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쉬의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다.
이른 아침 일어나 바로 발코니 문을 여니 거대산 산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어젯밤에는 이렇게 커다란 산이 숙소 바로 앞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직접 바로 코 앞에 산을 마주하게 되는 발코니 풍경은 처음이다.
산을 깎아 만든 굽이진 도로를 다니는 자동차들이 간간이 보이고 저 멀리에는 지중해도 보인다.
어젯밤에 들었던 파도소리는 어디서 들린 소리였을까?
하루종일 바다와 함께 하고 또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젠 환청까지 들리나 싶다.
아무렴 어떠랴....
그런 환청은 언제든 환영이다. ^*^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둔 채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은 나만의 잔잔한 힐링이다.
청록색 푸른 바다와 재스민 꽃 향기 나는 조용하고 쾌적한 마을에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까?
고민도 해본다.
역시 바다로 나가야겠다 싶다.
아름다운 청록색 바다를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기엔 내 몸이 허락하질 않는다.
숙소 근처 비취로 향하는 길... 멀리서 보이는 해수욕장이 아담하고 아늑하기까지 하다.
조그마한 해변인데 양쪽을 절벽이 막아주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든다.
바닷물에 들어가기엔 조금 이른 아침인데 벌써 바다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다.
이 시간에도 수영을 하는 걸 보니 우리만큼이나 바다에서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나 보다.
오늘 카쉬 마을에서의 우리 계획은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나는 보트 투어이다.
요트를 타고 다니며 다섯 곳에서 정박을 하고 네 번의 바다 수영과 한 번의 섬 유적지를 탐사하는 스케줄이다.
카쉬에서 하는 보트투어는 어제 케메르(Kemer)에서 했던 스카이다이브 투어보다 서비스가 좋은 것 같다.
과일과 차, 비스킷, 샌드위치 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고 우리가 타고 있는 요트도 훨씬 넓고 시설도 더 좋다.
미리 온라인으로 점심 메뉴를 신청하면 우리의 요구대로 점심 식사 준비를 해주는데 나는 타북 케밥을, 남편은 생선튀김 요리를 주문했다.
안락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멋진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보트 투어이다.
공교롭게도 오늘도 어제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여행을 온 부부를 만났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늘 만난 부부는 결혼 한지 1년 된 신혼부부였는데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아내도 나와 같은 교사다.
방학이 아닌데도 열흘 간의 휴가를 내고 왔다는 데 한국이라면 가능할까 싶다.
한국에서는 방학을 이용하여 잠깐씩 휴가를 내야 했던 과거의 내 상황과 비교가 된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아내의 부모도 모두 교사셨다니 나의 친정 부모님 역시 교사이셨던 나의 환경과 똑같아 서로 신기해했다.
현재 그녀는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인데 학생들과 수업하기가 점점 너무 힘들다고 토로를 한다.
내가 근무할 당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공감을 했다.
교사의 위치와 역할이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는 상황은 나라에 상관없이 마찬가지인가 보다.
또 남아공화국은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학비와 커리큘럼의 차이가 크고 학생들의 성향도 매우 다르다고 했다. 빈부의 차이가 큰 나라일수록 생기는 교육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부부가 여행을 많이 하고 또 직업이 비슷해 공통점이 있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첫 정박지에 도착했는데 'Inonu Bay'였다.
올리브 숲으로 둘러싸인 바위가 많은 해안을 마주하고 있는 있는 이곳은 비취색 바다의 절경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투명하고 맑은 지중해에 몸을 던지니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배가 정박한 후 약 45분 동안 자유시간을 주면 사람들은 수영을 하거나 배 안에서 편안한 휴식을 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 수영을 하기 위해 지중해에 몸을 던진다.
우리도 풍덩!!
아무도 발을 밟지 않은 이곳(Inonu Bay)을 가장 먼저 도착해 보자고 남편과 약속 후 우리는 힘차게 물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쾌감을 느낀다.
대략 200미터 즈음 열심히 수영을 해서 갔을까?
