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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an 24. 2022

면접관도 면접이 두렵다?

면접관이 풀어놓는 '면접의 속살'-03

 서류전형의 험난한 관문을 통과하면 이제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입사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面接)은 최종합격자를 결정하는 평가의 구체적인 근거나 증거(Evidence)를 찾기 위해 면접관들이 얼굴을 맞대고 지원자들의 면면(面面·각각의 여러 사람 또는 여러 얼굴)을 살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의 면접은 일반적으로 크게 인성(역량) 면접, PT 면접, 토론면접 등의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다양한 유형의 면접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코 인성(역량) 면접이다. 채용 결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실제 대부분의 기업에서 인성(역량) 면접은 채용 프로세스에서 최종합격자를 뽑는 마지막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 토론면접이나 PT면접 등 다른 유형의 면접은 생략하더라도 인성(역량) 면접을 보지 않고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성(人性)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성품’을 말한다. 또 역량(Competency)은 해당 조직에서 업무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지식·경험·태도·특성과 행동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인성(역량) 면접에서 기업은 지원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잠재적인 직무역량이나 인성·가치관을 파악해서 평가한다.

 서류전형이나 필기시험 단계에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는 지원자의 내면(內面)이나 역량을 심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면접(面接)’은 한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일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채용과정에서 면접 전까지 실제로 지원자를 마주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라는 말처럼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만으로는 지원자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직접 만나 얼굴 맞대고 목소리 들으며 대화해 보면서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원자 입장에서는 ‘서류(전형) 탈락’의 충격도 크지만 면접 탈락의 충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류전형이야 일면식도 없는 채로 떨어졌다고 작은 위안을 삼는다고 해도 얼굴을 맞댄 면접에서 떨어지면 더욱 뼈 아프게 느껴지고 후유증도 더 오래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면접에서 탈락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끝도 없는 ‘도돌이표’처럼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만큼 입사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은 더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토록 간절하게 입사를 원하는 취업준비생들은 과연 면접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자기소개서와 필기시험, 인·적성 평가 등의 난관을 가뿐히 넘어서고도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지원자들이 부지기수다.

 취업의 최종관문인 면접에서는 지금까지의 전형단계와는 또 다른 무언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생각하듯 면접에서 중요한 평가기준은 결코 ‘스펙’이 아니다. 일단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에 대해서는 스펙은 거의 변별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펙을 앞세운 경쟁은 서류전형을 통과하는 순간 이미 종료됐다. 일단 면접에 불렀다면 기업은 당신이 ‘스펙 부자’이든 아니든 간에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기업이 합격자를 정할 때 스펙만을 따질 요량이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면접을 볼 이유가 없다. 학교·학점·전공·어학성적·자격증 등 소위 스펙은 대부분 숫자로 표시된다.

  그러니 평가는 이력서(입사지원서)에 담긴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력서에 스펙을 하나도 남김없이 쓰도록 하고 각각의 스펙에 매긴 점수를 합산해서 나온 등수대로 채용인원만큼 뽑으면 될 일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면접에서 스펙을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또 면접에 대한 흔한 오해 중에 하나가 “말 잘하는 사람이 합격한다”는 것이다. 물론 말하는 본새를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쓰는 말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했다. 말이란 곧 그 사람이고, 인격 그 자체다. 말을 두고 ‘생각의 집’이라 한다. 말은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말을 ‘마음 밭에 뿌려지는 씨앗’으로 표현했다. 말에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는 뜻이다.

 결국 한 사람의 말은 그의 생각과 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이렇게 말속엔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 지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지원자를 평가하는 면접이 채용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이유다.  


 하지만 "면접에서 말을 잘해야만 합격한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오히려 ‘약장수’ 같은 지나치게 화려한 언변은 면접관의 거부감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진정성 있는 청춘이 아니라 닳고 닳은 ‘선수’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청춘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기다.

 그래서 청춘의 특징 중 하나는 ‘미숙함’이다. 덜 익은 풋풋한 과일처럼 청춘은 어설프고 서투르다. 어쩔 수 없이 듬성듬성 빈구석이 있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많다.

 ‘여백(餘白)’은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아직 그림이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다. 뭐든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다. 텅 비워져 있기에 역설적으로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여백인 것이다.

 따라서 미완의 여백이 오히려 청춘에게는 더 걸맞다. 모든 일에 매끄럽고 능숙하면 외려 거북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농익은 노련함이 아니라 투박하고 서투른 모습이 청춘답게 보인다. 면접은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춘을 뽑는 자리다. 당연히 청춘다워야 뽑힐 것 아닌가?

 면접관 입장에서는 (지원자가) 말도 잘하면 좋겠지만 말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최악이다.

