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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Sep 23. 2024

살쾡이 꾀

2부-6화. 동네 경찰 ▶ 살쾡이 꾀

누런 살쾡이는 텐트에 있던 여우와 눈이 마주쳤지만 반가움보다는 살기가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갑자기 쓰러진 여우가 걱정되기는커녕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젠장 빌어먹을"


"젠장, 젠장..."


여우는 작은 기온 차에도 쉽사리 한기가 드는데, 특히 입술 부위가 파랗게 질리면 치아 사이가 덜덜거리며 부딪치는 증세가 나타난. 살쾡이는 여우와 살붙이처럼 지낼 때 온돌방은 항상 따뜻하게 지내도록 장작을 창고에 가득 채워놓고 살았다.


한 번은 심마니 근신 생활을 하는 문제로 여우와 일주일 전부터 관계는 피했지만 바깥출입조차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살쾡이는 심마니로 근신 생활을 제대로 못해 산신이 노하면 산삼을 만나지 못할 거라며 내심 걱정이다. 화가 난 살쾡이는 엿먹이듯 제집 아궁이에 불 놓는 일을 빠트린다. 불 지피는 일을 빼먹고, 잠든 여우도 깨우지 않은  산에 든다.


산에 오른 살쾡이는 채삼을 시작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비가 철없이 내리는 바람에 일주일 정도 획한 산행을 포기한다.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


"어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살쾡이는 산신이 노해 입산을 받아주지 않았다며, 근신 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방해한 여우를 원망하면서, 산에 오른 지 이틀도 버티지 못하고 하산한다.


살쾡이는 산에 든 날 보았던 여우 신발이  치의 움직임도 없이 마루 밑에 그대로 놓여있기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다. 집과 마당에 인기척이 없다. 방문을 활짝 열고 내부를 살핀다.


방구들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살쾡이는 겨울이불을 똘똘만 상태로 새파랗게 질린 채 누워서 떨고 있는 여우를 발견한다. 머리를 짚어보니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온몸은 사시나무처럼 바르르 떤다.


가냘프게 들리는 여우의 죽어가는 신음 소리, 눈앞이 깜깜한 살쾡이는 읍내 하나뿐인 약방에서 심마니와 약초꾼들이 생물을 거래하면서 흥정할 때 주워들은 응급 처치법을 생각한다. 살쾡이는 따뜻한 물에 꿀을 타 여우에게 먹이고 아궁이를 지펴 따뜻한 온기를 방안에 선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여우를 만난다. 하마터면 산송장을 치를 뻔한 살쾡이는 미안한 마음에 첫째 날 어렵게 만난 산삼을 꿀에 재워 여우에게 선물다. 여우는 죽었다 살아났다며 살려줘서 고맙다고 연신 두 손을 잡고선 비빈다.

 

살쾡이는 여우를 위해 혼신을 다한 나머지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쉴 새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꿀물을 타 먹이고, 산삼을 꿀에 재워 여우를 보살폈다. 그동안 자신을 챙기지 살쾡이는 사지 한기가 들어 바들바들 살이 떨린다.


살쾡이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여우는 반쯤 먹다 남은 꿀 산삼을 입에 물더니 한기가 들린 살쾡이 입에 살포시 밀어 넣는다. 오래간만에 서로를 위하고 달랜 살쾡이와 여우는 한껏 오른 기운으로 부부의 정을 느끼며 세대 상속을 위한 연정을 품는다. 살쾡이가 온 힘을 다해 여우를 보듬자 여우가 누운 바닥에서 송이 향기가 피어오른다. 살쾡이는 그때 심취한 여우 향을 잊을 수 없다.


신선계곡 텐트 뒤에서 살쾡이는 삐죽 내민 고개를 집어넣고는 산기슭 거처로 잠시 몸을 돌린다. 속이 뒤집힌 살쾡이는 더 이상 집에 머물 수가 없다.


살쾡이는 자신 곁을 떠나 기껏 만난 곳이 다리 밑이라니 여태껏 여우를 찾아 삼천리강산을 헤매며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자신을 한탄한다.


