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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by 시쓰는구링

내 발의 반으로 자라난 너의 발자국

이제 날아가기로 하여 여럿 남기지 않겠다 하니

초록불 흐르면 너의 뒤에서 걸어야겠다


발끝에 걸리는 솔방울들을 차는 일도 없이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겠다


그러다 주황불 비추면

내 반백년의 시간을 담아놓은 한 걸음으로 너의 옆에 서있어야겠다


앞만 보고 날아갈 작은 새 한 마리일 것인데

잘 날지 못하는 새가 다치지는 않을까

깃털을 살짝 잡아 멈춰 세워주려고


그새 각을 세워 푸드덕 거리지만

제 마음대로 날개를 자르지는 않겠다


이내 빨간 불로 바뀌어서

두 발 땅에 붙인 작은 새를 마주 할 수 있으면

바람에 베여 아물 틈도 없는 너의 날개를 어루어 만져야겠다


홀로 날아가는 법을 알게 될 너이기에

천천히 날아져도 괜찮다 할 것이리


다시 날아오를 바람을 기다리자고

두 손 맞잡고 초록불 돌아 올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


둘 중 하나는

자 지금이다

또 날아가보라 할 것인데


다른 하나가

이미 선명했던 발자국 두 개를 남겨놓고

저 먼바다와 산 너머로 날아간다


잠시 왔다 간 귀한 손님이란 말로 나를 위로하며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겠으나


신호등 앞에 멈춰 서서 날아간 방향께

내 시선 전하는 일을 매일마다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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