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의 병원을 찾은 78세 할머니.
배에 뭐가 만져진다며 진료를 보러 왔다.
배에서 뭐가 만져진다며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큰 혈관이 만져지는 거나, 위험하지 않은 피부의 지방종이 많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진찰을 해보았다.
"제가 진찰해 봤을 때 확실하게 만져지는 건 없는데, 느끼시는 부위는 위가 있는 곳이네요~ 내시경 검사는 최근에 언제 해보셨어요?"
"내시경은 안 한 지 한참 됐시요. 한 10년 전에 맨 정신으로 내시경을 한 번 했는디, 그때 조직검사 한다고 한참을 쑤셔댔구먼. 그때 힘들어서 그 이후로 너무 무서워서 안 했시요."
"그러면 초음파 검사는 아프지 않게 배를 문지르면서 해볼 수 있으니까, 초음파를 한 번 봐볼까요?"
"그려요~"
초음파로 본 할머니의 위 속에는 커다란 혹이 초음파 빛을 날카롭게 반사시키며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10년 전에 할머니에게 내시경의 두려움을 심어줬던 그 작은 혹이 10년이 지나며 많이 커진 게 틀림없었다.
"아이고, 어머님.. 위 안에 큰 혹이 있네요. 만져지는 게 이 혹인 거 같아요. 혹이 뭔지 알아보려면 내시경을 하셔야 할 거 같아요"
할머니는 탄식으로 시작한 나의 한마디에 담긴 위중함을 느꼈는지, 10년간 미뤄왔던 내시경을 바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수면내시경을 하지 않고, 그 힘들었던 맨 정신으로 하는 내시경을 했다, 위에서 소장 입구로 넘어가는 부위에 큰 암덩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10년 전 할머니가 고통스러워했던 그 조직검사를 데자뷰처럼 그대로 다시 해야 하는 내 손은 조금 떨렸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80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남은 인생에 없을 거란 직감에, 내시경을 물고 말 못 하는 할머니를 최대한 다독여 가며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 자~ 어머니, 1분만 참으면 끝나요~ 조금만 참으세요~"
". . ."
" 자. 한숨 쉬고 코로 들이마시고, 진짜 1분만 참으세요~"
". . . "
"자~ 진짜 다 끝났습니다. 한숨 몇 번만 쉬면 끝나요~"
택도 없는 1분 남았단 거짓말 몇 번으로 다행히 조직검사까지 끝낸 후 할머니를 면담했다.
"많이 안 힘드셨어요?"
"할 만 했시유"
"근데 어머님.. 정확한 건 조직검사가 나와봐야 되지만 아마도 위암인 거 같아요.."
"사진에서 보이는 여기 검은 게 암인가..?"
"네 여기에서. 여기까지.."
할머니는 담담하게 나의 위암 진단을 받아들였다.
그 담담함은 그녀의 굽은 등, 왜소한 체구, 얼굴의 주름에서 느껴지는 힘들었을 그녀의 세월에서 비롯된 무뎌짐 같았다. 애잔한 진료실 안의 공기를 중화시키려 나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은 의학기술이 좋아서 많이 진행되지 않은 암이면 수술하셔서 완치될 수도 있어요. 다음 주에 조직검사 결과 보러 꼭 오셔야 하는데, 자제분들은 있으세요..?"
"자식이 셋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치매라 돌아가면서 돌보느라 시간이 잘 없는데..
할아버지가 치매 걸리고 성격이 괴팍해져서 요양원도 못 보내요.
그래서 내가 이 나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서 할아버지를 돌보고 있어요... 나 없으면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못하는디.. 내가 암이구만.. 할아버지보다 내가 하루만 더 살아야하는디.."
희생적 사랑에 대한 미사여구로 들어왔던 하루만 더 살아야 한다는 그 말을 실제로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의 암 진단 선고에도 할아버지부터 걱정하게 되는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부란 사이.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인간에게 아내, 남편이란 존재 의미를 갖게 해 주는 사람.
우리는 세상이란 배경만 같을 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각자 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 수많은 세계 중에 유일하게 나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배우자일 것이다.
그 세계를 공유하는 가장 큰 힘은, 공유한 시간임이 분명할 것이다. 아내와 이제 10년의 세계를 공유한 나는, 수십 년의 세계를 공유한 할머니 환자, 우리 부모님들, 노년의 부부 사이를 감히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인생의 한 축을 잃어버리고, 나와 세계를 공유하는 단 한 사람을 잃는 건 큰 아픔일 거다. 그래서인지 배우자의 죽음 이후에, 얼마 안 되어 그 뒤를 따라가는 노년의 부부를 종종 보게 된다. 내가 본 할머니 환자는 그렇게 될 자신의 여생을 느끼고, 그 시간을 단 하루로 줄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수십 년간 노부부가 공유한 세계는 할아버지의 기억에서 치매란 지우개로 점점 희미해져 가겠지만 불혹의 나이에 요양보호사가 된 할머니의 애정은 그에게 끝까지 전해지리라 믿으며...
이 글은 나의 유일한 또 다른 세계, 나의 아내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