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골 커피집이 있다.
뒤편에 커피 볶는 공간이 있고, 가게 안에는 작은 테이블이 3개밖에 없어서 카페라기 보단 커피집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곳은 큰 길가의 안쪽, 외딴곳에 자리하고 있어 아는 사람만 찾아가게 되는 곳이다.
카페라떼에 진심인 나는 직장 근처 맛있는 라떼집을 찾아 그곳에 처음 가보게 되었다. 젊은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며 직접 커피도 볶고, 여러 원산지의 커피를 갖춘 커피에 진심인 곳이었다. 다른 원산지 커피의 맛과 향을 느껴보고, 그것들이 우유와 조화를 이루는 맛의 경험이 참 좋았다. 자주 먹다 보니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치킨버거와 브라질 원산지 카페라떼와의 조화! 나만의 마리아쥬(음식 궁합)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그곳의 매력은 사장님이 직접 손으로 커피를 내리는 데에 있다. 에스프레소를 만들 때는 머신을 쓰거나 주전자로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팔 크기만한 '에어로 프레스'란 긴 통에 커피원액을 넣고 그 통에 끼워진 압축기를 손으로 세게 눌러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낸다. 사장님은 까치발까지 들어가며 마른 온몸의 체중을 실어 가는 팔로 공기 압축기를 누른다. 그러면 보글보글 거품만큼 정성이 담긴 에스프레소 한잔이 추출된다. 얼음을 넣고, 서울우유를 붓고 그 위에 그 에스프레소를 끼얹으면 이 커피집만의 유일무이한 카페라떼가 완성된다. 어느 지점에 가도 똑같은 체인점 커피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다.
그렇게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과 몇 마디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날씨가 어떻다, 휴가는 언제 가냐, 새로 들여온 원두는 없는지, 그 원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그저 흘러가는 대화일 뿐이다. 그러다 보면 커피의 산미, 우유의 고소함, 그리고 얼음의 시원함이 어우러진 나의 최애 라떼가 나와있다. 그 한잔을 받아 들고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선다.
열대지역 같은 더위가 일상이 된 어느 여름 토요일 오후, 직장 일을 마무리하고 집을 향하는 길에 그 라떼 생각이 났다. 커피집이 아직 영업 중인지 보려고 휴대폰에서 네이버 검색을 열었는데, 커피집의 네이버 플레이스 홈피에 못 보던 온라인 주문 탭이 생겨있다. 이렇게 미리 온라인으로 주문해 놓으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라떼를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탭을 눌러 라떼 - 아이스 - 서울우유 순으로 옵션을 정하여 주문하고 결제까지 완료했다. 직장에서 커피집까지 가는 길이면 라떼가 충분히 완성될 시간이었다. 커피집에 도착하여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사장님~ 오늘은 네이버로 주문해 봤어요!"
"아~ 손님이셨군요! 여기 있습니다~"
사장님은 그새 만들어져 냉장고에 보관한 라떼를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따로 결제할 것도 없고, 순식간에 아주 간편하게 나의 라떼를 건너 받았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아주 신속한 생산과 소비 방식에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나의 카페라떼가 아닌, 배달 앱으로 커피를 전달하는 중개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아날로그에서 간편한 디지털로의 전환이었다. 그 신속한 찰나의 낯선 느낌에 나는 사장님께 한마디를 건네고 커피집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음.. 근데 이렇게 받으니까 왠지 정이 없는 거 같네요. 다음엔 와서 주문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라떼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라떼는 여전히 시원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그 라떼엔 어떤 것들이 빠져 있었다. 시시콜콜한 젊은 사장님의 근황이, 온몸의 체중을 싫어 에스프레소를 짜내며 내게 보여준 그의 열정이, 그렇게 그곳에서 만드는 과정을 보며 내가 부여한 커피 한잔의 의미가 빠져 있었다.
나는 단순히 커피콩과 우유가 섞인 어떤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골집에서 내가 사 먹는 그 라떼 한잔엔, 1분 남짓 그 외진 곳에 들어가 느끼는 그곳의 여유, 나도 모르게 느끼게 되는 다양한 커피의 향기들, 젊은 사장님의 작지만 꾿꾿한 자부심, 그 자부심을 응원하는 나의 마음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뽑아낸 커피와 내가 라떼 한잔에 부여한 의미가 섞여 나에겐 고된 일상의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단골집 라떼를 마시며, 편하고 빠른 것이 꼭 좋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삶의 여정이 어린 왕자 동화가 전해주듯 나만의 의미 찾기라면, 빠르게 지나갈 때보다는 한자리에 머물러 그 공간과 순간을 느낄 때 현재 인생의 의미를 더 찾기 쉬울 것 같았다.
작가 김영민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보지 않고 바삐 지나가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이듯,
성공으로 환원되는 것 이외에 나만의 인생 의미를 찾지 않는 것은 그 소중한 삶에 대한 모욕이라고.
빠름과 편함만을 추구하며 열정이란 불로 뜨겁게만 끓여대는 우리의 일상은, 마치 물이 줄어들며 텁텁해져 가는 김치찌개의 매운맛과 같다.
지금 필요한 건 그 매운 일상을 중화시켜 줄, 아날로그한 고집으로 굳이 손으로만 뽑아내어 의미를 담은 얼죽아! 의 시원한 커피 한잔이 아닐까.
자영업 사장님들이 힘들어지며 폐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데, 나의 단골 커피집은 그 자리를 오래오래 지켜주길 바라며..
나는 다음부터 굳이 그곳에 가서 나의 목소리로 사장님에게 주문을 하고, 잡담을 건네고, 커피 향을 느끼고, 계산을 한 후 그 라떼를 건네받아 그곳을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