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손님을 버리고 가시면 어떻해요?>


올해가 2020년 그러면 벌써 인솔자로 일한지가 횟수로 18년째 되어간다. 겪은 일 중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당연 2014년 8월 31일 손님 사망사고가 첫번째 일것이고 이번일도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3년전의 일 다시 떠 올리자니 정말 웃음과 한숨 밖에 안나오는 해프닝인데..


요즘 여행 가격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여행 가격이 내려갈지 심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그래도 동남아나 중국 정도의 가격은 아니지만 유럽도 점점 가격이 심하게 내려가고 있다. 정말 이게 가능한 가격인가 라고 손님들이 많이 반문을 하는 경우를 보면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적기 보다는 다른 나라를 경유하는 상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제는 국적기를 이용하는 상품들도 너무 싸 지다 보니 문제가 점점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 중동을 경유하는 비행기가 많아졌다. 대표 적인 곳을 꼽자면 UAE(두바이 아부다비) 카타르(도하) 터키(이스탄불) 정도? 나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터키를 경유하는 상품을 많이 이용하는 상품을 인솔을 했지만 지금은 두바이나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상품을 많이 인솔을 한다. 그중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뮌헨을 거쳐 발칸으로 들어가는 상품을 인솔할 때 일어난 잊을수 없는 에피소드이다.


비행도중 비행기에서 가끔 손님들이 간단한 쇼크나 급체로 인한 구토를 하는 경우가 있다. 구토는 갑자기 음식을 급하게 먹거나 아님 평소의 주량보다 더 많은 음주를 해서 잠을 청하려고 하다보니 갑자기 기내의 기압이 안 맞아서 그런 경우가 있고 쇼크는 혈압이 있는 분한테 가끔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기내식을 먹고 한 4시간여 정도 지난 듯 했다. 손님 한 분이 계속 두리번 두리번 거리신다. 한 바퀴 두 바퀴 계속 돌면서 누군가를 찾는 듯 했는데 그게 결국 알고보니 나였다.

왜 그렇게 나를 찾으셨나 했더니 지금 동생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이다.(이날 사건 이후 부터는 나의 비행기 좌석번호를 알려드린다. 하지만 이때는 따로 알려드리고 할 때가 아니었다. 이륙 후 직접 손님들의 상태를 살피는게 버릇 이었다. 아니 습관이 그렇게 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자리 번호를 알려 드리고 미팅은 현지 도착에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것을 내가 본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 계시느냐고 했더니 지금 자리에서 승무원들이 계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이전에 이런 경험을 비슷하게 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얼른 손님을 뒤로 안내 한 후 승무원에게 산소 공급을 부탁했다. 급한데로 앞에 보이는 승무원에게 부탁을 한 후 손님을 메트리스 같은 곳에 뉘였다. (에튀하드 항공은 다국적 승무원 들이라서 한국 승무원은 물론 많은 승무원이 있다.)


그리고 나서는 손님중에 언니라는 분이 계속 몸을 주무르면서 근육을 이완시켰다. 보통 기내에서의 갑작스런 기압 변화로 근육이 수축이 되는 경우가 있고 혈압이 있는 분들은 순간 쇼크가 오기 때문에 혈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행한 조치였다. 한 1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행히 그분은 안정을 되찾으셨고 조금만 더 누워서 상황을 지켜 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객실 메니저는 뭔가의 서류를 가지고 오더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당뇨가 있는지 혈압약을 평소에 먹는지 다른 질병들은 없는지 등등을 물으면서 서류에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승무원은 이 손님이 다른 곳으로 가느냐고 물었고 아부다비 도착후 세시간 후에 다시 뮌헨으로 간다고 말하자 그럼 이 손님은 다음 비행에 합류할 수가 없고 메디컬 테스트를 받은 후에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 것이다. 세시간 정도니까 충분할 거라고 생각을 했고 손님께 상황을 말씀 드리고 나서 남은 시간을 비행기에서 걱정아닌 걱정을 하면서 보냈는데 어느새 비행기는 아부다비에 다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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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고간 에뛰하드 항공사 인천공항 안내판>


아부다비에 도착 후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다시 한번 일행들과 모여 현지 시간과 만날 장소 확인하는 법을 알려 드린 후 기내에서 문제가 있던 그 분께 가서 컨디션이 어떠시냐고 확인을 한 뒤 적당한 자유시간을 드렸다. 아무래도 산소 탱크와 충분한 휴식이 있으셨는지 그분은 기내에서 보단 한결 괜찮은 듯한 표정으로 자유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이후에 벌어질 엄청난 사건은 생각도 하지 못한채….


