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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l 31. 2022

아저씨 국공이세요, 북한산

북한산 진관계곡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같은 산을 왜 자꾸 가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일 년에 산을 한두 번 정도 가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서울의 명산인 북한산의 경우에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는 13가지이다. 하지만 이 13가지의 등산코스들은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매번 등산할 때마다 만들어 낼 수 있는 코스는 어림잡아 100가지도 넘는다. 갈 때마다 새로운 코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다가 새벽에 오르는 산과 점심에 오르는 산, 야간에 오르는 산의 느낌이 모두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사시사철이 있는 우리네 산에서는 겨울 산행과 가을 산행, 그리고 여름 산행의 느낌이 또 다르다. 한여름 땡볕인데도 산꾼들이 산을 찾는 이유이다.


오늘의 산행은 등산 동호회(산과 친구들)에서 전문 등반대장(산림 보안관)과 함께했다. 코스는 장미공원~탕춘대~비봉능선~진관사계곡~진관사 로 약 9km의 3시간 거리 코스였다. 지하철 불광역 2번 출구 건너편 파출소 앞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했으나 단톡방에서의 사소한 실수로 아침부터 헐레벌떡 본의 아니게 회원 중의 한 명이 알바(산에서 길을 헤매는 것을 일컫는 말)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모이는 장소를 2번 출구의 '2'을 누른다는 게 '1'을 누르다 보니 갑자기 모이는 장소가 바뀐 줄 알고 반대쪽 출구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씩씩거리며 다녀온 것이다.


장미공원을 들머리(산으로 들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이고 '날머리'는 나간다는 의미이다.)로 이번 산행은 '둘레길 같다'라는 등반대장의 말을 믿고 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웬걸, 역시 산에서 산꾼들이 하는 말은 100프로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 왔어요."라는 말과 " 쉬운 산이에요."라는 말은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이다.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해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를 마주한 이마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 땀은 빰을 지나 턱으로 모여 바닥에 떨어지고 등짝에 흥건이 배어 나온 땀은 헐렁한 등산복이 쫄티처럼 몸에 달라붙었다. 과연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약간의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한 시간가량 땀 범벅으로 올라 첫 번째 목적지인 탕춘대성(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33호) 입구에 다다르니 갑자기 에어컨을 튼 거 같은 냉골 산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능선에 올랐다는 안도와 함께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가져온 먹거리를 함께 했다. 시원한 수박과 잘 익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돼지고기 수육이 배낭에서 나오고 냉기가 아직 남아있는 막걸리가 함께 했다. 반잔 정도 따른 막걸리를 입안에 머금고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면서 느끼는 청량함과 머릿속의 찌릿한 이 맛. 산 아래의 산해진미, 그게 무슨 대수인가. 행복, 그게 뭔가. 이것이 바로 진수성찬이고 행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 길과 오르막을 한 시간 가량 더 올라 지친 지친 체력 보강을 위해 시원한 그늘 자리를 찾아 등산용 매트를 폈다. 각자 점심 식사 거리를 펼쳐진 매트 위에 올렸다. 김밥들과 유부초밥, 샌드위치와 빵, 찐호박, 옥수수,부친개,샐러드 그리고 예쁘게 잘 썰려진 참외를 함게 나눠먹고 나름 특별식으로 '물회'도 맛보기 했다. 지난번 관악산 야등 때 먹었던 '물회'가 나름 호응이 좋아서 다시 준비했다. 새벽에 동네 마트에서 물회 세트와 냉면 육수를 사고 집 냉장고에 있던 배를 채를 썰어 아이스팩과 함께 등산용 팩에 넣었다. 잔치국수 면을 삶고 찬물에 헹궈 식히고 락앤락 비닐용기에 아이스 블록(ice block)을 넣고 국수를 넣고 다시 아이스 블록을 넣어 밀봉했다. 귓가에는 '마누라 집에 두고, 누굴 먹이려고 아침부터 저러나'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원기를 회복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비봉과 향로봉의 갈림길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보통 때라면 비봉이던 향로봉이던 그곳에 올라 인증샷을 찍었겠지만 한여름 땡볕 산행이다 보니 탁월한 등반대장의 선택으로 바로 하산을 결정한 것이다. 진관계곡 길 쪽으로 하산을 시작한 후 한 시간이 지나도 물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내심 불안했다. 다행히 졸졸졸 흐르는 물이 보일 때마다 손수건을 적셔 머리를 열기를 식혔다. 그러다가 등산객들의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계곡의 물웅덩이가 우리를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함께 한 일행도 양말과 등산화를 벗고 그대로 등산복을 입은채로 물속에 몸을 깊숙이 담갔다. 여기저기서 대장장이가 뜨거운 쇠를 물속에 담글 때 들리는 '지지찍'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참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저쪽에서 물놀이를 하던 까만 선글라스를 낀 젊은 아줌마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국공 이세요" (국공은 국립공원 단속요원을 말한다.)

내가 입은 등산복이 국공들이 입는 유니폼과 비슷해서 착각을 한 모양이다.

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그녀가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말했다.

" 저희가 술 한 병이 남아서 여기서 마시려고 하는데 마실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나도 모르게 " 그러세요."라고 말하고 나서 잠시 생각해 보니 나는 벌써 국립공원 직원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 안됩니다. 국립공원에서 술 드시면 안 됩니다."

아주머니는 말 없이 가버리셨다.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했나 싶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이야기 해야 겠다.

" 지나친 음주는 산행에 위험하니 적당히 드시고, 안전산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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