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가수가 나왔고
활동이 뜸했던 기간에 뭘 하며 지냈냐는 진행자의 말에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동안에는 숏폼 릴스에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K와 아침 식사를 하면서 ott로 지난 방송을 보는 중이었다.
무심코 눈이 마주치자 그가 물었다.
“숏폼 릴스 그런게 뭔지 알아?”
K는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의 질문이라는 것이 조금 특이한 것이
대부분은
‘이게 뭐냐하면 말야..!@#$%&%$.’ (이 때 상대가 알고 있는지 혹은 알고 싶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음)
이고
그 다음 자주 하는 것은 자문자답이다.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질문과 동시에 네이버를 열고 스스로 폭풍 검색을 하는 거다. (질문같지만 상대에게 딱히 답을 기대하지는 않는)
그리고 정말 몰라서 묻는 경우인데 그런일은 매우 드물다.
“글쎄 뭐, 지난 번에 한 번 찾아봤는데 숏폼은 짧은 동영상이고 릴스는 그걸 만드는 써비스? 라고 했던가? 모르겠네 대충 그렇게 알고 있는데?”
사실상 관심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미 얼마전에 똑같은 질문을, 그것도 같은 상황에서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찾아본 적이 있긴 하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다음에 다시 그런 상황이 되면 또 물어볼 게 뻔하다.
오래전 한 광고에서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예’할 때 한 사람이 돌아서며 ‘아니요’하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옆사람 눈치를 보며 많은 사람이 향한 방향으로 서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면
K는 남들 모두 ‘예’하더라도 ‘아니요 혹은 왜요?’ 하는 류의 사람인 것 같다.
실제로 데이트 하던 시절 K는 늘 책을 들고 다녔다.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역사 지리 등 그의 광범위한 지식에 가끔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특히 직장 사람들과 만났을 때 전문분야의 대화를 할 때에는 섹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하기야, 그 때는 담배피우는 모습까지 매력으로 느껴졌으니
눈에 뭐가 씌었어도 단단히 씌었던 모양이었다.
씌었던 ‘무엇’이 벗겨졌는지 요즘은 그의 질문의 탈을 쓴 지식방출이 때로 버겁게 느껴진다.
묻는 말에 선택적 답변을 하거나 종종 태연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K와는 달리
내게 하는 말을 설령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조차 집중을 하게 되는 나는
K가 전하는 무차별적 정보공격에 때때로 정신이 아득할 때가 있다.
여전히 K의 정보력은 광범위하지만 나는 갈수록 그리 궁금한 것이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뭘 자꾸 잊어버린다.
비타민 유산균 등 건강보조식품을 일일이 따로 챙기는게 귀찮아서 한 팩에 담은 제품이 있길레 사봤다.
빼먹은 날을 기억못할까봐 유성펜으로 날짜까지 적어놓고 목재 정리함에 넣어두고 아침마다 복용을 했었다. 목재함에 넣어둔 것이 다 소진되었을 때 남은 것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다 없어서 그게 다 였나보네, 했다.
며칠 전에는 다용도실에서 식재료를 꺼내다가 선반 위 플라스틱 통에 뭔가 들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하나를 당겨보니 언젠가 구입했던 하루견과가 일곱봉씩 들어있는 비닐 봉투가 통에 가득 있었다. 한동안 그걸 먹었던 기억은 나는데 이게 이렇게 많이 남아있었는지는 몰랐다. 잊고 있었더라도 보면 기억이 날만도 한데 아무리 기억회로를 되돌려봐도 김치통에 견과를 넣어둔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내 서랍장위에 어질러놓았던 모자며 스카프등을 정리하느라 붙박이장을 열었을 때 맨 꼭대기 칸에 낯익은 박스가 옆으로 세워져 있었다. 다 먹은 줄 알았던 영양제 세트였다.
창피해서 K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있는 줄도 몰랐던 견과까지 등장하자 결국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 나 왜 이러냐. 치매초긴가?”
전과는 다르게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그러게, 잊어버렸던 걸 찾으면 기억이 나게 마련인데 아예 기억이 없으면 문제긴 하네.”
어릴 때 엄마에게서 가장 자주 지적받았던 부분이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 성격 때문에 어쩌면 사회 부적응자가 될수도 있다는 류의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근래들어 매사 조금씩 무뎌지는 느낌에 마음이 놓였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단추 응가 냄새라든가,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라든가, 전 날 맥주를 마시고 자면 다음 날 아침에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든가 하던 현상들이 요즘은 자주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그 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설레지 않고
출연자들 모두 ‘맛있겠다!’ 라며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먹방을 보면서도
‘저거 다 대본에 있으니 하는 말이겠지, 음식이 맛있어봐야 음식이지 뭐.’ 한다.
견과꾸러미 사건을 계기로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심장이 딱딱해지면 좋겠어.”
라고 말하던 오래전 드라마 여주인공의 대사가 생각났다.
심장이 딱딱해진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지 않은가.
오감이 예민하던 사람에게 그 예민함이 무뎌진다는 말 역시 자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신줄 꽉 부여잡고 살아야겠다.
릴스 숏폼이야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방송을 보면서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어휘 때문에
여기가 외계인지 내가 외계인인지 헷갈리지는 말아야할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책상서랍, 전에 입었던 외투, 심지어 연필꽂이에서까지
언제 넣어둔지 모르는 지폐가 나올 때는 공돈이 생긴것처럼 좋다.
그런 기분은 조금 더 즐겨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