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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엄마 몸이 공주님 같아.

by 풍또집

거실에 세 모자가 모여 있다.

이제 막 집에 들어와 다 같이 씻으려던 참이다.



바닥에 누워 딩굴이던 첫째가

발을 들어 엄마 팔을 만지기 시작한다.



둘째와 씨름하느라

엄마를 건드리든 말든 첫째에게 시선을 못 둔 지 한참인 듯했던 때,

돌연 밑에서 말을 걸어왔다.

"엄마, 엄마 정말 곤주님 같으다."



갑자기 들어온 칭찬에 기분이 확 산다.

"엄마가 뭐가 공주님 같아?"

살짝 격양된 말투로 물었다.



"엄마 몸이 곤주님 가타! 예쁘다"

"공주님 몸이 이러케 생겨써~"

여전히 엄마 살에 자신의 발을 문대며 말한다.



이럴 때 아들은 애인 같다는 말이 이럴 때 실감이 나곤 한다.



보드라운 스킨십과 무심한 얼굴로 툭. 엄마가 예쁘다니.

그야말로 심쿵이다.

"엄마 몸이 공주님 같아~?"



"응! 어린이집 다른 가족들은 안 예뻐~ 엄마만 에뻐."

"엄마랑 슉모만 예뻐~ 공주님 가타~"

다른 이는 아니고 아이가 좋아하는 숙모까지만 공주님이란다.



아마 진짜 예쁜 것보다는 인기투표 같은 것이었으리라.



반대로 냉정할 때도 있긴 했다.

"엄마, 머리 잘라~ 머시께 잘라~ 지금은 안 에뻐"



빤히 엄마 얼굴을 응시하더니 꺼낸 말이다.



안 그래도 요즘 머리를 좀 잘라야 하나,

거울에 비친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고 생각하긴 했다.

아주 정곡을 찔렸다.



"왜 엄마 머리가 좀 이상해?"



"응 이상해~ 엄마 왜 머리를 안 잘라써~"

아주 대답이 칼 같다.



요즘 좀 살이 쪄서 그런가 싶어 괜스레 찔리는 맘에 묻는다.

"엄마 살을 좀 뺄까?"



"엄마 이거 살 말이야?"

팔을 만지며 말한다.



"엄마 살 빼지 마~ 엄마 몸이 이뻐~ 곤주님 몸이야"

"머리를 잘라야지 엄마~ 머리를 왜 안 자른고야 도대체."



며칠 전

엄마 살을 만지면 기분이 좋으니 예쁘다고 하는구나-

하던 추측은 와장창 깨졌다.



아이의 좋고 싫음에 대한 주관은 확실했다.




앞으로 커가며 아이는 더욱 확실히 자신의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엄마에게도 가져다 대곤 하겠지.



아이의 자랑스럽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외모가 된다면 그것은 정정해 줘야겠지만



어찌 됐건 이 아이가 사회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부모가 사회에서 자신을 보이는 배경 중 하나가 될 때

나는 아이의 약점이 될 수도 강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



혹여나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바지런히 살아본다.


틈틈이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결혼 전 해 본 적 없는 각오를 다진다.

난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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