드디어 도착해 보니 우리가 제일 먼저 자갈을 밟는 순간이다. 야호!!
뒤 이어 우리를 따라 헤엄쳐 온 사람들이 이 아늑하고 아름다운 해변을 보며 감탄을 한다.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야생 돌고래를 볼 수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런 기적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이런 평화롭고 멋진 순간이 정말 그리웠는데 원 없이 즐길 수 있겠다 생각하니 저절로 행복해진다.
높은 곳에서 다이빙을 하는 사람, 구명조끼를 입거나 튜브를 안고 물에서 노는 사람,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하는 사람, 친구들끼리 물 위에 떠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 등 각각 다른 표정과 행동으로 다양하게 아름다운 바다에서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중해를 눈으로만 즐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 ‘수족관베이(Aquarium Bay)’에 도착했다.
소나무 숲과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만(bay)은 그림 같은 편안한 분위기로 지중해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강한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고 맑은 바다라 그런지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물고기들이 노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맑은 지중해의 부드러운 물결을 피부로 느끼니 그 자체로도 만족스럽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이 되어 배에 올라가니 식탁엔 이미 주문해 놓은 점심식사가 놓여있다.
근데 바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너무 놀았던 탓인지 따뜻해야 할 음식이 미지근해졌다.
하지만 수영을 한 후에는 왜 그리 배가 고픈 건지 주는 음식 남기지 않고 모두 먹으니 그제야 배가 부르다.
갑판으로 나가 바다를 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시니 그야말로 기분이 최고다.
이어서 Kekova island(케코바 섬)의 Sunken city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정박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 준 작은 배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우리는 배에서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 보면서 지나쳐야 했다.
우리가 보고 지나는 곳은 한마디로 '케코바 침몰 도시'였다
리키안(Lycian)과 비잔틴(Byzantine) 시대에 가장 화려했던 이곳은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고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따라서 수중에 있는 고대 도시의 유적과 유물들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고대 수중 도시가 있는 모든 지역에서 수영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집과 건물의 벽, 상가와 목욕탕 등이 있던 흔적을 보니 그 당시 의외로 거대한 생활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물에 잠겨버린 고대 도시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 침수 전의 이전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음은 ‘조선소 베이(Theimussa ancient city)’라는 곳을 들렀다. 이곳도 sunken city의 일부로 배를 만든 곳임을 알 수 있는 장소였다.
작지만 매우 그림 같은 해변이다.
아름다운 장소를 지나치기 어려워 이곳에서 우리는 또 바다로 들어갔다.
남편은 배의 높은 곳에서 바다에 뛰어드는데 다이빙 폼이 제법이다. ㅎㅎ
그런데 우리와 같은 테이블에 있는 남아공에서 온 신혼부부는 수영을 못하는 듯했다.
남편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데 아내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배 안에서 종일 머문다.
히잡까지 착용한 걸 보니 수영을 하지 않을 마음인가 보다. 함께 들어가 보자고 말은 건넸지만 선뜻 OK를 안 한다.
우리만 즐기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이제 우리는 걷거나 배를 타야만 이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칼레쾨이(Kaleköy) 마을에 도착할 예정이다.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진 칼레쾨이는 시메나(Simena) 시에 세워진 마을이다.
Kaleköy는 외부에서 보면 작은 섬처럼 보이고 오로지 바다로만 접근할 수 있는 마을로 현재 약 30-40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관광,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정부에서 보호하는 지역으로 공사를 할 수도 없으니 변화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마을인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신비롭고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놀랍다.
점점 섬에 가까워지니 멀리 위쪽으로 아름다운 시메나 성(Simena Castle)이 보인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리키아(Lycian), 로마(Roman), 비잔틴(Byzantine) 및 오토만(Ottoman) 시대의 유물들의 발견을 추정한 결과 기원전 4세기부터 이 해안선에 사람이 거주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배에서 내려 성으로 올라가는 길 ...