뮌헨으로 가는 탑승 시간이 거의 다되어 한 분 한 분 확인을 하면서 기내로 탑승을 하고 있었다. 아부다비 까지의 9시간여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뮌헨까지 6시간여 정도를 날아가야 현지에 도착 그 이후 뮌헨 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 6시간여를 가야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스케줄이다. 인솔하는 입장이지만 제발 다른분들 한테는 돈을 더 드리더라도 꼭 직항을 타시라고 권유를 해 드리고 싶다. 본인이 선택해 놓고는 가끔 나한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출발전에 일정표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일어나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번엔 단도리를 잘 한 듯 불만은 크게 없으셨다. 그렇게 거의 탑승이 마감되어 가는데 비행기를 보니 휑한게 아무래도 이번엔 운이 좀 있을 듯 하다. 비행기 자리가 많이 남는 것이다. 아마도 편하게 뮌헨까지 갈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인천 아부다비 구간에서 문제가 있던 손님이 갑자기 앞으로 오신다. 일명 벌크(아기바구니가 있는 넓은 자리)자리를 가르키면서 이렇게 얘기를 하신다.


“혹시 내 동생이 괜찮아 지긴 했지만 여기에 앉아서 가도 될까요?”

몸이 안좋으신 분이었으니 어떻게든 챙겨 드리고 싶었다.

주위를 살짝 보고 손님들께 넌지시 말씀을 드렸다.

“보통 안되는데 그냥 여기 앉아 보세요. 모르는척”

어떻게든 편하게 가시라고 안내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때였다.


"No here."

승무원의 단호한 한 마디가 있었다.

이 한마디는 유치원생도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승무원에게 "Ok sorry"

한마디였으면 모든 상황이 끝나고 우리는 편안하게 자리가 많이 남은 비행기를 타고 뮌헨으로 가는 것인데 오지랖이 이런 오지랖도 없을 것이다. 내가 눈치 없이 손님한테 있었던 자초지종을 승무원에게 설명을 한 것이다. 이 분이 아부다비 오는 길에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듣고 있는 승무원의 표정이 안 좋아 진다. 이제 이륙 시간은 다가오는데 이게 무슨상황이지? 그때 갑자기 사무장이란 분이 오시더니 어떤 서류를 가지고 오신다. 그러더니 아부다비 올 때 물어 보았던 그것들을(당뇨나 혈압관련 질문들)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분은 메디컬 테스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비행기에는 탑승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왜 상황이 아까와 똑같아 진거지?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나의 의도대로 라면 얼른 뮌헨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너무나도 친절한 설명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손님들만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발칸 투어에는 전 일정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없기 때문에 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버리면 더 큰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는 것이다. (최종 항공 도착지인 뮌헨에도 미팅을 위한 한국인 가이드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은 이미 오래되었다. 물론 아닌 경우도 간혹 있다.) 나머지 22명의 손님들이 투어를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이분들은 지금 영어를 잘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 스텝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다 도와 드릴 것이고 너의 손님의 투어 또한 잘 마칠 수 있게 도와 줄것이라며..

그렇게 걱정을 하며 내리는 두분(한 분이 아팠지만 자매 였기 때문에 언니도 같이 내리셨다)을 보면서 걱정 하지 마시라고 한국인이 도와 드릴 것이라고 인천에서 아부다비 까지 올 때도 한국인 승무원이 있었으니 한국인 스텝이 도와 드릴거란 얘기를 드리고 그렇게 그렇게 비행기는 아부다비를 떠나 뮌헨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뮌헨에 도착했다. 이번 비행은 유난히 길다. 말투가 꼭 승무원 같다. 비행이란 말을 거의 쓰지 않는 나에겐 비행이란 말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길긴 길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내리고 일행을 확인한 후에 입국장으로 이동을 할 때 였다. 전화기를 켜고 나니 뭐가 이렇게 많이 와 있는지 문자가 엄청나게 들어온다. 게다가 음성 메시지까지 들어있다.


