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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pr 02. 2023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 재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11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지난 2년간 두 여자, 유영과 캘리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시간순으로 엮은 공동매거진입니다. <잃시상>은 평범한 직장인 유영이 우연히 심리상담전문가 캘리를 만나 서로의 감정일기를 편지 형식으로 나눈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던 유영이 캘리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감정의 바다에서 유영(游泳)할 수 있게 되는 성장 스토리입니다.


제11화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 재수 없다'는 유영이 잘 모르는 사람을 미워하는 이야기입니다. 유영과 캘리, 두 여자가 감정일기를 교환하면서 풀어가는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격주로 발행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4월 16일 일요일 오전 9시에 이어집니다.






유영의 감정일기 >>클릭  <잃시상> 9화 남편 생일, 내 생일, 결혼기념일 한 번에 퉁쳐요.ㄹㄹ준 오

캘리의 피드백    >>클릭  <잃시상> 10화 생일 거꾸로 일생)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 재수 없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남편 생일, 내 생일, 결혼기념일 한 번에 퉁치는데, 그 생일을 거꾸로 하면 일생이다. 라는 선생님의 피드백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했습니다. 팁으로 알려주신 관계도도 꼭 그려볼게요. 앞으로 선생님과 공부하고 나눌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네요. 오늘은 맨날 보는 가족이야기 말고, 방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뉘신지 모를 어떤 남자 이야기를 해 볼게요.


이제는 진짜 추우면 안 되는데, 이곳 철원은 아직도 한겨울 같이 느껴지네요.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홧김에 짧게 자른 머리 때문에 귀가 얼얼했어요. 게다가, 갑자기 내린 우박 때문에 하얀 생선눈알 같은 결정체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아스팔트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댕기고 있었어요.  1초라도 빨리 뜨거운 욕조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우박을 종종걸음으로 사뿐히 즈려 밟으며 공동현관을 향했어요. 12시 방향으로 3 미터 앞에 공동현관 유리문 넘어 빨간 숫자 1이 보였어요. 이대로 쭈욱 가면 바로 1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 타고 갈 수 있으니 제 걸음은 점점 빨라졌죠.


그런데 바로 코앞에 한눈에 봐도 그럴싸한 코트를 입은 남자가 너무나 천천히 걸으며 중앙현관으로 통하는 길목의 가운데를 차지하고선, 저의 동선을 가로막는 거예요. 저는 살짝 옆으로 돌아서 그 남자를 무리하게 앞질러 가려다가 바닥의 살얼음 때문에 미끄러질 뻔했어요. 저의 몸개그를 지켜보던 이 느려터진 거북이 자슥같은 남자가 일순간 나를 제끼고 전속력으로 질주해 중앙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손을 뻗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재빨리 중심을 잡고 그가 지나간 물결에 합세해 중앙현관문이 닫히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모면해 겨우겨우 엘리베이터에 그 남자와 합승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숨이 차면서 긴장이 풀리니 코끝이 찡하면서 핑하고 눈물이 살짝 고였습니다. 검지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으려니, 약이 오르면서 뒷목이 뜨거워졌어요. 미간을 찌푸리고 뻣뻣한 목을 돌리니 우두둑하고 뼈마디를 잇따라 나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의 옆모습 보였습니다.

  

이 남자, 그래 지난 여름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적 있어. 재수없어


왜 저는 뉘신지 모를 이 남자를 보고 재수 없다고 느꼈을 까요. 이 남자를 처음 본건, 작년 여름, 어느 출근길이었어요.  숫자를 센다고 엘리베이터가 빨리 내려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뚫어져라 숫자를 보며 빨리 내려가라는 주술을 담아 숫자를 세며 숫자 1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 땡 하는 경쾌한 경고음이 들리자마자 문의 가운데 서있던 저는 문이 열리는 순간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문이 열리자, 땀냄새가 제 얼굴을 강타했습니다. 맞은 편에 저와 같은 포지션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오기 위해 어떤 남자가 몸을 들이 밀고 있었던 거죠. 운동복 차림의 이 남자는 뭔 짓을 한 건지 몸에서 김이 모랑모랑 올라오고 있었어요. 나가는 사람이 먼저라는 사회 기본예절도 모르는 무개념, 무대포 이 남자는 제 갈길을 막고 서 있었어요.


잠시 기싸움하듯 서로 노려보다가, 그 남자는 사회기본예절이 생각났는지 몸을 비틀어 게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저는 살짝 몸을 틀어 그 사람이 게걸음 치도록 도와주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습니다.


근데, 난 왜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남자가 왜 그리 싫을까.


다시 땡 하는 경쾌한 경고음과 함께 지난 여름의 기억소환이 완료되었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서 그 남자가 내렸어요.  그 남자 뒤통수에 대고 "사회기본예절도 모르는 저런 남자는 꼭 외롭게 혼자 살아야 해"라는 저주도 퍼부었어요.  잠들기 전까지 지난여름,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가로막고, 오늘 또 나를 앞질러간 그 남자를 계속 미워했답니다.


왓칭으로 파헤쳐 본 내 속 마음

1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2 내가 받고 싶은 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3 내가 못하는 걸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 더 파헤쳐 본 내 속 마음
1 나도 성격 급해 그 그 남자도 급해
2 나한테 인사정도는 해야지.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3 나도 사회기본예절 무시하고 막살고 싶은 건가

 그 남자가 싫은 이유가 1,2,3 때문이 아닌 상황과 외모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해 신난 에고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리 없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에고는 어쩜 이리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걸까요. 갑자기 지난번 선생님과 치유독서프로그램으로 읽은 왓칭이 생각나네요.. 왓칭으로 바라본 제 에고는 끄달림을 계속 생산하네요. 왓칭을 하고 있는 저의 큰 마음(진짜 마음)도 쉬지 않고 깨어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 남자를 미워하면서, 에너지가 탈탈 털려 버렸어요. 그 남자를 미워하는 마음은 나를 해쳐서 오늘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못하게 만들었어요. 미워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나를 챙기기 위한 영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끄달리게 된 건지, 내 마음을 잘 바라봐야겠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격주에 한 번 일요일 오전 9시에 발행됩니다.

4월 16일 일요일 오전 9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제13화로 이어집니다.


본 감정일기를 읽은 후 (아래 링크)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을 읽으시면 화나고 우울한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제12화   

https://brunch.co.kr/@ksh3266/66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1,2화

https://brunch.co.kr/@youyeons/40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3,4화

https://brunch.co.kr/@youyeons/43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5,6화

https://brunch.co.kr/@youyeons/45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7,8화

https://brunch.co.kr/@youyeons/47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9,10화

https://brunch.co.kr/@youyeons/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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