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erapolis-Pamukkale(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를 방문하다.
Hierapolis-Pamukkale(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에 가는 날이다. 보통 우리는 '파묵칼레(Pamukkale)'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묵칼레'는 단층을 뚫고 나오는 온천수의 칼슘 퇴적물이 형성한 독특한 지형지물(地形地物)들로 만들어진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예전에는 이곳을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는데 뜨거운 온천수와 분출되는 유독가스 등을 기이하게 여겨 이곳을 성지로 삼았다고 한다.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특히 자연 현상을 통해 멋진 경관이 형성된 독특하고 아름다운 파묵칼레는 우리의 방문지로 당연히 선택될 수밖에 없었다.
또 히에라폴리스는 멋진 자연환경은 물론 그리스·로마식 온천 시설과 함께 수 천 년 전의 유물과 유적지들이 발굴되어 그 당시 문화와 생활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우리의 방문을 더 설레게 했다.
마르마리스(Marmaris)를 출발해 파묵칼레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2시간 40분 정도 운전을 해야 했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도로는 대부분 넓고 포장이 잘 되어있고 차도 많지 않아 운전하기는 아주 편하다.
단지 차가 없고 길이 곧게 뻗어 있는 곳이 많다 보니 졸음운전을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번갈아 운전을 하며 다니는데 문제는 나는 운전석에서는 잠이 잘 오질 않는다는 거다. 반면 잠이 쉽게 드는 남편을 보면 부럽다.
드디어 파묵칼레(Pamukkale)에 도착했다.
역시 기이한 자연 현상과 유적지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기원전 2세기부터 스파로 사용되었던 파묵칼레는 문자 그대로 튀르키예어로 "목화의 성"을 의미하는데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 아래의 구릉 지형으로 방출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화 성처럼 보이는 독특한 자연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파묵칼레의 석회화는 온천에서 흘러나온 방해석[方解石]의 풍부한 물이 아래 언덕에 퇴적되어 눈처럼 하얀 테라스를 형성하는 자연 과정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석화 폭포와 일련의 계단식 분지로 만들어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 보던 그 파묵칼레와는 거리가 조금 멀다.
곳곳에 가득했던 물은 많이 말라 있었고 정상에만 물이 조금 고여있을 뿐이었다.
과거에는 파묵칼레의 온천수가 자연에서 흐르는 온천수였지만 지금은 환경이 변해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파묵칼레 주변의 상권과 인근 시설에서 물을 많이 끌어다 사용하는 바람에 예전보다 물의 양이 훨씬 줄었다고 한다.
사진에서 볼 때는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말라버려 안타깝기도 하고 속도 상했다.
그나마 고여있는 물도 발목까지만 올라왔고 또 온천이라고는 하지만 30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만 졸졸 흐르고 있다.
멀리서 보면 목화솜처럼 하얗던 파묵칼레는 가까이 와보니 흰 눈이 소복이 내린 하얀 벽이 되었고, 마을 아래에서 볼 때는 마치 '설산(雪山)'처럼 보였던 곳은 온천이 흐르는 하얀 언덕이었다.
주변이 석회암으로 하얀 벽을 쌓아 새하얀 석회로 된 암벽은 시대의 흐름으로 생긴 자연 현상인데 정말 경이로울 뿐이다.
파묵칼레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또 다른 파묵칼레의 목가적인 전경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 작은 마을이 아주 평화스럽다.
파묵칼레 정상에는 고대 로마의 유적을 만날 수 있는 히에라폴리스가 함께 있는데 우리는 그쪽으로 향했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의 유적이다.
귀족들과 부유층들이 치유를 위해 온천으로 이름난 이곳으로 이주했고 비잔틴시대까지 번영을 누렸지만 1354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자연의 힘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후 독일 학자에 의해 발굴 및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역사와 유적을 소유하게 된 이곳을 유네스코로 지정한 것이다.