‘이게 뭐지? 음성은 뭐야 요즘 누가 음성을 남기지?’

게다가 갑자기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그러고선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인솔자님 지금 어디세요?”

당직 직원 이었다.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렸는데요 무슨 일 있나요?”

“아부다비에서 내린 손님이 인솔자님이 자기들 버리고 갔다고 난리가 났어요?”

‘버렸다고 이런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이, 분명 메디컬 테스트 한다고 내리라고 했고 한국인 스텝이 있다고 해서 내려서 검사받고 오시라고 했는데 손님을 버리고 가다니 이게 뭐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 졌다. 버리고 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트램을 타고 입국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담당 직원 또한 난리가 났다. 제목 그대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솔자님 손님을 버리고 가시면 어떻해요? 나머지 분들은 현지에서 가이드를 수배해서 다른 분을 붙여도 될 텐데 지금 이렇게 손님을 버리고 가시면 그 분들은 지금 어떻게 합니까? 인솔자님이 아부다비에 같이 남으 셨어야죠”


머릿속이 하얘졌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멘트. 손님을 버리고 갔다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손님을 버리고 갔다는… 나는 그렇게 인솔자 생활 15년 만에 손님을 중간에 버리고 간 그런 인솔자가 되어 있었다. ㅜ,ㅜ,

‘우선은 그래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 여기 계신 22명의 손님을 케어하고 그 이후에 생각하자.’

라고 맘을 먹은 후 우선은 내 앞에 주어진 의무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고 다시 한번 놓고 온 물건이 없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버스를 만나기 위해서 버스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뮌헨 공항. 게다가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동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번 팀은 특히 고령의 손님들도 소수 계신다. 30년대 생들도 4-5분 정도 계셨으니..

유난히 오늘은 나가는 곳이 많아 보인다. 다른 공항들보다도 더 많아 보인다.(버스 미팅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유럽의 공항들은 인천 공항 처럼 편리하게 되어 있지 않고 대체로 복잡하다. 그래서 항상 최근에 다녀오신 분들한테 사전 확인이나 정보를 받고 가기를 반복한다.)


짐을 찾고 나가서 바로 왼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문을 열었더니 여긴 아닌 것 같다. 이상하다. 뭔가 익숙하지가 않다.

‘오늘 이상한데 지금 왜 이러지..’

“죄송합니다. 공항이 공사를 한 것 같네요. 여기가 아닌 듯 합니다. 조금만 다시 이동해 보겠습니다.”


다시 짐을 찾아서 나온 곳을 향해서 갔다가 정면으로 이동을 했다 .역시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지금 뒤에서 44개의 눈이 나의 뒤통수만 쳐다보고 있을텐데. 아니 도대체 어디란 말이야?ㅜ.ㅜ.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기사한테 나가면서 전화를 한지 10분 이상이 흐른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기사한테 전화를 했다.

기사한테 정중히 요청을 했다.

이쪽으로 와 줄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기사님이 재차 묻는다. 어디에 있느냐고 그래서 바로 대답을 했다. 모르겠다고 그랬더니 기사님이 황당 하듯 다시 말을 하신다. 그게 뭐냐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리로 가느냐고 그리고 버스 미팅하는 장소는 한 군데 밖에 없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동을 할 수가 없다고.


울상이 되어서 연신 다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는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가지 않은 오른쪽으로 해서 공항을 나갔더니 거기에 버스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두 분의 손님 때문에 내가 회사랑 계속 전화통화를 하는걸 들으셨던 손님들께서 정신이 정말 없겠다 생각하시면서 내가 길을 조금(사실 많이 헤멨다.)헤메도 이해해 주신 것이다. 지금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버스도 한번에 못 찾을까 이렇게 생각들을 한 것이다.(이 부분은 그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손님들이 얘기를 해주셨다. 물론 그때는 두 분의 손님이 나중에 우리팀에 합류한 이후였다.)


결국 버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사를 만나서 짐을 싣고 출발 하려는 찰라..

