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의 결핍이 주선한 코칭과의 만남
새삼스런 얘기지만...
연애기간이 짧았다. 만나서 결혼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기혼자들은 알 것이다. 몇 년을 연애하고 이 사람이다 싶어 결혼했지만 연애생활과 결혼생활은 많이 다르다.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살아보니 다르다. 이미 살고 있으니 어쩔 도리도 없다. 배우자 교환 환불을 위해선 극단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A라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했다고 여겼다.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A가 아니고 B와 살고 있다.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다. 워낙 연애기간이 짧았으니 알아도 얼마나 알았겠는가. 사정은 아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들 그런가?
첫째를 출산하고 자연스레 싸움이 잦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못난 남편이었다. 그저 좀 더 배려하고 아껴주고 살림 같이 하면서 몸빵(허드렛일)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좀처럼 몸빵이 잘 되지 않았다.
앞서 내 겁쟁이 기록 중 한 부분(도망자)을 들추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얼마나 못나니였는지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부부가 이혼하는 데에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데에는 오로지 한 가지 이유만 있다.
그건 바로 '사랑'. 너무 사랑하니까.
반대로 이혼하는 데에는 꼭 한 가지 이유만 들 수는 없다. 함께 살면서 문제는 늘 있고,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혼생활 초반부를 떠올릴 때, 아내가 나를 일컬어 자주 하는 표현이 있다.
'항상 날카롭게 신경이 서 있는 사람'
100% 인정한다.
대한민국 30대 가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강의를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의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에는 요즘처럼 창업이나 1인 기업에 대한 개념도 빈약했던 시절이었다.
유튜브가 없어서 편히 알 수 있는 오늘날의 평범한 지식조차 습득이 어려웠다. 나는 강의를 하기 위해 지인 CEO로부터 소개를 받고 맨손으로 영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항상 허기진 30대 가장
젊은 청년 비스므리한 가장이 살아보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걸 보고 강의일정을 만들어주신 고객 대표님들도 있었고, 잠깐 씩은 작은 회사에 들어가 본업을 바꿔보기도 했다. 규모가 있는 교육회사로부터 중부권 지사장 제안을 받아 일을 하기도 했고, 정말 어려웠을 때에는 고시학원 홍보 벽보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아르바이트한다고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수입이 생기느냐. 그렇진 않다.
그렇다고 집에 있을 수는 없다.
움직여야 불안함을 떨칠 수 있고, 바빠져야 허기짐으로부터 무감각해지니까.
부지런하게 움직이지만 결실이 없고, 늘 허기지며 준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심정으로 30대를 살아간다. 내게 일을 주시던 분들은 당시의 나를 이렇게 회상한다.
'열정과 패기로 일을 하고 일처리도 깔끔하지만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불안해 보였다.'
아내가 표현한 나의 날카로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갓 결혼한 남편은 때론
갓 엄마 품을 떠난 어린 아들에 불과하다!
결혼 전까지 엄마 품에서 삶의 중요한 습관들이 만들여졌으니...
그저 함께 사는 여자만 바뀌었네.
못나니인 나는 아내에게 나의 결핍을 드러내며 내면의 불안을 비추는 일이 빈번했다. 어느 여자가 이런 남자를 신뢰하며 평생을 동행하겠는가. 그럼에도 아내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소규모 교육사업을 열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일들이 있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내게 좋은 경험으로 축적되었다고 믿지만, 못나니 아닌가.
배운 것도 많지만 잃은 것에 골몰하는 내 모습이 나조차 싫었다.
하나 둘 사업을 해나가면서 망하지 않기 위해 날카롭고 꼼꼼하게 일처리 하는 것에 골몰했다.
이러한 모습이 가정에서도 종종 드러나곤 했다.
아내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달콤함이 사라진 관계.
나는 그 와중에도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을 개발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교육을 받는 등 분주한 생활을 이어갔다. 낮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연구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생활하는데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아내의 마음은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아내로부터도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큰 결단을 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 결단한 한 가지!
태어나 처음으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다. 부부관계로 방문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소장님은 내 부모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어떠했냐는 거다. 내 부모님은 화목하시다. 너무 사랑하시지.
다시 내 어린 시절 부모와 나의 갈등에 대해 질문하셨다. 왠지 내 지난 과거 속에서 문제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시간 동안 내 문제를 찾아다녔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평소 안 하던 말들 이기도 했고.
최대한 솔직하게 상담을 받고, 끝나자 나름 속이 후련했다.
일주일 후, 두 번째 심리상담소를 방문했다. 역시 문제 찾기가 이어졌다. 아내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끝나자 역시 후련했다.
그런데 내가 상담 이후에 대체 뭘 해야 할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나는 말하고 위로받고 마음 좀 녹이고 그 장소를 벗어나면 다시 현실이었다.
귀가하면 아내는 냉랭하고 내 마음은 지쳐있다. 심리상담소를 다녀왔다는 노력에 대한 어필에도 아내는 무반응이다.
소장님은 아내와 함께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싫다고 하였다. 나는 이대로 가정이 깨어질 까봐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