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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ug 24. 2022

호삼관 종주는 개뿔, 호암산

호암산, 삼성산, 관악산 연계 산행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앞두고 연말까지 안식월을 제공받았다. 다음 달 진행할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인 '제주도 한 달 살면서 올레길 종주하기'를 위해 미리 체력 훈련이 필요했다. 제주도의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26개 코스를 매일 15km 이상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산동호회의 산행 공지를 둘러보던 중에 바로 다음날 산행이 급벙(급한 번개 산행)으로 올라와 있었다. 등산 대장도 몇 차례 릿지 산행을 가이드해 주었던 산꾼이고 코스도 집에서 가까운 호암산, 삼성상 그리고 관악산의 연계 산행이었다. 관악산이야 동네 산이다 보니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오르던 나의 최애 '산'이라서 익숙해 있었지만 호암산과 삼성상은 늘 관악산 정상에서 눈팅으로만 마주 보던 산이다. 새로운 산을 가본다는 것은 역시 흥분되는 일이다.


전날 저녁에 배낭을 챙기고 넣어가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면서 시뮬레이션으로 배낭을 에 넣을 품목을 떠올렸다. 당일 새벽에 일어나 <제주올레 인문여행, 이영철 지음, 2021년>  독서인증과 모친께 보내드릴 <구십도 괜찮아, 김유경 지음, 2021년>의 스무 번째 에피소드를 녹음하고 카톡으로 보내 후에 바로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과일은 냉장고에 있던 방울토마토와 수박을 조그마한 락앤락 용기에 담고 아들 것으로 보이는 맥주캔과 반쯤 얼린 생수도 함께  디펙에 담았다.  나의 점심 메인 메뉴를 위해서 커다란 빈 락앤락 용기도 함께 배낭에 넣었다. 집을 나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김밥' 전문점에서 키오스크를 통해 '땡고추 참치김밥'와 '야채김밥'을 선택했다. 요즘은 모든 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한다. 더 늙으면 김밥도 못 사 먹을 거 같은 쓸데없는 생각까지 든다.


산행을 위해 모이는 장소는 '석수역 1번 출구 나와서 바리 바케트 앞'이었다. 지하철 2호선 방배역을 출발해서 '신도림'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출근길에 붐비는 열차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던 중에 지하철 방송으로 '신..... 림'이라는 소리가 들려 허둥지둥 내리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젠장, 신도림역이 아니라 '신림역'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총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신도림역에서 하차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느꼈다. 지하철 차량 슬라이딩 도어마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있던 사람들은 금방 온 '인천행' 열차를 타지 않고 그대로 줄을 유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천행' 열차와 '수원행' 열차를 구분해서 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탔다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약속 장소에는 9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회원들도 있고, 처음 보는 회원들도 있다. 새로운 산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의 등산도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당초 계획은 호암산(309m), 삼성산(481m) 그리고 관악산(632m)까지 약 18km 종주였다. 하지만 날씨도 덥고 무리하지 말자는 여러 회원들의 민원으로 인하여 급하게 코스를 변경했다. 들머리(등산의 시작 장소)는 호암산 숲길 공원을 통해, 신랑각시바위, 석구상, 민주동산, 깃대봉을 거처 삼성산 마당바위, 무너미 고개(관악산과 삼성산의 경계), 서울대 제4야영장을 지나 서울공대를 날머리(등산이 끝나는 장소)로 마무리했다. 끝나고 등산 어플인 '랭귤러'를 확인해보니 총거리는 약 9km이고 총 이동 시간은 휴식시간 포함해서 6시간 정도였다.


등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점심시간이다. 민주동산 한쪽 편에 바람이 잘 부는 그늘 쪽에 돗자리를 깔고 음식들을 펼쳤다. 그중 에서도 오늘의 메인 음식은 단연 '족발'이었다. 커다란 족발에 싱싱한 겉절이 김치, 거리다가 막국수까지 3가지를 버무려 한 입에 쏙 먹는 그 맛은 산 아래에서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왜냐하면 저 멀리 푸르는 산들이 눈앞에 펼쳐 있고 시원한 산바람이 내 빰을 스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내 입맛을 저격한 음식은 '맥시칸 샐러드'였다. 별도로 참크래커 까지 준비해서 함께 먹으니 딱, 내 입맛이었다. 나중에 백 배킹 가면 캠핑음식으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샌드위치, 술빵, 김밥, 밥을 먹고 포도, 방울도마토등도 함께 나눠 먹었다.


화려한 점심시간을 마치고 후반전 등산이 시작되었다. 물론 8월 초의 땡볕 산행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도 8월의 끝자락 산행이다 보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처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덥기는 매 한 가지였다. 하지만 산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고 육산이면서 나무숲이 울창해서 산행하기에는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되었다. 등산객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흐르는 땀은 온몸을 적시고 갈증은 계속되었다. 땀이 많은 회원 중에는  얼굴의 땀을 닦은 손수건을 짜니, 거기서 물이 쭈르륵 흘러내려서 깜짝 놀랐다. 모든 회원들은  날머리를 몇 킬로 남겨두고 계곡에 흐르는 물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중탈(중간 이탈) 한 회원 2명을 제외하고 모든 회원들은 계곡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아마도 올여름의 마지막 입수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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