갑자기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이상하게 뭔가 빠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얼른 호텔로 이동을 해야 저녁시간에 도착을 할 수가 있어서 다른 분들의 식사를 챙겨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 입장 시간은 9시 지금은 대략 3시 가까이 된 시간이었고 9시가 넘으면 직원들이 퇴근을 하기 때문에 식사를 할 수가 없다.(유럽은 노동법이 우선 이기 때문에 손님이 식사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경우 그 책임은 손님에게 있다. 물론 환불도 없다.)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다. 짐이 나오는 짐 벨트에서 인천에서 보낸 탁송 수화물이 아부다비를 거쳐 독일까지 온 것을 본 후 탁송 되어온 나의 가방을 찾아서 벨트 옆으로 빼 놓은 뒤 그 가방을 그대로 두고 끌지 않고 작은 가방만 끌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서 독일 시스템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천 공항 같은 경우는 최종 나오는 문(보통 유명인사나 국가대표 선수들이나 나와서 손을 흔드는 문)을 통과 했더라도 다시 들어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잠깐의 확인을 한 후에 다시 들여 보내 주는 것이 통상적인 시스템인데, 독일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포메이션에 가서 접수를 한 후 다시 조금의 시간을 거쳐 담당자를 만나 다시 접수를 하고 그러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소요가 될 것이다.


적어도 30분 이니 그 이상이 분명 걸릴 것이다. 내가 이전에 한 번 가방이 안 온 경우가 있어서 정말 그 가방을 찾기 위해서 3시간 가까이를 애를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은 저녁식사 시간과의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가방을 찾으러 함부로 진입 했다가 나중에 22명이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머릿속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들어 갈 것이냐 포기하고 호텔로 이동을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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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뮌헨 시청사를 보지도 못하고 우린 6시간 가량을 이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결단은 빨리 내려야 했다. 얼른 가방을 포기하고 호텔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사실 가방을 찾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출발을 한다고 해도 저녁 식사는 애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지노선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출발을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그렇게 다행히도 출발을 해서 호텔에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 할 수 있었고 22분의 손님들은 석식을 마치고 휴식에 들었다.


이제는 나와의 싸움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아직 오지 않으신 두 분의 손님의 문제도 남아 있었다. 내일 당장 갈아 입을 옷도 없고 옷은 둘째치고 지금 당장 사용해야할 세면 도구가 하나도 없다. 유럽의 호텔엔 환경보호를 위해서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도구인 비누와(사실 비누도 막대 비누가 아닌 믹서용- 샴푸와 비누를 하나로 섞어 놓은 제품이 제공이 많이 되기도 한다.)수건 정도만 제공되고 나머진 각자 준비해서 와야 하는데 큰 가방을 찾아 오지 않았으니 방에 들어와도 할 일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나의 상황 얘기를 듣고 아는 분은 아니었지만 다른 회사 인솔자 분이 혹시 모를 예비용으로 들고 다니시던 1회용 칫솔을 제공해 주셔서 오늘과 내일 아침은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속옷과 양말은 매일 빨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드디어 길었던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기분이 다른 날과 달리 찜찜함과 불안함이 함께 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유는 어제 오지 않은 나의 짐과 아직 도착하지 않으신 두 분의 손님…

거울을 보니 나의 얼굴도 푸석하고 기분도 별로 였다. 어서 빨리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데 우선 출발이다. 어떻게든 하루를 견뎌 보자. 비록 거울 속에선 어제와 비슷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아니 어제 보다 더 안좋은 모습이지만. 하루를 자고 일어나서 좀 편해졌어야 하는데 제대로 잠을 못잔 탓과 하루가 지나니 인중과 턱에서 자라난 수염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하루의 시작은 해야 하니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인사를 드리는게 얼마나 어색하던지…


