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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pr 09. 2024

나를 살게 하는 사람

달이 바뀌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범죄피해평가 조사를 받았다.

지난번 상담 센터에서 받았던 것과 비슷한 형식의 설문지 몇 장을 작성했고,

결과가 나오는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경찰서 문턱을 조금은 익숙해진 발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완연한 봄날의 햇살을 맞으며.


-


그즈음, 그 사람의 지인, 혹은 지인이었던 사람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고,

이전까지는 몰랐던 그 사람의 이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기특해서 편의를 봐주었더니 몰래 수업료를 횡령하고 있었다든지,

수업 시간에 성적인 발언을 해대서 성희롱으로 신고하려다 말았다는 이야기.

또, 여자친구가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한때나마 연애 감정을 키웠던 한 여성 회원은 그 사람의 집에서 보냈던 하룻밤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 사람 집에도 카메라가 있었으면 어떡하죠?

직장에서도 그럴 정도면 자기 집에서는 더 할 수도 있잖아요.

설마 저 그날 찍힌 거 아니겠죠?"


언젠가 수업 시간에 그 사람이 자랑스럽게 보여줬던 여동생 사진이 떠올랐다.

나이 차가 꽤 나는 어린 여동생을 둔 탓에 늘 세상이 걱정스럽고,

여자들을 대할 때면 동생이 생각나 더욱 조심스러워진다던 말도.


그 사람은 날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린 걸까?

'그런 사람'이란 뭘까.


-


다시 며칠이 지나 5월 10일.

약 2주 만에 방문한 상담 센터에서 본격적인 첫 상담이 시작됐다.

상담 선생님은 먼저 앞으로의 상담 과정에서 기대하거나 목표하는 바가 있는지 물었다.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잠도 자고, 밥도 하루에 한 끼는 꼭 챙겨 먹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가끔은 감정이 쏟아져 나와서 조절하기가 힘들어요.

스스로에게 미친 듯이 화가 나거나 이유 없이 속상하고 불안하거나.

그냥 생각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해요.

생각을 멈추고 싶어요, 아님 머릿속이 좀 정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듣다가 이따금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목표 설정이 끝나자 지난번 심리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울과 불안의 정도가 약간 높으며, 과각성(신체적,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각성된 상태)과 재경험(무의식 중에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계속 상기시키거나, 당시의 신체적 반응이 반복되는 상태)에 대한 수치가 높은 편.


진단 결과였다.

‘내가 이상해지고 있구나’ 라며 속상한 마음이 들던 차에 선생님이 말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반응들 중 일부예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당한 우리의 뇌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이는 아주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니까요.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아, 내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구나.’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러기로 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보통의 피해자들은 사건과 관련된 자극을 되도록 피하려 하는 회피 증상을 겪곤 하는데,

내 경우는 그 수치가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나는 사건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고소장을 쓸 때도, 인스타그램에 사건에 대한 글을 올렸던 날에도, 또 걱정하며 연락해 오는 사람들을 안심시킬 때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꼭 어제 본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 정도는 이제 익숙했다.

정작 날 괴롭힌 것은 사건과 전혀 무관한 더러운 방 안 풍경이었다며,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셨나요?”


-


충동은 갑자기 찾아왔다.

24살 어느 겨울밤 퇴근길,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고가도로 위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멀리, 커브 구간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슬슬 핸들을 돌려야 하는데 대뜸 엑셀을 끝까지 밟아서 앞으로 돌진하고 싶었다.

그래서 저 담을 부수고 도로 밖으로 차가 떨어져 나가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가 폭발해서 불에 타 죽으려나, 아님 그전에 목뼈가 먼저 부러질까?

커브 구간은 점점 더 다가오는데 몸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쉬고 싶다,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미친 듯이 부풀어 올랐고 곧 팡! 하고 터졌다.

'일이 잘못 돼서 살아나면 어쩌지?'


죽으려면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로 살아버리면 너무 곤란하니까.


-


“이런 자신의 모습들을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사실 평상시의 나는 정말 괜찮다.

오히려 대부분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특히 일을 할 때.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그 애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은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매일 같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니 기쁘고 감사한 삶이다.


