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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당 수액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모자가 같이 나의 진료실에 들어왔다.

아들은 너무나도 말라서 양팔엔 거의 뼈와 살가죽 밖에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그는 허공만 바라본 채 표정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얘가 우리 아들인데 정신지체 장애가 있어요. 요새 애가 자꾸 체해서 데리고 왔어요"


어머니의 말투는 상당히 드센 느낌이었다.

장애아들을 데리고 세상의 편견을 견뎌온 거친 생존력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에게 고혈압으로 진료를 본 적이 있었고, 그때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다고 했었다. 그녀는 생계 지원을 국가에서 받는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세상의 불행이란 왜 그리도 겹치는지, 아니면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불러서 인지. 빠듯한 그녀의 생계와 정상적이지 못한 아들의 모습에 동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한번 진찰을 해볼까요?"


내가 아들의 배에 청진기를 대려 하자 그는 특이한 괴성을 잠깐 지르다가 이내 청진기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말했다.

"얘가 겁이 많아서 그렇지. 심성이 착한 애예요"


아들의 주민등록상 나이는 22살이었으나 그의 정신연령은 미취학 아동보다도 더 낮아 보였다. 대화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어머니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확실치 않아 보였으나, 어머니는 아들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그녀만의 확신을 갖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장애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얘가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느 날 경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응급실에 데리고 갔죠. 그랬더니 거기 의사랑 간호사들이 다 달려들어서 얘를 꽁꽁 묶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가 그때부터 경기를 더 심하게 하고 상태가 더 안 좋아졌죠. 그런 애를 중환자실에 데리고 가더니 뭔 짓을 애한테 했는지 그 이후로 밥도 더 안 먹고.. 중환자실에 다녀온 이후로 멀쩡하던 애가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병원에서는 경기하는 원인도 못 찾아내고 약만 먹이라 그러고... 그래서 제가 아들을 며칠을 관찰해 보니까 애가 체할 때만 경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애가 말을 못 하니까 우리는 애가 체했던 걸 알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아이의 담당 교수님한테 얘가 경기하는 원인은 체해서 그런 거다. 얘기를 해도 병원에서는 내 얘기를 무시하고 듣지를 않아요!"


그녀는 그동안 많이 답답했다는 듯, 흥분 섞인 말들을 나에게 쏟아냈다. 나는 물어봤다.


"그래서 지금은 항경련제는 잘 먹고, 병원도 계속 다니고 있나요?"


"안 가죠~! 맨날 뇌파 검사만 하고 약만 멕이라고 그러는데...ㅇㅇ동에 용한 한의원이 있는데 거기는 우리 애 진맥하고 등을 만져보더니, 딱 채 할 때만 경기한다는 걸 알더라구요. 그래서 보약도 먹이고,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는데... 별 소용이 없어요. 담적증이라고 아시죠? 얘는 그 병이에요."


그녀는 현대의학이 아닌 본인 만의 시각으로 아들을 진단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것 같았다.

잘만 돌아가는 이 세상에, 하필 그들에게만 이토록 쓰디쓴 불행이 여러 개나 겹쳐있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녀에게 아들의 병은 엄마의 배속에서 갖고 태어난 병이 아닌, 고약한 타인들에 의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아들의 병은 평생 갖고 사는 불치병이 아닌 해결될 수 있는 병이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대학병원 교수들은 고칠 수 없더라도 그녀만은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토록 불행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들과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말했다.


"그 담적증 때문에 요새 아이가 체하는 게 심해지고, 밥도 더 못 먹어요. 그래서 오늘 수액 좀 놔주세요. 애가 다른 성분이 들어간 건 몸에 잘 받질 않아서.. 비타민, 아미노산 이런 거 들어간 거 말고, 포도당만 딱 들어있는 수액 있죠? 그걸로 놔주세요."


그녀는 어려운 생계에 보험이 되지 않는 비싼 수액은 맞기 힘들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의료보호 지원을 받는 그녀와 그의 아들은 다행히 천 원만 내고 수액실로 올라가서 포도당 수액을 맞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됐고, 나는 병원을 나서며 수액실 안의 그녀와 아들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이불로 아들의 앙상한 팔과 다리를 덮어주고,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밥 한 공기의 칼로리 밖에 되지 않을 투명한 포도당 수액이 한 방울씩 아들의 몸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그렇게 소중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방식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말도 안 되는 그녀만의 방식이었지만 단 하나만은 또렷하게 진실했다.

그것은 어떻게 해도 끊을 수 없는 모성애란 것, 아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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