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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Sep 19. 2024

잠든 여우

2부-5화. 동네 경찰 ▶ 잠든 여우

누런 살쾡이가 심마니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이유는 산삼이나 송이 냄새로 영물을 찾아내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향기 나는 주변을 샅샅이 훑는데 그가 찍은 장소라면 백발백중 애삼이라도 만나게 된다. 며칠새 산기슭에서 붉은여우를 찾다 보니, 불편한 다리를 감은 붕대에서 고름이 새어 나와 신선계곡에 썩은 발을 담가보려고 한다.


"누런 살쾡이가..."


"누런 고양이"


"누런 살쾡이가 보여..."


남자는 잠시 정신을 잃은 여자를 일으켜 세운다. 그는 열기를 제대로 식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네 개의 종이컵 중에 반쯤 차있던 소주를 집어 들고선 에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당신도 한잔 할래"


"아까 뭔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누런 괭이라고 그랬나"


남자는 밤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아마 산짐승이 지나다닌 것을 살짝 본 것이 틀림없을 거라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당신 아까 춥다고 했는데 지금은 좀 어때"


여자는 옆에 부어놓은 맥주를 마시고는 아까보다 좋아졌다며 남자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남자는 서로의 열기를 다시 나누자고 여자에게 말을 흘린다. 그녀는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손을 젓는다. 여자는 미안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공기도 차고 무서우니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차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말한다.


신선계곡 근처에서 송이 향기를 맡은 살쾡이는 자세를 낮춰 향기가 새어 나오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상하게 송이 향기가 산기슭이 아닌 계곡에서 뿜어져 나와 누가 계곡에서 귀한 송이를 먹으려고 하나 궁금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송이 향기가 점점 진하게 흘러나와 많은 양의 송이를 어디서 캤는지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다.


살쾡이는 작은 다리 위로 올라가 다리 밑을 쳐다보는데 오래전에 집 떠난 여우가 텐트 안에서 건장한 남자 아래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자는 위에서 지켜보던 누런 살쾡이를 반쯤 뜬 눈으로 보고는 정신을 잃는다.


남자는 여자의 의사를 존중한다. 그는 씁쓸한 속을 달래려고 술병에 남아 있던 소주를 종이컵에 가득 채워 벌컥벌컥 들이켠다. 남자가 주머니와 텐트에서 차키를 찾으려고 뒤적이지만 키를 찾을 수 없다. 차키는 아까 여자의 언니가 파우더를 차에 놓고 내려, 두고 온 물건을 찾으려고 키를 챙겨 자리를 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여자와 남자는 텐트에서 밤을 지새야 한다.


여자는 조금 전 누런 살쾡이를 언뜻 본 것 같아 기분이 꺼림칙하다. 예전에 같이 살았던 살쾡이가 있었는데 그를 여기서 본 것 같다고 남자 친구에게 말할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정확하게 확인한 것도 아니라, 빨리 날이 밝아 신선계곡을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남자는 방금 여자와 열기를 나누기 전에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해, 지금도 여운이 사그라들지 않은 상태다. 그녀에게 부탁해 보려고 하지만 여자 상태가 불안해 보인다. 남자는 여자에게 재차 요청도 하지 못한 채 지레짐작 스스로 포기한다.


남자는 오랜 교대근무로 인해 불면증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수면 부족으로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그냥 삼키면 타인에게 약점이 잡힐까 봐 남들 모르게 커피에 타서 먹곤 한다. 오늘은 여자와 이루지 못한 열기를 잠재우려 커피에 수면제를 태우고서 꿈속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남자는 종이컵에 수면제와 믹스커피 가루를 털어놓고선 물이 끓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많이 마신 술에 가득 찬 오줌통을 비우려고, 텐트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 아래로 내려가서 소임을 마칠 샘이다.


남자가 불을 켜 놓은 휴대용 가스버너 위 냄비에서 물이 끓기 시작한다. 여자는 종이컵에 들어 있던 가루에 물을 붓는다. 종이컵 안에 놓여 있던 잘린 믹스커피 봉지를 스틱 삼아 굵은 알이 사라질 때까지 저은 뒤 입술을 모아 종이컵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커피를 두 입술 사이에 품는다.

 

남자는 용변을 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다. 넘어지면서 모래사장에 반바지 엉덩이 부분이 젖는다. 남자는 바지와 팬티를 벗어 두 손에 있는 힘을 다 주어 비틀면서 물기를 짜낸 뒤 팬티는 반바지 앞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물기가 있는 반바지가 몸에 붙어 척척하지 않게 허리춤에 살짝 걸친 채 여자가 있는 텐트에 들어선다.


여자는 커피를 반쯤 마시고선 잠이 들었는지 남자가 어깨에 손을 데고 옆에서 조심스럽게 흔들 끄응하는 소리만 흘린다. 수면제에 취해 잠들었는지 일어나지도 않는다. 남자는 텐트 안에 있던 수건을 엉덩이에 깔고 주머니에 있던 팬티를 접은 수건 사이에 끼워 넣는다. 엉덩이에 힘을 주어 물기가 수건에 스며들도록 엉덩이 왼쪽 오른쪽 힘을 번갈아 주면서 반쯤 남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


"방금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산고양이였나"


남자는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여자는 대꾸 없이 끙끙거린다. 여자 머리를 만지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남자는 여자 어깨를 흔들며 일어나 보라고 재촉한다. 여자는 끙끙거리며 너무 춥다며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린다. 남자가 여자를 자신의 가슴 옆으로 끌어당겨 팔베개를 해주려고 하지만 여자는 춥다며 남자에게 덮을 것을 달라고 요구한다.


"너무 추워요"


"안아주세요"


남자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한번 여자에게 묻는다.


"괜찮겠어"


"추워요, 따뜻하게 해 주세요"


남자가 용기를 내어 여자에게 입김을 불어넣는다. 남자는 입김을 여기저기 묻히지만 여자의 체온은 더 떨어진다. 여자는 수면제와 술에 취해서 그런지 무서움은 사라진 듯하다. 그녀는 추위를 벗어날 생각만이 간절하다. 여자의 입술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하며 치아 사이에서 더그덕 더그덕 거리는 소리가 남자 몸에도 전해진다.


"이봐 따뜻하게 해 줄게"


"너무 추워요"


남자는 여우의 솜털을 어루만지며 열기를 쏟아 넣고서는 여우 옆에서 잠이 든다. 여우는 더 이상 더그덕 거리는 소리 없이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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