슬로베니아의 핵심 관광지인 블레드를 지나서 수도인 루블라냐 까지 아침 관광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부다비 에서 버려(?) 지셨던낙오가 되었던 손님의 상황이 전달되었다. 아부다비에서 검사를 마치고 뮌헨으로 다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뮌헨에서 경유하여 우리가 오늘 도착하는 자그레브로 합류 하기로 하신 것이었다. 지금 어디에 계신지도 몰라 연락 드리기도 그렇고 해서 연락을 드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잘 오고 계신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칸의 국가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몇 분 안계신데 다행히 자그레브에 계신 한국 가이드님이 그 두 분을 마중을 해서 간단한 관광을 시켜 드리고 식사를 제공 해 드린 후에 호텔로 모시고 가신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어떻게 오시려나 걱정이 많았는데 우선 한가지 문제는 해결 된 듯 했다. 그래서 더욱 가벼워진 마음으로 루블라냐 까지 마치고 손님들에게 자유시간을 드렸는데 이제는 오셨으니 뭔가가 또 하나 해결 된 것 같았다. 다행히도 루블라냐 광장에 저렴하게 나마 시장이 얼려 있었고 보이는 데로 맞는 옷을 하나 골라 얼른 갈아 입었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SPAR(여기서 스파는 오스트리아 체인의 큰 마트이다. 마사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에 가서 면도기와 면도크림 각종 세면 도구를 구입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이젠 나름 깔끔한 모습으로 손님들께 매일 매일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기전 자그레브에서 대신 투어를 해주신 가이드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생각치 못한 얘기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인솔자 위창균 입니다. 고생 많으셨죠?

“아 안녕하세요 고생은요 무슨. 그 두 분들이 진짜 고생 많이 하셨던데요?”

“네 아 그러셨을 거에요. 손님들 컨디션은 어떠세요?”

“참 좀 신경좀 쓰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두 분이 굉장히 많이 화가 나셨더라구요. 어떻게 그 동안 전화 한번도 안 할 수 있느냐구요. 이렇게 사람을 버리고 가서는 어떻게 전화를 한번도 안 할 수 있느냐구요.”

“미리 준비좀 하고 가셔야지 아니면 많이 화 낳으셔서 좀 쉽지는 않으 실거에요.”


그랬다. 나는 한번도 그분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나의 그럴만한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컨디션이 우선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분들의 지금 현재 심리 상태를 파악 하는 것이 먼저 라는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깨진 유리 조각이다. 어떻게든 호텔에서 두 분을 뵙고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나머지 일정을 진행 하는 것이 순조로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호텔로 이동을 하였다.


오늘 식사는 호텔에서의 식사 발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호텔 석식이 많다 .그리고 비수기를 제외하곤 부페식이 많다. 하지만 오늘읜 식사는 부페가 아닌 셋트메뉴. 시간과 장소를 안내하고는 드디어 그 방으로 갔다. 그 두 분이 계신 그 방으로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청심환이 생각날 정도였다. 아부다비 기내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걱정하지 마시라며 손님을 내리게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순간은 정말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노크를 하자마자 인기척이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드디어 올것이 온 것이다. 두 분은 좀 피곤해 보이긴 하셨지만 그래도 생각한 것보단 그렇게 수척하거나 힘들어 보이지는 않으셨다,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더 피곤 하셨을 것이다. )


“고생 많으셨죠? 어쨌든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너무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항공사 직원이 한국인 스텝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22명을 그냥 그 분들만 가시라고 할 수 없어서 그렇게 내리셔도 되겠다 판단을 한 건데 어찌됐건 무조건 제 불찰 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디 편찮으시거나 그런데는 따로 없으신가요?”


“네… 뭐…잘… 오긴… 했죠. 근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버리고 갈수가 있죠? 그리고 어떻게 전화를 한 통화도 안할 수가 있나요. 우리가 걱정이 되긴 했나요?”


예상했던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손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을 잘 캐치하기 위해서 집중을 해서 경청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두 분은 더 이상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다. 나중에 투어를 하면서 알았지만 천성이 고우시고 얌전하신 분들 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신 후에도 나한테 크게 뭐라고 하지 않으실 정도로


“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떠한 말씀을 드려도 이해 하지 못하 실거란 생각이 들어서 변명 같은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은건 남은 일정은 최선을 다해서 이렇게 고생 해서 오신만큼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실 수 있도록 꼭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두 분중 한 분이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우리가 말도 안 통해서 처음에는 당황을 했는데 병원에 가서 두바이 한국 대사관이랑 통화하면서 피를 얼마나 많이 뽑던지 말도 못했어요. 게다가 전화도 여기저기 하느라고 전화비도 꽤 나왔을텐데 정말 이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참 휴~~~…그리고 뮌헨에 도착했는데 아부다비하고 시차가 있는지 몰라서 비행기 놓칠 까봐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 벌렁 거리고 참.(그러더니 다시 안도의 한 숨을 쉬셨다.)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언니분이 분하다는 듯 아니 원망 스러운 듯 나에게 모든걸 쏟아 붓고 계셨다. 나는 들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했다. 근데 그때였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반전의 질문이 하나 들어왔다.