옛터의 규모를 보니 어마어마한 공간이다.
멋진 건물들이 지어졌고 부유한 생활을 했을 것 같은 그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광대한 공간에는 역사의 잔재들이 허무하게 무너진 채 여기저기 널려있다.
찬란하고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한순간 자연의 힘에 무너져 사라진 현장을 보니 쓸쓸함과 허망함이 밀려오고 뜬금없이 오래된 가요 '황성옛터'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조금 더 오르니 원형극장, 신전, 온천욕장 등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는 장소가 나온다.
기원전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세워진 원형극장은 마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데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둥근 관객석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이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이 외에도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목욕을 했다는 목욕탕, 체육관, 아폴론 신전 등의 유적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대부분 넓은 땅 여기저기에 나동그라져있고 발굴하다가 멈춘 고대의 유적들과 함께 뒹굴고 다닌다.
황금같이 귀한 고대의 유적들을 마치 함부로 다루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서서히 해가 저물려 해 우리는 노을이 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노을에 반사되는 파묵칼레가 얼마나 아름다운 색으로 변할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얀색을 띠던 파묵칼레는 해가 지면 노을에 반사되어 경이로운 장면을 선보일 것 같았다.
오후 6시를 넘기자 강렬하던 해가 조금씩 고개를 숙이더니 강한 기운이 사라지며 서서히 먼 산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붉은 흔적을 남긴다. 그 붉은 흔적은 주변의 하늘과 산, 구름까지 붉게 만들어 버린다.
해가 지며 이러한 장관을 만들어 내다니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태양이다.
그냥 사라지기 싫어 흔적을 남겼는지 주변을 붉게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그 힘으로 하얗던 파묵칼레도 붉게 물들이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양의 힘은 내가 있는 파묵칼레까지 영향을 주진 못한다.
붉은색으로 물들 줄 알았던 파묵칼레는 여전히 하얀빛을 잃지 않는다. 마치 영원히 하얗게 남고 싶다는 듯...
뜨겁던 해가 바다의 수평선 뒤로 넘어가듯 지금 이 순간 강렬했던 해는 파묵칼레 석회층의 뒤로 넘어간다.
바다에서 보는 노을과는 또 다른 장관이다.
경이롭던 파묵칼레의 하루가 점점 저물어간다.
그저 물빛만 영롱하게 거울처럼 빛나고 있다.
한참 동안이나 노을과 함께 머물다 내려왔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오르는데 외국인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부탁을 한다.
다리를 다쳐서 내려갈 수 없어 택시를 기다리는 데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로 아래마을까지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해 기쁜 마음으로 태워주었다.
부상을 입은 사람은 러시아에서 온 젊은 남자였고 그는 어머니와 동행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졌는데 꽤 심각하게 부러지는 바람에 유명한 의사를 찾아 이곳 튀르키예에 왔다고 한다.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 튀르키예까지 의사를 찾아와 치료를 받고 있다니 조금 의아스럽고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복잡한 생각에 빠지고 싶지 않아 빨리 낫기를 바란다고 전했고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남기며 우리와 헤어졌다.
어찌 되었건 젊은 남자분인데 제대로 치료를 잘 받고 무사히 돌아갔으면 좋겠다.
파묵칼레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데니즐리 시내에 있는 호텔로 가는 길.
하필 퇴근 시간과 맞물려 꽤나 막힌다.
남편은 어둡고 낯선 도시의 복잡한 중심거리를 운전하는데 옆에 앉아 있는 나는 따뜻한 온천수로 된 호텔의 실내 풀에서 몸을 담글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다.ㅎㅎ
늦은 밤 11시까지 수영장을 운영한다고 해서 이곳으로 예약을 했던 것이다.
몸이 피곤하고 나른했던 우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온천 수영장에서 몸을 풀었다.
우리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따뜻한 풀에서 수영을 한다.
물이 따뜻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열이 난다.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