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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폰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슉슉. 슉슉.


나의 청진기 안으로 80대 할머니의 심장 잡음 소리가 들어온다. 호흡곤란과 가슴 답답함으로 진료를 온 할머니는 삶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이제 혼자 거동도 힘든 상태여서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부축하여 진료를 보러 왔다.


심장초음파 검사결과, 심장에서 온몸으로 나가는 혈관인 대동맥의 판막이 좁아져 있었다.

오랜 세월 할머니의 인생 굴곡과 함께 심장의 판막에도 고난의 굳은살이 덕지덕지 끼어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나와 전신으로 나가는 가는 핏줄기는 할머니의 약해지고 가늘어진 생명력을 나타냈다. 대동맥판협착이라는 심장판막증이 진단되었다.


심장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중한 상태였던 그 할머니를 나는 대학병원에 의뢰했었다. 몇 달이 지나 할머니 환자는 요양보호사와 함께 나를 다시 찾아왔다.


할머니가 말했다.

"딸이랑 병원에 가서 진료보고, 입원해가지구 이 검사 저 검사 다하고, 수술 날짜까지 다 잡았었는데.. 어째 수술 며칠 앞두고 그냥 퇴원을 해부렀네.. 지금도 어찌나 숨이 찬 지... 그래서 와봤어요.."


"아이고, 어르신. 수술을 꼭 하셔야 되는 데 어쩐 일로 그냥 퇴원하셨어요~?"


" 수술이 밀려서 그랬대나, 어쨌대나. 암튼 그래서 날짜를 다시 잡기로 했어요."


나는 할머니의 숨찬 증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기대를 안고 약 처방을 해드렸으나, 수술만이 치료법인 현재 상태에서 약은 역부족이었다. 할머니는 몇 번을 호흡곤란 악화로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할머니는 예정됐던 수술의 취소 사유도, 앞으로의 계획도 명확히 알지 못했기에 보호자인 딸과 통화를 해보기로 했다.

진료실에 같이 들어온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의 폴더 휴대폰을 열어 2번 단축키를 꾹 길게 눌렀다.


"따님, 여기 어머님이랑 같이 동네병원에 진료 보러 왔는데 의사 선생님이랑 통화 좀 해보세요~"


전화를 건네받은 나는 딸에게 말했다.


" 안녕하세요, OO어머님 따님 이시죠?

전에 OO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수술을 못 하셨다는 데 왜 그런지 알 수.."


" 아니! 왜 자꾸 보호자라고 저한테 전화하시는 거예요~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첫째 딸한테 전화하세요!"


내 질문을 가로막은 그녀의 한마디.

그 한마디는 나 혼자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겠지만, 진료실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딸 목소리의 날 선 데시벨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건네받으며 수신모드를 스피커폰으로 바꿨기 때문이었다.

그 스피커폰은 요양보호사 그리고 할머니와 치료 계획의 공유를 위한 것이었지만, 현실엔 끊긴 전화음과 씁쓸함의 공유만이 남았다.


할머니는 애써 웃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몇 초간의 침묵 속에 내 마음에 생긴 동정심이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에 배가 되었다.

나는 침묵을 깨고 말했다.


"어르신, 그러면 첫째 딸한테 전화해 보면 어떨까요?"


"첫째도 멀리 살고... 바빠서.. 잘 못 와요~"


요양보호사 없이는 외출도 하기 힘든 할머니의 처지는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다는 것 말고는 미취학아동과 다를 바 없었다. 수술과 치료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가는데 더 이상 도와드릴 게 없다고 생각한 나는, 진료를 적당히 덮듯이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약물치료로 최대한 도움이 될 만한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너무 상심 마시고요~ 수술은 하시는 게 좋으니 자제분이랑 한번 다시 상의해 보세요~"


할머니는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스피커폰을 통해 울려 퍼진 자신의 처지를 맞닥뜨린 할머니의 뒷모습이 왠지 더 굽어져 보였다.


내가 진료실에서 다른 할머니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떠올랐다.

"빨리 죽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오래 사나~"


병의 치료를 원하여 병원에 온 사람이 내뱉는 그 모순된 말에 처음엔 노인들의 넉살 정도로, 긴 세월에 대한 무뎌짐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말엔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희극에서 비극으로 바뀌는 인간의 삶이 있었다.

질병과 통증이 일상이 되어가는 노인의 삶,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지는 무기력함,

그리하여 자식들에게 점점 짐이 되어가는 걸 느끼는 미안함. 그 감정에서 나오는 응어리가 된 한 문장이 바로 그 한마디였다.

스피커폰에서 마주한 현실에 할머니가 애써 짓는 웃음엔, 남은 삶에 대한 관조와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자식에게, 존경의 대상에서 부양의 대상으로 바뀌어 간다. 하지만 부모는 어릴 적부터 자식에게 너무나 큰 존재였기 때문인지, 나보다 항상 더 큰 존재로 남길 원하는 자식들의 바램인지.. 한없이 약해진 부모에게 여전히 큰 잣대를 들이대는 게 자식이 아닌가. 나를 비추어 생각했다.


세월이 감에 따라 자연스레 바뀌는 부모와 자식의 세대교체.

그에 따라 서로의 기대를 조정하며, 순리에 맞게 웃으며 바톤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부모 자식 간의 삶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톤터치는 서로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느려진 부모의 속도에 맞추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 후로 한참 동안 할머니 환자를 만날 수 없었다. 몇 달이 지나 나에게 본인의 진료를 보러 온 요양 보호사가 나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할머니는 결국 딸이 병원을 모시고 가셔서, 심장 수술을 하셨어요~ 지금은 할머니가 숨도 거의 안 차고 많이 좋아졌다고 하세요~ "


"잘 됐네요~! 근데 어느 딸이랑 가셨나요?"


"전화기 2번~ 둘째 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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