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제주도 한 달 살고, 올레길 완주하기'의 기회가 왔다.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최근에 명예퇴직을 앞두고 연말까지 안식월을 제공받았다. 대학교수님들이나 신부님들은 7년에 한 번씩 안식년을 제공받고 스스로를 충천시키고 부족한 공부도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직장 말년의 회사원에게 안식월은 말이 좋아서 안식월이지 용도 폐기된 회사원에 대한 권고사직의 슬픈 결과물일 뿐이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번지르한 회사의 워딩(wording)에 걸맞게 나를 충천하고 되돌아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스페인 800km짜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보고 싶었으나 준비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서 우선 국내의 400km짜리 제주도 올레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제주도 한 달 살고, 올레길 완주하기'의 기회가 왔다.
회사 출근을 멈춘 지난 주말에 '제주올레길'에 대해 인터넷 서칭을 하고 온라인 서점인 '예스 24시'를 통해 가이드북을 검색했다. 2007년 올레길이 처음 개장한 지 벌써 15년이 흐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있어서 한 권씩 샘플 내용들을 들춰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책을 3권 정도 체크를 해 두었다. 며칠 뒤에 교보문고 강남점을 들러 실물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제주올레 인문여행, 이영철 지음, 2021년 7월>을 구매했다. 제주도 토박이인 저자가 인문학적 측면에서 21개 코스에 얽힌 역사의 이야기와 사건들을 알기 쉽게 기술한 책으로 출간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따끈한 신간이었다. 서점 매대에는 내용을 볼 수 없게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책 샘플을 본 후라서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가 목표였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한 것은 항공권을 9/1부터 9/30까지 왕복으로 결제를 했다. 그다음 과제는 어떻게 일정을 효율적으로 짜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선 남들은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유뷰브, 네이버 밴드 등을 둘러보았다. 가장 쉽게 하는 것은 여행 패키지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가격은 대략 350만 원 정도로 한 달 내내 한 팀으로 움직이고 모든 숙박, 식당, 교통편, 가이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이 올레길 완주에는 최적의 여행상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30년간의 사회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는 '성찰의 시간'을 제주도라는 자연의 공간에서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성찰을 위한 나 홀로 자유여행'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가이드북과 여러 정보들을 탐독하면서 세부 일정들이 하나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길 전체 코스는 21개이지만 부가적으로 5개 코스가 새로 개발되어 총 26개 코스를 완주해야 한다. 대략적으로 1일 1코스를 목표로 했고 평균적으로 하루에 15km를 5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숙박은 동서남북으로 4개의 숙소를 베이스캠프(base camp)로 하고 1주일 정도씩 묵는 것으로 했다. 베이스캠프를 이동하는 마지막 날은 박 배낭을 메고 이동해서 박지를 찾아 텐트에서 자는 백패킹을 일정에 넣었다. 일정이 거의 확정이 되고 각 코스마다의 사전학습은 제주도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높여주었다. 상상 속의 제주도는 이제 3일 후면 두발로 땅을 딛고,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제주산 음식을 입으로 맛보게 될 것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역사를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