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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l 23. 2022

화려한 밤외출, 관악산

관악산 야간등반

직장인들은 주로 주말에 산행을 한다. 하지만 가끔은 평일에 휴가를 내서 산행을 하기도 하고 퇴근 후에 야간 산행을 하기도 한다. 등산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처럼 평일 휴가를 회사에 제출하고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으로 하루를 꽉꽉 채우기로 했다. 오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충청도에 있는 골프장 예약을 하고 저녁에는 밴드 동호회 회원들과 야간산행을 하기로 했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된 골프 일정은 점심 식사까지 넉넉하게 하고 귀가를 하니 오후 3시 정도가 되었다.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 특별식을 할 만한 것이 없나 둘러보았다.


지난 주말에 본가에 들러 맛나게 먹었던 도토리 묵사발이 생각이 났다. 밀키트처럼 온갖 재료가 패킹되어 있었고 별도의 냉면육수만 부으면 되는 것이었다. 등산할 때 정상에서 먹기에 간편한 준비과정 덕분에 마트 내를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내 눈에 띈 것은 '물회'였다. 물론 물회도 바로 붇고 묽은 액체 소스만 부으면 되는 간단한 형태였다. 다만 가격 때문인지 생선회 대신에 새우, 문어, 소라와 야채들이 가지런히 패킹되어 있었다. 전에 맛본 맛집 물회의 기억을 되살려 별도로 '배'를 사서 집에 도착해 미리 채를 썰어서 비닐봉지에 담고 별도로 큰 양재기도 배낭에 챙겨 넣었다.


관악산 야간산행 공지는 동호회 밴드에 2주 전부터 공지를 했고 신청자는 나를 포함해서 총 7명이 산행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일 오전에 2명이 급작스럽게 취소 요청이 왔고, 또 1명은 회사일로 인해서 뒷풀이만 참석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총 4명이 사당역 5번 출구에서 만나 관음사를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의 산행대장은 나였고, 내가 선두에서 코드와 산행 속도를 조절하였다. 두 사람은 2년 전부터 백대 명산을 함께 산행했기 때문에 그들의 등력(산행등산 능력)을 알고 있었으나 새로 가입한 회원은 잘 모르기 때문에 산행 속도를 새로운 회원을 기준으로 속도 조절을 하며 첫 번째 국기봉에 도착했다.


무더운 여름 날씨이긴 했지만 이미 저녁 7시쯤이 되다 보니 어느덧 선선한 산바람이 흘러내리는 땀과 온몸의 열기를 잠시 식혀주었다. 일행 중에 1년 제주도 살기를 하고 있는 회원이 아침에 직접 공수한 귤을 까먹으며 바닥난 '당분'을 채웠다. 국기봉에서 전망대까지의 마지막 급경사를 있는 힘을 다해 헉헉거리며 올랐다. 어느덧 사당 사거리의 네온사인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해도 서서히 떨어기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배낭에서 준비해 간 '물회'를 양재기에 담아내고 소스와 채 썰어온 '배'와 함께 버물였다. 예상했던 거보다 좋은 반응들이었다. 준비해 간 사람의 입장에서는 '완판'의 즐거움이었다.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제2 국기봉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야경의 꽃이 활짝 피었다. 야간 등반의 백미는 야경 사진이다. 멀리 63빌딩의 엘이디(LED) 조명뿐만 아니라 멀리 인천의 불빛까지 보이는 듯했다. 당초 계획은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해서 2시간 등산 후 8시 30분경에 원점 회기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목표시간보다 30분이 늦어져서 9시경에 사당역 날머리에 도착했다. 산 능선에서 한두 방울 내리던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뒤풀이 장소인 '전주 전집'으로 이동하고 푸짐한 모둠전과 막걸리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평일에도 이런 생동감 있고 활기찬 야간 등반을 한다는 것이 새삼 새로웠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회원들에게는 평일 산행 참석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평일 야간산행을 개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나서서 지하철로 이동하던 중에 회원 중의 한 명이 후다닥 어디를 뛰어갔다 오너니 남은 회원들의 손에 '만두' 포장을 쥐여 주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몇 년을 함께 땀 흘리며 같은 목표 산행을 하다 보니 이제는 친구를 넘어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회원들이 건강 유지하면서 오래오래 활기찬 산행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산과 친구들, 포에버(Fore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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