그런데 가끔, 한 번씩 출처를 알 수 없는 우울이 밀려온다.

퍽 힘들지도 않으면서, 더 힘든 하루도 묵묵히 견뎌내고 있을 사람들이 허다한데.

죽을 용기도 없는 주제에 지친다는 둥, 쉬고 싶다는 둥.

배부른 소리나 하며 불쌍한 척 연기하는 모습이 혐오스럽다.


“스스로에게 되게 비판적이시네요.”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감정을 대하는 내 방식이 꼭 압력 밥솥 같다고 했다.

덤덤하게 잘 지내다가 한 번씩 감정이 훅 꺼지고, 다시 또 차오르는.

한 번씩 김을 치- 하고 내뿜는 압력 밥솥처럼, 끓고 있던 감정들이 한 번씩 김을 뿜으며 쏟아져 나온다.


"그 방식이 익숙하다면 굳이 바꿀 필요는 없지만, 종종 감정의 증폭을 못 이겨 위험한 생각에 시달린다면 변화를 위해 같이 연습해 볼 수도 있겠네요."


감정을 자주 인식하고, 표출하고, 소화하는 연습을 제안한 후, 선생님은 종이 한 장을 주셨다.


"생명 존중과 자해/자살금지 서약서예요."


이깟 종이 한 장에 서명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름을 꾹꾹 눌러썼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

또 죽고 싶은 충동이 너무 버거운 날에는 도움을 청하겠다는 약속.


-


"아까 아이들 얘기를 하시던데, 일 하시는 곳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서약서를 쓰는 동안 방안에 적막이 흘렀고, 침묵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이끌었다.


대학을 갓 졸업했던 2017년, 영어 강사가 된 24살의 나는 어렸고 미숙했다.

원체 숫기 없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수업 때마다 마주치는 어머니들과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어떻게 가까워져야 할지.

그땐 그게 참 어려웠다.

문자 한 통 남기려면 메모장에 적어 서너 번씩 검토를 했고, 전화 통화를 해야 할 때는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곤 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지나 2022년, 29살이 되었다.

더 이상 학부모 상담이 부담스럽거나 무섭지 않다.

새로운 수업을 시작할 때는 설렘이 앞서고, 수업 전후 틈틈이 학부모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6년을 통틀어, 내가 만난 아이들은 언제나 참 사랑스럽고 귀했다.

누구 하나 싫었던 순간이 없을 만큼.


10살 남짓 된 작은 아이들과 첫 수업을 시작한다.

한번 시작된 수업은 4, 5년간 이어지고 그 사이 아이들은 자란다.

앞니가 빠진 얼굴로 해맑게 웃고, 품에 안으면 쏙 들어오던 그 작은 애들이 소리 없이 자란다.

어느새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만큼 커버렸음에도 처음 만났던 날의 작고 여린 모습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애틋한 첫 만남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아이들이 늘 그랬듯이 환히 웃는다.


-


사람들이 종종 말한다.

'4년이나 알고 지낸 사람한테 그런 일을 당했으니 이제 어떻게 사람을 믿겠냐'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을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라 믿고 싶다.

내가 만나온 모든 아이들처럼,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6년간 참 많은 아이들과 알고 지냈다.

그 많은 아이들 중 못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공부 안 하고 숙제 안 해오는 아이들이야 간혹 있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날 싫어해서, 상처주기 위해 그 아이들이 속을 썩인 것이 아님을 안다.

공부가 하기 싫은 마음이야, 어른인 나조차 배움을 게을리하는데 애들은 오죽할까.

하기 싫은 마음을 견디고 매시간마다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기특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못 하는 아이야 있었을 망정 못된 아이는 없었다.


"사실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아픈 날들이 종종 있잖아요, 이번 사건처럼요.

그럴 때면 관계에 대한 가치관이나 신념이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해요.

지원님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무너진 가치관이 다시 채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고 여린 아이가 자라서 어느 날 어른이 된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선한 마음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어 세상을 물들여간다.

우리 모두가 같은 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해맑던 아이의 모습을 어딘가에 품고, 치열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도무지 미워할 수도, 등질 수도 없어 그저 사랑을 하기로 했다.

내일 다시 실망하고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을 오늘은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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