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pionage; 첩보전 >
사람들은 서로 쫓고 쫓는다. 권모술수 덩어리들, 배신자들, 아첨꾼들. 그런데 관객들은 이런 사람들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역사 소설 『삼국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전달해준다.
얼마 전 서점에서 『33세 팡세』를 쓴 김승희 작가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분의 책은 아직 읽어본 적은 없지만 외관상 아주 매력적이었다. -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 책을 완독 했지만 -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이제 좀 책을 볼 줄 알게 된 것 같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떤 책이 나쁜 책인지, 이제 조금은 감을 잡게 되었다. 소위 나쁜 책이란 아무 감동 없이 무수한 정보만 전달해주는 방식이다. 그런 정보라면 이미 온라인상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진짜 좋은 작가의 좋은 책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의 교훈을 가져다준다. 오직 그 책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진리들이 있는 것이다. 좋은 여행 서적은 특정 공간과 장소에 작가 특유의 감성이 담길 때 비로소 탄생한다. 나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김영하 작가는 참 글을 쉽게 쓰는 것 같다.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게 그 문체에 적응하며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책을 쫓고, 또 좋은 책들은 나를 쫓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모델이었던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역사의 뒤안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첩보전 <espionage; 첩보>이다. 서점에 발을 딛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 냉철한 첩보전에 연루된다.
나는 책의 내용을 보기 전에 작가 프로필을 먼저 본다. 그리고 작가의 사진이 있다면 그분의 사진을 먼저 훑어본다. 훑어본다고 얘기하면 매우 무례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의 얼굴을 살피는 게 그분의 글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고, 그분이 쓴 책의 제목과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승희 작가의 책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나를 매혹하고 있었다. 그분의 문체를 깊이 체험해본 적은 없지만 왠지 한국의 메리 올리버 Mary Jane Oliver 같은 느낌이랄까.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여성스럽고 감정적이다. 자꾸 예전에 말했던 작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같아서 조금 거북하지만 김승희 작가의 책에선 프랑수아즈 사강의 냄새도 풍긴다. 아무래도 나는 사강을 남몰래 흠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문체가 너무 아름답기에, 읽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아마 C.S. 루이스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류 작가였다면 사강의 글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래서 김승희 작가의 책을 나중에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이런 좋은 책들이 독자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여류 작가의 글에 매혹되는지 모르겠다. 예전서부터 여성스럽다는 얘기를 남들에게 가끔씩 듣긴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뿐일까. 아마 천생 기질이 그렇게 태어난 탓이리라. 내향적이면서도 감정을 쉽게 숨기려는 가녀린 본능이랄까. 못내 지나간 추억을 가슴에 담아두고 그 기억을 몇 년 동안 회상하고 또다시 회상하는 차분한 감상 파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나는 연배가 있는 남자를 대하기를 매우 어려워한다. 기성세대는 남성스러운 남자상을 선호해왔고 신세대인 나는 여전히 그런 지배적인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른들의 눈에 나는 아직 변덕스럽고 철없는 아이와 같다.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며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당당한 남자가 아니기에. 문학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나의 작은 동경은 아직도 세상에선 너무 여성스럽고 소박하다. 나는 괴벨스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지도 않으며 드골 장군처럼 결단력 있는 정치인도 아니다. 나는 필요한 말은 하며 그렇지 않은 말은 꺼내지 않는 외골수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다 보면 내 안의 기氣가 급속히 소진되는 느낌이다. 나는 세상에 널려있는 자본들을 끌어 모아 대인배처럼 남에게 퍼주는 성격도 아니다. 오직 지금 얘기하고 있는 상대방의 눈을 볼 뿐이며 연쇄반응처럼 일어나는 감정의 교류를 잠잠히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첩보전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부득이하게 나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질없는 사람이다. 기성세대와 나의 차이라면 이걸 꼭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연약하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여기엔 엄청난 간극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에게 프레지던트 같은 위엄과 리더십이 아주 없을 거라고 쉽게 단정 짓지는 마시라. 역사 속에 수많은 랑데부 rendez-vous가 어떻게 출현했는지 알게 된다면 놀라시게 될 테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서 작가들과 화가들, 그리고 작곡가들과 피아니스트들이 서로 대화를 이어갔고 새로운 문화의 한 조류를 탄생시켰으니까. 난 지금 그 영광스러운 대열에 동참했고,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