 필자는 면접 때의 모습과 실제 회사생활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 아래의 글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경험 많은 면접관이라면 말발에 속아서 사람을 뽑았다가 속앓이를  경험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면접과 회사생활, 무엇이 진짜인가요?

 제가 임원이 된 후, 면접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말 잘하는 지원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임원회의에서 전달사항이 있었는데, ‘신입사원 면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면접 때 ‘말을 너무 잘하는 지원자’들이 면접점수를 좋게 받아서 입사했는데, 실제 직장생활에서는 조직생활 적응 등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 면접 시에 말 잘하는 것만 보지 말고 지원자의 전문역량, 태도, 가치관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도록 노력할 것” 주로 여성들이었냐고요? 네, 그런데 남성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출처: 여성신문 2018.11.28  


  그러니 면접에서는 말발이 좋지 않아도 된다. 언변이 청산유수 같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없다. 면접(관) 경험이 많은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때론 느릿하고 어눌한 말투가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는 걸

 오히려 면접에서 지나치게 화려한 말발은 면접관의 경계심을 춤추게 한다. ‘믿지 말자 조명발, 속지 말자 화장발’과 같은 심리다. 조명을 잘 받고 화장을 잘하면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얼굴로 보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다.

 마찬가지로 우리회사와 지원하는 직무에 맞는 척, 진심으로 원하는 척 꾸민 그럴듯한 대답에 넘어가 또다시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핵심은 하나,  취업준비생들이 갖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면접은 청산유수의 달변가를 뽑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원자 입장에서 면접의 목적은 자신이 지원한 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갖춘 ‘적합한 인재’ 임을 설득하고 공감을 끌어내서 면접관의 마음을 얻는 이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중요한 것은 ‘달변’이냐 ‘눌변’이냐가 아니라 내용의 진정성에서 오는 공감이다.

 실제 매끄러운 방송 진행을 위해 말솜씨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원자들의 ‘말발’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기업이 말솜씨를 중시한다면 굳이 번거로운 면접이 아니라 ‘스피치 콘테스트’를 열면 될 테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면접에서는 ‘스펙’이나 ‘말발’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면접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그 시작은 면접의 키맨(Key Man), 면접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도 인사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면접을 자주 보게 된다. 면접관으로 잔뜩 긴장한 지원자들을 만나면 애틋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 순간이 얼마나 지원자들에게 절실하고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 이 자리에 왔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필자의 선택에 따라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들고 자책과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면접에 들어갈 때는 늘 마음이 무겁다.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다. 당연히 일을 잘하고 오랫동안 회사와 함께할 사람을 뽑고 싶어 한다. 문제는 뽑고 나서야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면접 때는 “뽑아만 주면 몸이 바스러지도록 열심히 일하겠다”며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던 사람들이 막상 뽑아놓고 나면 태도가 돌변하는 경우가 심심찮다. 입사 후에 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면접 때 열정이 가득했던 그 지원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통계학에는 1종 오류, 2종 오류라는 말이 있다. 1종 오류는 옳은 사실을 틀린 것으로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반대로 2종 오류는 틀린 사실을 옳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통계학의 1종 오류·2종 오류에 빗대 기업에서는 채용과정에서 저지를 수 있는 오류를 채용의 1종 오류·2종 오류라고 부른다. 꼭 뽑아야 할 인재를 못 알아보고 놓치는 게 채용의 1종 오류라면, 2종 오류는 반대로 채용해서는 안 될 사람을 뽑아서 회사가 곤란해지는 경우다.


 “당신이 채용에 5분밖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잘못 채용한 사람으로 인해 5000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피터 드러커 


 실제 면접기간 중에 잠시 짬을 내서 회식자리를 가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약방의 감초’ 격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배사가 하나 있다. 누군가 ‘채용’하고 운을 떼면 다른 사람들이 ‘30년’이라고 화답하는 것이다. “채용 30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우리가 뽑는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앞으로 30년 동안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30년은 엄청난 시간이다. 대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4060만 원(대졸·2019년 기준)이다. 10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연봉만 4억이다. 여기에 퇴직금·4대 보험 등 이런저런 비용까지 합치면 5억을 훌쩍 넘는다. 근속연수가 길어지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니까 건배사에 등장하는 ‘30년’은 그만큼 조직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면접에 임해 달라는 간곡한 당부의 표현인 셈이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뽑아서는 안 될 사람을 뽑는 것이고, 또 하나는 뽑아야 할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문제는 후자의 오류는 면접이 끝나면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의 평가에 최선을 다해달라” 면접관 교육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그러나 면접관에게 주어진 문제는 쉽지 않다. 최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 온갖 패러디까지 유행했을 정도다. 드라마의 주인공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신입 변호사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로펌에 입사한 후에 우영우는 법조문과 판례를 줄줄 외우는 천재적인 기억력에다 틀에 박히지 않은 남다른 발상으로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주변의 인정을 받는다.



