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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May 28. 2022

예비워킹맘 퇴사병, 이렇게 치료되었다

나, 퇴사해도 될까? - 예비워킹맘의 퇴사 고민 2편


지독하게 왔던 예비워킹맘의 퇴사병.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퇴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다 문득 한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아주 담담하게 일침을 놓는 유튜버였는데, '사업병 치료해준다'는 영상이 운명처럼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N잡러 멋있어 보이죠? 한 가지 일만 하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꾸역꾸역 N잡 찾는 거예요.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 최곱니다. 절대 그걸 놓지 마세요. 퇴사하고 N잡하고, 나만의 사업하면 잘 될 거 같죠? 사실은 잘 나가는 유튜버들의 영상 몇 개 보고 사업뽕이 차오른 거 아닌가요? 정말 그 사람들처럼 대박 날 것 같나요? 정신 차리세요. 세상은 생각보다 각박하답니다.



퇴사병 말기 환자인 나의 병이 깨끗이 치료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지금    부업으로 했는데 수입 수준이  정도잖아. 이걸론  용돈밖에 안돼. 내가 이걸 본업으로 가진다고 얼마나  벌겠어. 우리 회사 아무리  떨어졌어도 나름 대기업이고 당장 망할 회사도 아닌데. 사실 사기업   키우기 제일 좋은 회사라고도 하잖아. 선배들도 워킹 잘만 하는데. 내가 괜히 마음 약해져서 퇴사 생각이 들었나 . 10  취업 준비할  생각해봐. 얼마나 간절했어. 누군가는 지금  자리가 너무나 부러울 텐데. 내가 배부른 생각한 거야. 복직하면 힘은 들겠지만 적응할  있겠지, 나도 아이도.





나는 누구보다 모범생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별다른 일탈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기업에 취직했다. 남들보다 느리지 않게, 조금은 빠른 속도로. 내 목표는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이었고 나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 엄마 아빠는 어딜 가든 내 대학과 회사 이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 회사생활도 썩 나쁘진 않았다. 부서 이동이 많은 회사에서 업무 변경 없이 같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일도 나에게 잘 맞았다. 동료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공감해주고, 시무룩해있으면 기운을 북돋아주는.


하지만 나를 평가하는 상사와 평가, 승진 시스템은 나에게 정말 맞지 않았다. 납득할  없는 지시사항을 받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매번 말대꾸하는 나를 상사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납득할  없는 일이라도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상사들은 결과에 항상 만족하지 못했다. 승진 못한 선배들 핑계로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았고 계속해서 승진 누락이 되었다.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항상 억울했다. 나의 장점보단 단점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상사와 대화하고 나면, 깊은 우울감이 들어 울면서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생각보다 보잘것없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없었다. 나를 오래 보아온 선배들은 그렇게 밝던 아이가 회색빛이 되었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스스로 조직생활에 잘 맞는 우수 직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편, 언니, 친구들에게 물으니, 당연히 회사생활은 고되지만 그렇게까지 자존감이 깎이거나 스스로가 보잘것없이 느껴진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는 받긴 하지만 진짜 회사를 관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퇴사병이 치료되는 중이었던 나는 '결국 내가 부족한 탓'이라는 결론을 내고, 복직하면 고분고분 착한 직원이 될 테야 결심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회사일이 내 개인사업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욕심을 내고, 내 뜻대로 하려 했을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일인데. 아무리 납득이 안 가도 나보다 몇 년을 더 일한 사람들인데 왜 말대꾸를 했을까? 팀장님이 날 싫어할 만했네.



분명 퇴사병이 치료되었는데, 어딘가 찜찜하다. 다시 현실감을 찾은 것 같긴 한데 마음 한쪽이 아리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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