좁고 가파른 오솔길과 시대를 거스르는 돌집, 향긋한 꽃향기로 어우러진 골목길은 우리가 올라가는 내내 신선하고 짙푸른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꽃 냄새가 나는 거리를 산책하듯 걸으며 마을의 독특한 집들을 관찰하고 올라가면 깊고 푸른 지중해 전망을 마주할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Kaleköy에 많은 유명한 인사들의 사유지와 주택이 있다는 건 당연할 듯싶다.
부러울 뿐이다.
그런데 마을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주민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희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Simena에는 전기와 상수도가 있긴 하지만 현대적인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 우체국, 은행, 병원, 약국 등은 물론 넓은 도로가 없기 때문에 이동 수단인 자동차도 있을 수 없다.
마을에서는 오로지 도보(인근 Üçağız에서) 혹은 보트를 이용해야 한다.
이렇기에 Simena를 방문하는 것은 편리한 현대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과거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마을은 대부분 레스토랑이나 카페, 그리고 아이스크림 가게, 소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었다.
집에서 만든 옷들, 팔찌 등 아기자기하고 여성들을 유혹하는 예쁘고 귀여운 소품들이 많다.
오렌지와 석류나무로 뒤덮인 길목의 좋은 냄새를 맡으며 약 15분 정도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마침내 시메나 성(Simena castle)에 도착한다.
안탈리아(Antalya) 지역의 터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은 케코바의 가라앉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고대 성채는 한때 해적과의 전투에서 중요한 감시탑으로 세인트 존 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안선을 감시하고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인트 존 기사단에 의해 세인트 존 기사단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성에 입장하기 위해 약간의 요금을 내고 들어갔다.
성 안에는 활을 쏘았던 구멍들이 여전히 있고, 바위를 깎아 만든 작은 극장(3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은 매우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지중해를 내려다본다.
많은 여행을 하며 수많은 바다 절경을 봤다고 자부하는 우리인데 시메나 성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 풍경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관이요 절경이었다.
성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케코바 지역의 전망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고풍스러운 마을을 산책하고 멋진 성에 올라와 아름다운 지중해를 바라보며 일출과 일몰도 감상하면서 하루쯤 이런 매혹적인 풍경에 의지하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는 길,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칠 수 없어 서성이는데 Home made ice cream이라며 시식을 해보란다.
마침 갈증을 느꼈던 우리는 주인의 친절함에 쉽게 이끌려 젤라토를 먹어보는데 제법 쫄깃하고 부드럽다.
풍경의 아름다움과 젤라토의 달콤함에 잔뜩 취한 채 배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의 보트 투어 마지막 장소 Yaglica bay로 향한다.
거대한 바위 절벽과 아름다운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이 bay는 특히 입구가 좁아서 한 번에 몇 척의 보트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갑자기 멘트 방송이 나온다.
"여러분이 오늘 바다에서 수영을 할 마지막 장소입니다."라며 어서 마음껏 즐기란다.
배가 멈추자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대부분 바다로 바삐 뛰어든다.
우리도 질세라 바다로 뛰어들어 마지막 45분을 알차게 즐겼다.
몸은 힘든데 투명하고 맑은 호수 같은 지중해에 들어가면 피곤이 사라지고 오히려 생기가 돈다.
에구~~ 바다에서 종일 네 차례나 수영을 하고 나니 몸이 지친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커플들은 아직도 기운이 남아도는지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다.
부럽다...
오후 5시,
우리가 탔던 배는 오전에 출발했던 항구로 돌아왔고 오늘의 보트 투어는 막을 내렸다.
함께 했던 신혼부부와도 작별 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튀르키예의 아름답고 멋진 곳들을 서로 추천해 주고 공유했다.
내일은 그들이 추천해 준 해변과 공원도 들러 가야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카르푸(carrefour)에 들러 저녁거리로 과일과 맥주 그리고 냉동 타북 되네르 케밥을 샀다.
식탁엔 따뜻하게 구운 케밥과 맥주, 그리고 치즈와 과일...
캄캄해지는 카쉬 마을의 고즈넉한 저녁 풍경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한다.
지중해에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얘기하며 오래 기억하자 약속한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저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