망가지는 것이 싫었다.
그 정도 형편없는 짓을 하는 사람 때문에 흔들리기에는, 소중하게 일궈온 내 삶이 너무 아까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고이 접었다.
약 30분가량 지나서 역에 도착할 무렵에는 오히려 조금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집에 있으면 불안하잖아.’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있는 그 사람이 혹시나 집 주변을 기웃거릴까 봐 지난 며칠간 불안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 온 날 저녁, 담당 형사님으로부터 가해자에게 주의를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법이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짓을 벌일 생각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양심도, 죄책감도 없는 표정으로 결백을 주장하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니 주말만큼은 잠시 집을 떠나서 그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가서 마음 편히 쉬다 오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겨우 잔잔해진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고, 가방 속에 챙겨 온 책 한 권을 빼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뻐근한 목을 움직이며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풍경에 몸이 굳어버렸다.
내 자리는 열차 정방향의 첫 번째 줄로, 역방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
그 렌즈들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알고 있다.
그 렌즈들은 나와 전혀 무관하며 그저 사람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임을.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다르게 몸은 고장 난 기계처럼 제멋대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머릿속에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은 식은땀이 흐르는 두 손을 허벅지에 문지르며,
머리통을 땅으로 처박은 채로 애꿎은 신발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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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리면 해결될 줄 알았던 불안은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철까지 따라붙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파와 점점 몸에 힘이 빠졌다.
결국에는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채, 해골 같은 몰골이 되어 메이크업 샵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타일링을 하는 2시간가량 멍하게 늘어져 있었던 덕분에 다시 움직일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사진작가님과 인사를 나눈 후, 오더에 따라 원활하게 촬영이 진행되었다.
사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내 반응을 예상할 수 없어 걱정이 컸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불안에 질식할 것처럼 굴더니, 신기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대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 뜨니 밖이 어둑해졌다.
저녁 일정을 위해 다시 옷차림을 정돈하고 혜화동으로 향했다.
보고 싶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함께 연극을 보고, 근처 술집으로 갔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한참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저하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고소장을 써 보고, 경찰서를 방문했다고.
다가오는 월요일에는 피해자 진술을 하러 다시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제 일처럼 같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던 친구는 그 순간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었다.
네 잘못 아니라고, 나쁜 건 전부 그 사람이라고.
넌 침착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를 했고, 또 무사히 오늘을 버텼으니.
내일의 일들 또한 당당하게 잘해나갈 거라고.
지난밤, 혼자서 마음으로 중얼거렸던 말들이 있었다.
그저 단어를 외우듯 반복해서 머릿속에 쓰고, 또 쓰던 문장들.
그 말들이 마침내 귓가에 울려 퍼져 내 안으로 들어왔을 때,
희미하게 쓰여 있던 문장들 위로 꾹꾹 연필을 눌러 덧쓴 것처럼.
굵고 짙어진 문장에 전에 없던 확신이 담겼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나를 일으켜 세워 가야 할 방향으로 등을 떠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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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눈을 떠서 하루 종일 글을 정리했다.
고소장 전문을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고, 가해자와 나눈 문자 내용에서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어들을 가렸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의 음성 녹음 파일을 수백 번 반복해서 들으며 대화 내용을 타이핑했고,
그 모든 자료들을 정리해서 SNS 계정에 올렸다.
당시 내 계정의 팔로워 수는 약 6000명 정도였는데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알리고 싶었다.
혹시 모를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평생 고생이나 불행 같은 것 모르고, 온실 속 화초처럼 사랑만 받으며 자란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SNS는 여느 계정들이 그러하듯 언제나 행복하게 웃는 얼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불평, 불만 따위는 뒤로 숨긴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매일을 웃었다.
그러나 호텔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글을 썼던 2022년 04월 24일.
평생 선망하며 그려온 자화상을 바닥에 내려놓고 마침내 현실을 마주 보았다.
‘구김 없이 자라 언제나 해맑고 순수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는 이제 글렀구나 생각하며.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11월 12일.
오늘 이 순간까지 지나쳐온 모든 선택들 중 어느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고.
거울 앞의 내가 웃으며 내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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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공론화하기까지 마음속의 수많은 자아가 충돌했다.
그럼에도 굳이 일을 키우고, 지금에 와서는 지나간 일들을 모두 꺼내어 글로 엮고 있다.
나는 내가 겪은 불행을 몇 번이고 알리려 한다.
불행이 찾아왔던 때의 나를, 괴롭고 힘들었던 나를, 결국엔 받아들인 나를.
이런 나조차 결국 ‘나’이기에.
나는 매일 많은 아이들과 만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해 청소년기의 아이들까지, 꽤나 폭이 넓다.
지난 6년간 매주 만나며 우리는 함께 커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아이들은 나를 어른으로 성장시켰다.
“같이 백화점을 가면 지나가다 한 번씩 ‘엄마, 이거 우리 영어 선생님이 입고 왔던 옷이야.’ 같은 말을 해요.
그 애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나 선생님에 대한 건 귀신같이 다 기억하거든요.
선생님이 이 아이 인생의 롤 모델이에요.”
수년 전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잠시 한 학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는데 어머니께서 저렇게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 어머니는 그날 우리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저 말씀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실 거다.
별 보잘것없는 한심한 사람.
스스로에 대한 평가였다.
엉망진창 되는대로 살아온 삶이었고, 부끄러운 선택들을 밥 먹듯 해왔다.
그런 나에게 인생의 롤 모델이라니,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부터는 반드시 좋은 어른이 되자고.
미래에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를 떠올렸을 때, 고작 그런 사람을 롤 모델로 삼았다며 후회하지 않도록.
최소한 괜찮은 어른이라도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머리 꼭대기에 보이지 않는 눈을 달고 다닌다.
오늘 내가 저지른 부끄러운 행동을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른 선택을 따르는 것은 조금은 더 쉬워진다.
‘저도 커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될래요.’
라고 말하는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언젠가 나와 같은 어른이 된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살아온 하루를 살아가겠지.
먼저 그 시간을 보내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오늘을 임해야 할까, 고민하며 보내온 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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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공론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들이다.
나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욱 성숙해지길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느끼고, 경계하길 원한다.
위기감 때문에라도 잠재적 가해자들이 망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게 되길 원한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도록,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이 사건이 힘을 보태어주길 원한다.
그것이 너무 이상적인 소망이라면 작은 선례라도 되기로 했다.
물론 절대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나 또한 원해서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이 아니듯이 세상은 가끔 생각지 못한 일로 우리를 힘겹게 한다.
그러니 언젠가 예상치 못한 불행을 만나 억울하고 힘든 하루를 견뎌야 할 때,
지나온 나의 시간들이 그 아이들에게 이겨낼 힘을 주기를 바랐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중에서 나는 이런 방식을 택했고,
너 또한 결국 네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을 할 테니 너무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그러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며 매일을 성장해 왔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슬픔을 견디는 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