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채 May 06. 2022

육봉 그리고 짐승길, 관악산

서울 관악산(육봉능선)

관악산의 뒷면을 오른다. 일주일 새에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미소 능선을 통해 서울대 공학관으로 하산했다. 두 번째는 성묘 능선을 통해서 촛대바위를 오르고 육봉 능선으로 하산했다. 물론 길을 몰라서 헤매다가 간신히 원점회귀했다. 몇 달 전에 육봉 능선을 친구 따라 오르다가 중간에서 도시락만 먹고 내려오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직벽에 가까운 바윗길에 엄두를 못 내고 쉬운 길로 돌아가기도 했다. 육봉 능선은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곳이었다. 설 명절 전날의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밴드 산 동호회에 관악산 육봉 공지가 올라왔다. 그것도 얼마 전에 관악산의 뒷면의 세계를 알게 해준 산 대장의 공지였다.


관악산은 동네 산이다. 퇴근길에 집 근처에 다다르면 항상 멀리 관악산 정상의 아이스크림콘처럼 생긴 하얀색 관측소가 보인다. 주말이면 브런치 산행을 위해 사당역 관음사 코스를 이용한다. 관악산의 측면 코스이다. 서울시민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서울대 옆 관악산공원을 통한 정면 코스이다. 관악산을 오르는 주요 능선 30개 중에 20여 개가 관악구를 기점으로 오르는 만큼 많은 등산객이 이용을 한다.

관악산의 뒷면인 과천시를 통해서 오르는 능선은 대략 7개 정도이고 그중에 하나가 관악산의 백미인 암릉으로 이루어진 '육봉 능선'이다. 산꾼들 사이에는 육봉을 오르지 않고 관악산을 올랐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육봉 능선은 문현폭포를 지나 살짝 오르막을 오르면 본격적인 들머리에 마주한다. 스틱을 접고 미리 준비한 암릉용 전문 장갑을 착용한다. 동네 마트에서 구입한 삼천 원짜리 반코팅 안전장갑이다. 몇 개의 바위를 오르면서 산악대장은 릿지 연습이라면서 시범으로 보이고 따라 하게 한다. 릿지(ridge)는 암벽등반에서 바위능선을 가리키며 보통 바위를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바위를 오를 때는 앞꿈치를 세우고 꾹꾹 누르듯이 오르고 내려갈 때는 뒤꿈치에 힘을 주고 십일자로 천천히 내려간다. 손을 사용할 때는 바위의 틈새나 튀어나온 곳을 잡고 민민한 평면도 손가락 10개에 힘을 주고 잡는다. 손으로 '바위를 뜯는다'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사용한다.


일봉을 힘겹게 오르고 나니 새끼 코끼리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이봉은 전문 암벽인을 위한 곳으로 우회해서 통과한다. 삼봉에서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제일 어려운 암벽이 있다. 눈으로만 코스를 학습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삼봉의 다른 코스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 네 번째 봉인 피아노봉 앞에 선다. 지난번에 올랐다가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서 우회하던 곳이다. 조심조심 등산 대장의 가이드로 발끝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을 주고 한 발 한 발 내 딪었다. 여기서 팔에 힘이 빠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봉과 육봉은 별 어려움 없이 마무리하고 육봉(국기봉) 근처 아지트로 이동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산행에서 '알바를 했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길을 잃어 정상적인 길이 아니 다른 길로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산길은 원점 회기를 하기 위해 다시 육봉을 내려갔다. 오르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간다. 내가 보기에는 '알바'인 것거 같았다. 옆 능선에서 원래의 육봉 능선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등산도가 아닌 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앙상하고 가느다란 겨울나무줄기들은 연신 나의 빰을 후려친다. 귀싸대기를 수차례 맞고 허벅지 근육이 터질듯할 때 즈음에서야 '짐승 길'을 벗어났다. 사람이 다닐 수 없이 짐승들만이 다닌다고 해서 '짐승길' 이라고 표현한다. 뿌듯하다. 이제는 나도 관악산을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육봉 능선을 한 바퀴 온전히 돌았으니 말이다. 


이전 02화 아저씨 국공이세요, 북한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