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믿음의 결과

견고하다고 장담한 나의 가정이 무너졌다.

by 유경

사실은 연애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애써 흐린 눈으로 안 보려 했고, 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강행했고,

신혼 초반에도 그는 다른 여자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을 내게 들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돌이켰어야 했는데,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기 때문에 따귀 한 대로 그 사건을 덮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뭘까..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얼마 전에 골똘히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내 엄마의 영향이리라.

스무 살에 나를 낳아 고된 시집살이를 한 엄마는 평생을 아빠에게 최선을 다했다.

흔한 K장녀들이 매일같이 듣던 말,

"너만 아니었으면 이혼했어"

"너희 때문에 내가 참고 사는 거야"


13살 초등학생이던 내가 어버이날 부모님께 남긴 편지를 본가에서 발견했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제가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아빠 집에 자주 오세요.
엄마가 많이 울어요.


그런 아빠를 엄마는 용서했고, 나는 아빠의 외도로 망가져가는 엄마를 위로하고 달래며

엄마가 나와 동생을 버리지 않기를.

가끔 오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를 괴롭힐 때면 아침에 눈 떠서 엄마가 없을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는지도 모른다.



주말에만 만나는 사이였지만,

주중에 아이를 케어할 다른 사람이 없어서 저녁에 일을 하는 직업의 특성상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지만, 남편을 최대한 존중했다고 나는 생각했고 행동도 그러했다.


그러던 중,

서로의 휴대폰 패턴을 익히 공유하고 있었기에 별로 궁금하지 않아 했던 날들과 다르게

잠든 남편 가슴 위에서 패턴이 풀려있던 그의 휴대폰 속이 미치게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열어서는 안 되는 그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나 외에 일상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평강공주가 아니고, 그가 바보온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더 명확해지는 겨울의 어느 밤.

견고하게 만들어서 결코 부서질 리 없다고 장담했던 나의 가정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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