  특히 상사인 정명석 변호사는 시청자들이 ‘오피스 파더’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우영우의 실력과 열정에 반해 그녀에게 무한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한마디로 우영우의 든든한 후원자다.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자폐라는 사실만으로 우영우를 채용한 대표에게 항의하고 사건을 맡겨본 뒤 제대로 못 하면 내쫓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런데 농담 같은 얘기지만 만약 정명석 변호사가 입사가 확정되기 전에 면접에서 우영우를 처음 만났다면 어땠을까?

 십중팔구 우영우를 떨어뜨렸을 테다.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 변호사 시험성적 1500점 이상이라는 이력서 첫 장에 적힌 ‘스펙’보다는 두 번째 장에 적힌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시선이 꽂혔을 테니까.


 뜬금없는 상상을 계속해보자. 자폐에 가려진 진가를 알아챈 다른 로펌에 우영우가 입사해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승승장구했다면 어떨까? 실제로 극 중에서 우영우는 라이벌 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 상황이 되면 정명석 변호사는 이른바 ‘멘붕’에 빠질 테다. 타성에 젖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면접관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면접관은 (눈앞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계속된 필자의 상상이 닿은 질문이다.



 그래서 면접관은 엄청난 부담을 갖고 면접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지원자의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만이 아니다. 면접관의 선택은 나아가 우리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보통 면접에서 지원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인사하고 의자에 앉아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가 면접이 끝나면 다시 인사하고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안팎이다. 지원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짧으면 10분, 길어야 20분 내외라는 얘기다.


 이처럼 제한된 시간 내에 몇 가지 질문만으로 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니 한 사람의 역량이나 됨됨이를 평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경험 많은 면접관이라면 지원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척! 보면 딱!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해일 뿐이다. 들어오는 걸음걸이와 표정만 보고도 뽑을 사람인지 아닌지 감이 오고, 눈빛만 봐도 단번에 어떤 역량과 품성을 가졌는지 꿰뚫어 본다면 면접관이 아니라 ‘관상쟁이’ 일 테.

 지원자가 너무 뛰어나거나 혹은 그 반대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고만고만한 지원자들을 놓고 평가표를 제출하는 순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면접을 마친 지원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해서 본 면접인데 질문 몇 개 받고 끝나버리니 허망한 느낌마저 들지 않을까? 면접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100% 다 하고 나오는 지원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면접관의 마음도 다를게 하나 없다.

 필자도 면접실 문을 닫고 나가는 지원자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수많은 상념들이 마음을 휘젓는다. “한 사람의 인성이나 역량을 고작 몇 분간의 면접에서 고스란히 드러내라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진면목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몇 가지 질문과 대답만으로 지원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된 걸까? 과연 평가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갖게 된 걸까?”


 사실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면접의 본질적 한계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을까. 그만큼 사람의 속내까지 읽어내서 정확히 평가하기란 어렵다.

 면접관도 뻔히 알고 있다.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이런 사람’ 혹은 ‘저런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고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섣부른 결정이 될 수 있는지.

 그러나 면접시간이 종료되면 면접관은 평가표를 제출해야만 한다. 지원자들 중에 누군가는 뽑고, 또 누군가는 탈락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부담감이 마음을 짓누르지만 어쩔 수 없는 면접관의 숙명인 셈이다.



 문제는 면접에서의 선택은 사후에만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수십 년을 회사에서 일할 지도 모르는데 만약 내가 뽑은 지원자가 ‘적합한 사람’(Right People)이 아니라 ‘부적합한 사람’(Wrong People), ‘일잘러’가 아닌 ‘일못러’, 인재(人才) 아닌 ‘인재(人災)’, 즉 회사에 기여할 ‘복덩이’가 아닌 ‘재앙’이라면 어쩔 것인가? “저 신입사원 누가 뽑은 거야? 어떻게 책임질 텐가?” 원성이 쏟아지면 어떨까?

  면접관 입장에서는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혁신적인 채용 시스템으로 유명한 구글(Google) 입사  신입사원의 성과  평가결과를 체크해서 계속 문제 있는 신입사원을 뽑은 면접관은  이상 면접에 부르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페널티인 셈이다.    



 “소가 마신 물은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신 물은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같은 물이라도 누가 마시는 가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면접은 지원자들 가운데 입사 후에 우유를 만들 사람과 독을 만들 사람을 가려내는 과정인 셈이다. 그러니 면접은 지원자만 두렵고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뽑히고 싶은 사람’보다는 ‘뽑는 사람’인 면접관이 느끼는 압박감이 더 클 수도 있다. 더욱이 면접관의 입장에서 면접은 자신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다.

