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4월 26일.
사건이 기사화 됐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 여러 곳에 내 사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사건이 최대한 많은 관심을 받고, 지켜보는 많은 시선 속에서 공정하게 처리되기를 바랐다.
내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다니,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 다는 동요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애석하게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언론에 내 이야기를 싣게 될 줄이야.
이름도, 얼굴도 모를 사람들이 찾아와 나에 대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타까워하는 사람과, 분노하는 사람들 속에 간간히 조롱하는 댓글들이 보였다.
각오한 일이었지만 착잡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날 밤은 길었다.
중요한 시험을 하루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느 고시생의 새벽처럼,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긴장감이 자꾸만 잠을 내쫓았다.
해가 뜨면 시작될 또 다른 하루가 익숙지 않아서, 커튼 사이로 빛이 스밀 때까지 이불속에서 꾸물 꾸물.
몸을 뒤척이며 보낸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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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7일 오전 9시.
첫 심리 상담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기 앞서 현재 심리 상태를 진단했다.
몇 장의 종이 뭉터기를 받고, 한 문장씩 천천히 읽으며 문항을 체크하던 중,
‘이 정도면 멀쩡한 것 같은데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나같이 유난 떠는 사람 때문에 정작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어찌 됐든 잠을 자고, 운동도 하고, 일도 한다.
심지어 아이들과 정신없이 수업을 할 때면 사건에 대한 모든 걸 잊고 농담을 하며 박장대소할 때도 있다.
이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때는 ‘혹시 내가 아무렇지 않아서 이 사건이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라며 불안해했다.
그래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에서 나는 꽤 담담했고 제법 씩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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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8일 오전,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을 때 역시 그랬다.
‘범죄 피해 평가’ 제도 신청에 대한 안내 연락이었는데,
‘범죄 피해 평가’란 범죄 피해자의 피해 상황을 전문가가 진단하고, 평가한 내용을 자료화하는 제도이다.
자료화된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는데,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가해자의 죄질을 판단하는데 유효한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 전담 경찰관께서는 피해자를 위한 제도 중 하나이니 인터뷰를 하는 쪽이 더 좋지만,
아직 사건을 겪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지라 이야기하는 게 힘들 수 있으니 꼭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한 번 고민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데 충분했고, 내 사건을 잘 해결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방문 일정을 잡고 통화를 마친 후, 침대에 드러누워 잊어버리지 않도록 캘린더에 일정을 저장했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옆에 내려놓고 슥 고개를 돌리자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집이 왜 이렇게 더럽지?’
생각해 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았다.
내내 방치되어 있던 방안은 먼지와 머리카락이 뭉쳐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방구석 한편에는 옷더미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늘 아늑하고 깨끗했던 내 휴식처가 언제 이런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나,
갑자기 난데없이 화가 났다.
‘손바닥만 한 집도 제대로 관리 못 하는 주제에 네가 뭘 하겠다고?’
이렇게 한심하고 쓸모없는 게 나라는 인간이었지.
다른 생각은 할 틈도 없이 혐오가 파도처럼 방 안 가득 차올랐다.
‘남들 앞에서는 괜찮다고 온갖 잘난 척을 다 하더니 사실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등신.
그러니까 멍청하게 이딴 일이나 당하면서 인생 축내고 있지, 네가 똑바로 할 수 있는 게 있긴 해?’
그러게, 지금껏 나는 뭘 해온 걸까.
쉬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뭘 하고 있었는지 확신이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걸까.
살아야만 하나?
지친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매일도, 아등바등 대며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나 자신도.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삶은 이렇게 늘 제멋대로 뻗어 나갈 텐데.
지겹다.
소란스러운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죽음을 상상했다.
부엌에 있는 칼을 꺼내서 화장실로 들어가자.
따뜻한 물아래서 팔을 긋고 앉아 있으면 언젠가 죽지 않을까?
너무 아픈 건 싫은데 죽기 전엔 많이 아플까?
진통제라도 잔뜩 먹으면 좀 덜 아프지 않을까?
천천히 죽음이 다가와줬으면 좋겠다.
잠이 드는 동안 아주 살금살금,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렇게 고요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준비물을 하나씩 모아 발아래 펼쳐두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엎드려 누워버렸다.
‘근데 내가 죽으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 사람은 제대로 벌을 받는 건가?’
‘오늘 수업은 어쩌지? 아이들은 알면 안 되는데.’
‘옆 집 사람들 많이 놀라겠다.’
‘엄마, 아빠는…….’
많은 질문들을 떠올렸다.
이를 악물고 죽으면 안 될 이유들을 잔뜩 끄집어내서 기어코 살아야 할 핑계들을 찾았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어차피 죽지도 못할 거면서.
불쌍한 척, 약한 척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혐오를 느꼈다.
그렇게 엎드려 누워 한참 동안 입 밖에 내지도 못할 욕들을 속으로 실컷 떠들어댔다.
지칠 때까지 욕을 퍼붓고 나니 마침내 모든 게 고요해졌다.
몸을 일으켰다.
가까이 널브러진 옷가지를 하나씩 주워 정리하며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묵은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화장실 청소와 밀린 분리수거까지 모두 끝내고 나니 1시간이 조금 더 지나 있었다.
말끔해진 방 안에 앉아서 창틈을 비집고 온 봄바람을 맞았다.
하얀 커튼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흔들렸다.
사이사이에 햇살이 들어와 발밑 바닥에 고였다.
눈이 부셨다.
가장 좋아하는 봄날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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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상하운동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멀리서부터 전속력으로 돌진해 한 입에 땅을 삼키는 듯 하지만,
사실은 제 자리를 떠본 적 없이 위와 아래로만 들썩인다.
그러니 바다는 늘 변함이 없다.
오로지 육지와 맞닿는 해변에 다다라서야,
파도는 잘게 부서지며 앞으로, 또 뒤로, 모래를 쓸어내린다.
부서진 파도가 내딛는 처음이자 마지막 한 걸음.
그 한걸음은 육지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하루에 70만 번을 친다던가.
파도는 그렇게 수십만 번, 매일 온 힘을 다해 발을 내디뎌 바위를 깎고, 고운 모래를 흩뿌린다.
영혼은 어쩌면 깊은 바다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매 순간, 몰아치는 생각과 감정에 삶은 깎이고, 또 흔들리며, 쓸려 내려간다.
스러져간 삶이 자취를 감춰 가끔은 그것을 잃었다 착각하지만,
밀물이 지나 썰물 때가 찾아오면 잃어버린 줄로 알았던 삶의 조각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모든 것은 저마다의 자리에 남아 존재한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날들에서 우리는 부서지고, 흔들리며, 상처 입는다.
마음이 고되고 힘들 때면 삶 자체가 망가지고 무너진 것만 같다.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실망은 파도처럼 매서운 속도로 마음을 삼켜서 언제나 우릴 핍박하고 못 살게 굴지만,
괴로워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바라본 삶은 단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태어난 이래 쉼 없이 자아의 파도를 맞으며 단단하고 날 선 인생을 둥글게 깎아내는 일.
반복적이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70만 번의 파도는 그렇게 매일 요동치며 바다를 이뤘다.
그렇게 일궈낸 바닷속 가장 깊은 곳에 지나온 우리의 삶이 잠들어있다.
영혼의 가장자리에 삶이 녹아있다.
그 중심의 가장 깊은 어딘가에, 늘 변치 않는 오롯한 저마다의 영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