“근데 그 손에 들고 있는 비닐은 뭐에요?”

이때였다. 나에게도 변명 아닌 변명의 기회가 온 것이다. 어제 가방을 찾지 못한탓에 급하게 산 세면도구를 본 것이다. 얼른 좋은 기회다 생각하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네 저도 사실은 어제 회사랑 두 분의 상황을 듣고 너무나도 당황하고 억울해서 아부다비 아니 항공사 직원 으로부터 당했구나 생각을 하면서 통화를 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되었죠 한국인 스텝이 없다는걸 그랬더니 회사에선 손님을 버리고 갔다는 질타가 쏟아졌고 그러면서 당황한 나머지 뮌헨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찾긴 했으나 경황이 없어 짐을 공항에 두고 그냥 버스로 이동을 해버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호텔로 이동을 해야하니 시간이 모자랐고..결국 제 짐을 찾지 못한 채로 호텔로 와 버린 것이죠. 그래서 전 오늘부터 옷도 못 갈아 입고 투어를 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시장을 발견하여 옷을 갈아 입었고 세면도구를 살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오늘은 버텼는데 하루하루가 걱정입니다. 옷이야 사면 되지만 여기 우리가 가는 관광지엔 옷들이 많지 않아서 그러네요. 날씨라도 추워지면…”

“음…가이드님도 고생 하셨군요.”


갑자기 우울모드 여서 그랬는지 그 분들이 저를 위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쨌든 두 분은 오셨으니까 된 것이다. 과거는 과거고 우린 이제 앞으로 다가올 일들 만을 생각하면서 가면 되는 것이었다.

“네 저 나름대로 나머지 22분이라도 저녁을 드리기 위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유럽은 노동자가 중심이라 시간에 늦으면 식당이 문을 닫아 버리거든요. 아무튼 오늘 두 분도 석식을 하셔야 하는데 어찌 할까요?”


그랬더니 그 두 분은 생각이 없으시다면서 쉬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다행히도 발칸에서 찾기 힘들다는 한 식당이 있어서 그곳에서 한식으로 식사를 하시고 오신 듯 했다. 그래서 조심히 대화를 마무리를 하면서 전화비는 회사에서 지원을 안해 줄 테니 제가 송금 해드리는걸로 약속을 하고..


<그 분이 바라 보시던 두브로브닉 구 시가지 전망>

손님을 버리고 가시면 어떻해요 3.jpg

다시 한 번 아프신 분의 컨디션을 확인한 후에 방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하루가 밝았다. 한결 좋아진 기분으로 마이크를 잡고 새로오신 분들을 환영해 드렸다.

“안녕하세요? 잘들 쉬셨죠. 오늘 새로운 두 분이 오셨습니다. 환영의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 오늘부터 우리에겐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겁니다. 이런 일이 첫날에 발생한게 다행이다 액땜했다 생각하면서 나머지 투어까지 즐거운 일만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버스는 신나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분들과 함꼐 투어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브로브닉 스르지스산 전망대에서 구시가를 바라보는 아프셨던 분께 살짝 다가가서는 한 마디로 그 분의 감동을 배로 만들어 드렸다..

손님을 버리고 가시면 어떻해요 3.jpg


“ 선생님 참 멋지죠? 이번 여행이 하이라이트 답죠?”

“네 정말 멋있네요. 그리고 여기 있는게 꿈만 같네요.”

“네 선생님 이거 보시려고이러시려고 그 고생하고 오신 거에요.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니 힘내시고 아프지 마세요.”

그렇게 발칸의 일정은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고 우리의 여행도 즐거운 마무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후 가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마지막을 통해서 확인 할수 있습니다.***


여행쟁이의 팁 : 기내에서는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비행기를 회항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컨디션이 안좋다 하면 가급적이면 비행을 포기하는게 낮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고 다른 분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무엇이 먼저 인지를 꼭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돈인지 사람의 건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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