 면접관의 역할은 말하는 게 아니라 (지원자에게) 말을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면접에서는 보통 면접관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지원자는 계속 대답을 하게 된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면접실에 갇혀서 면접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줄줄이 들어서는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면접시간 내내 경청해야 하는 것이다. 경청은 단순히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니다.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의 맥락과 말속에 숨은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는 ‘깊이 있는 듣기’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경청이다. 하루 종일 이어진 면접을 마치고 나면 면접관들이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서 파김치가 되어버리는 이유다. 그만큼 면접관들 입장에서도 면접은 정신적·체력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사실 직장인에게 면접관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더할 나위 없는 자랑거리다. 청소년을 ‘나라의 미래’라고 하는 것처럼 신입사원은 ‘기업의 미래’다.

 어느 회사에서든 조직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뽑는 일을 아무한테나 맡기지 않는다. 자신의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채용의 잣대인 기업문화와 인재상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안목(眼目), 즉 사람을 보는 좋은 눈과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된 통찰력을 갖추어야 면접관의 역할을 맡길 수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채용이 사회적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자질이나 경험이 부족한 직원을 면접관으로 내세웠다가는 자칫 기업 이미지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더더욱 면접관 선정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면접관으로 뽑히면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번 경험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같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피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면접관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서 턱을 괴고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를 들춰가며 대충 질문 몇 개를 던지고는 평가하는 게 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오해다. 정말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면접은 이름 그대로 면접관과 지원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자리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렵고 불편한 자리이지만 면접관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면접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고 평가한다. 지원자들이 내가 하는 질문이나 진행 매너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특히 면접의 핵심은 ‘질문’이다. 매끄럽게 면접을 진행하려면 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고, 그에 맞추어 질문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똑똑한 대답은 똑똑한 질문에서 나온다. 질문이 잘못되었는데 올바른 답이 나올 리 없다.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지원자를 파악하려면 핵심을 꿰뚫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지원자가 질문내용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질문 하나하나에 분명한 의미를 실어야 한다. 때로는 질문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도록 지원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행간(行間)에 의미를 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면접이 시작되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준비한 질문을 바꾸거나 꼬리 질문을 해야 하므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면접을 보는 당시에는 모두를 또렷하게 기억할 것 같지만 막상 외모도 분위기도 비슷비슷해 보이는 여러 명의 지원자들을 마주하고 나면 누가 누구인지 좀체 분간하기 어렵다.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내 머릿속 지우개’가 되고 만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 인상 깊었던 말이나 특징적인 행동들을 꼼꼼히 메모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식사시간도 심지어 화장실 갈 때 조차도 면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간표에 맞춰서 움직여야만 한다.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면접은 흔한 오해와 달리 면접관 입장에서도 신경 쓸 일 천지고 부담 백배인 자리다.

 그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여 꼬박 하루 동안 면접을 보고 나면 말 그대로 녹초가 되곤 한다. 게다가 면접이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면접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면 그새 밀린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래서 다시 면접관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면접관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평가’다. 면접이 끝나기 무섭게 그것도 사전에 정해진 비율을 정확히 맞추어서 한 사람 한 사람 점수를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펼쳐가고 싶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지원자에게 점수를 매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그토록 짧은 시간에 사람을 평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넨다.



 그러나 평가는 면접관의 숙명이다. 채점표를 제출해야 하는 순간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매긴 점수가 면접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앞으로 삶의 방향, 그리고 우리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운명의 숫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면접관이 받는 중압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면접관은 정확한 평가를 위해 지원자의  속내를 파악하고 솔직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안간힘을 쓴다. 때로는 얼굴을 붉혀가며 압박 면접을 하기도 하고 지원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집요한 꼬리 질문을 이어가기도 한다.

 면접관의 속을 알 리 없는 지원자들은 야속하게 느껴지겠지만 면접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취업준비생들도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면접관을 바라봐 주면 좋겠다. 역지사지는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보다 영어 표현은 “to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본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역지사지의 마인드.



  예를 들면 “아! 면접관도 긴장하고 떨리기는 마찬가지겠지” “누군가의 인생, 그리고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결정을 하려면 엄청 부담되겠다” “그런 부담을 안고 온종일 면접을 진행하느라 지치고 피곤하겠구나” 식으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기 바란다면 그 사람들의 눈이 돼서 그들이 사는 세계를 경험하며, 그들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하이데거


 그리고 혹시 면접관에게 불쾌하거나 황당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받더라도 발끈해서 낯을 붉히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주고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자. 또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것이 면접을 보는 지원자 입장에서도 훨씬 낫다.

 어차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기운을 북돋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면접 합격의 비결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한 번쯤은 면접관의 시각에서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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