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강의는 왜 하기 시작했니"
30대 초반부터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CS, 마인드, 리더십, 성격유형분석, CEO를 위한 스피치, 기업가 정신 등 온갖 종류의 강의를 기획하고 만들었다. 강의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강의는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남는 장사다. 강의하는 자체가 경력이 되고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줄 돈이 없다고 하는 곳에 가서 무료로 강의를 해드리고 내 돈 들여 차비 내고 돌아오면서도 손해 보는 기분이 없었다. 그렇게 훈련받듯 강의를 다녔다.
나는 그저 강의를 하며 훈련되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남들 술 마시고 고상한 취미생활 할 때, 나는 이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엄밀히 강의를 취미라 볼 수는 없다. 꽤 많은 시간 준비하고 현장에서 긴장하며 강의를 한다. 결코 단순히 취미생활은 아닌 거다. 그래도 좋으니까 계속하게 된다. 잘하고 싶으니 책을 많이 읽게 되고, 고가의 돈을 들여 교육도 받는다. 학습하는 동안 얻는 인사이트에 전율을 느끼며 내 강의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보람 있다.
나는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느낌을 얻는 도구로 한동안 강의를 하고 다녔다. 온갖 인용과 유명한 메시지를 PPT에 담고, 머릿속으로 달달 외워 강단에서 말한다.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세요!"
강의를 하는 목적이 오로지 나의 성장을 위한 것이었기에 내가 강의를 잘한 날은 기뻤고, 만족스럽지 못한 날은 실망했다. 청중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스스로 준비한 것을 다 못하면 좌절했다.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한 강의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도망자
강의로 제대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큰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였다. 어렵게 들어간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며 애정 어린 핀잔을 많이 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리 회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시답지 않은 이유 아니었을까. 상사들은 괴롭히고 나는 괴롭힘을 당하며 참고 지낼 만큼 관대하지 않았을 테고, 앞이 보이지 않았을 거다. 당시 나이에 짊어질 수 있는 양만큼의 부담을 안고 퇴사했던 것이리라.
퇴사가 나를 더욱 절박하게 강의하도록 내몰았다. 당시에 나는 주로 특강의뢰를 받곤 했는데,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분량의 마인드 강의가 대부분이었다. 무료로도 강의를 뛰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어서 인지, 의뢰가 들어오면 일단 하겠다고 하고 주는 대로 강의료를 받았다. 돌진하는 마음이었다. 강의 이후에는 의뢰자를 다시 만나 소개를 정중히 부탁하고 자리를 떠나는 일이 나름의 루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50여 명 앞에서 강의를 마치고 의뢰해 주신 대표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화장실을 들르게 되었다.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아 있는데 화장실 창가 너머에 흡연실에서 들리는 이야기.
"저런 강의 백날 들어서 뭐 하냐. 하나도 변화 안되는데"
"그냥 시간 때우는 거죠 뭐. 적당히 앉아서 쉬다 나오는 거죠"
"어차피 똑같잖아. 왜 자꾸 교육받으라는 거야. 시간 아깝게. 두 시간 강의 듣고 변할 거면 내가 이러고 안 있지"
나는 화장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것도 있지만 사실 겁이 많이 났다. 그렇게 겁이 났던 적은 인생 처음이었다. 그날 강의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기립박수도 받고 후기 평점도 좋게 나왔다. 나도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했기에 만족감이 있었다. 불과 5분 전 일인데, 이제는 손이 떨려서 화장실 문조차 열기 어렵다.
대표님을 만났다. 반응 좋다고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는데 적절한 대답조차 고르기 버거웠다. 온몸은 경직되어 굳어지고 참담한 마음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대표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은 강의료가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셨다. 흰색 봉투, 두툼했다.
봉투를 건네받았지만 여전히 손은 떨린다. 이런 나를 보며 강의 때와 다르게 겸손하다며 또 칭찬을 이어가는 대표님을 향해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렵게 시간을 할애해 주셨는데 직원분들께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강의료는 받지 못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꼭 도움이 되는 교육을 준비하겠습니다."
두툼한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일어나 나왔다. 도망친 것이 맞다. 한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했다. 초여름이었다. 정장 안은 무더웠고 셔츠가 땀에 젖어 몸도 무거웠다. 내 마음도 천근만근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순간이었다. 서너 시간을 걸으며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생각은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단했다. 더 이상은 나 자신을 위해 강의하지 않기로.
'내가 주인공인 강의는 앞으로는 절대 없을 것이다.'
집 앞에서 한 가지 더 다짐을 했다.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겠다. 시간 아까운 강의 말고 진짜 교육을 해야겠다."
비로소 깨달은 것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특강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나의 화두는 오로지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이었다.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교육을 하고 싶고 만들어 내야만 했다.
'교육을 통해 진정 변화가 가능할까?', '변화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무엇부터 찾아봐야 하지?'
누군가가 내게 돈을 주고 교육을 맡긴다는 것, 누군가가 내게 돈을 주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상대는 나를 신뢰하는 만큼의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나는 이 사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 저리게 알아버렸다.
HRD 시장에서 돈은 곧 신뢰를 뜻한다. 30대 초반에 내가 두툼한 봉투를 돌려주고 도망쳤던 이유는 신뢰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경험이 모두에게 충격으로 적용될 만큼의 일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 나처럼 충격받고 겁쟁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신뢰 운운하며 지나치게 문제를 확장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래 인생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 아니던가.
덕분에 나는 이 일 이후, 신뢰의 무게를 견뎌보고자 작정하고 방법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자칫 취미생활 하듯 특강만 하면서 지낼 뻔했는데,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