"내가 이 꼴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뭔가 꿍꿍이를 짜낸 살쾡이는 여우가 둥지를 튼 계곡 밑으로 밤길을 추적한다. 계곡 옆 작은 도로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직감한 살쾡이는 몸을 낮춘다. 방금 전 여우 위에서 허우적거리던 남자가 둥지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 있다.


살쾡이는 몸을 낮출 때 사부작거리다 풀과 옷가지가 부딪히며 부스럭 소리가 나자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이때 갑자기 풀숲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놀란 남자가 뒤로 물러서다 이끼 낀 돌을 밟는다.


남자는 밟은 돌에 뒤꿈치가 미끄러지면서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자빠진다. 금세 일어나 엉덩이에 뭍은 모래를 털더니 양 손바닥을 엉덩이 부위에 놓는다. 엉덩이가 물에 젖었는지 양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고선 엉덩이 부위 바지와 팬티를 살에서 떼어내려 잡고선 뒤로 당긴다.


남자는 엉덩이에 양손을 집어넣고선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계곡 바짝 붙어 반바지와 팬티를 벗는다. 팬티는 흐르는 물에 헹구더니 있는 힘을 다해 짜내지만 쉽게 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내 입었던 팬티를 다시 벗어 작은 돌 위 살며시 내려놓는다. 주변을 한 번 더 훑어보더니 재빨리 반바지를 힘껏 비틀어 물기를 짜내고선 반바지를 허리춤에 걸친다. 방금 전 옆에 놓았던 팬티를 반바지 앞 주머니에 돌돌 말아 구겨 넣고는 텐트를 향해 처벅처벅 움직인.


여우는 일회용 가스버너에 연료가 떨어졌는지 불이 르륵하고 꺼진다. 그러자 냄비에 끓인 물이 식기 전, 바로 옆에 놓여 있던 종이컵에 물을 채운다. 반보다 조금 넘치게 붓더니 믹스커피를 절반정도 마신다. 가스불이 꺼지자 텐트 안이 싸늘해진다. 여우는 열린 텐트 뒷부분 출입구 부위에 있던 자크를 위로 올려 온기가 새지 않게 바깥 천바짝 올린다.


살쾡이는 텐트가 닫히고 남자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 상태를 확인하고서는 텐트 뒤로 살살 접근한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텐트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니 여우가 반쯤 몸을 감은 상태로 앞쪽을 향해 굼벵이처럼 누워있다. 저 앞에서 남자는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어그적 거리며 텐트로 다가온다. 살쾡이는 20보 정도 떨어진 거리로 물러선다. 조금 후 텐트 안에서 여우가 남자에게 애원하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너무 추워요, 안아주세요"


"추워요, 따뜻하게 해 주세요"


여우의 속삭이는 소리에 절망한 나머지 살기를 품은 살쾡이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자 썩은 다리를 계곡에 담근다. 문득 여우가 혈압이 낮다며 동네 병원에 같이 방문해서 처방받은 일을 기억한다.


텐트 안에서 또다시 송이 향기가 진하게 흘러나오자 무언가를 다짐한 살쾡이는 산기슭 텃밭에 농작물을 심기 위해 쟁여놓은 잡초제거용 멀칭 비닐을 끊어와 모래댐을 쌓기 시작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텐트 안이 조용하다. 누런 살쾡이는 멀칭 비닐로 만든 댐을 한순간 무너트려 텐트가 물에 잠기도록 계획한다. 두 시간 정도 되었을 때 쌓아놓은 모래댐 수위가 무릎정도 오르자 물길을 튼다. 작전은 실패다.


다리 밑에 설치한 텐트 모래톱이 높아 텐트가 물에 잠기지 않고 물줄기가 텐트 아래로 흘러내린다. 수몰 작전이 실패하고 다음 작전을 계획하고 있을 때 텐트에 불이 켜지더니 남자가 텐트 밖으로 다급하게 나온다.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더니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얼마 뒤 119 구급대가 도착하여 여우 입에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부착한다. 호스에 연결된 주머니를 눌러 폐에 공기를 공급하면서 들것에 여우를 싣는다. 남자는 반바지와 검은색 나시를 걸치고 구급차에 함께 타고 현장을 떠난다.


누런 살쾡이는 여우와 남자가 떠난 텐트 안을 확인하는데 수몰 작전이 성공했는지 여우가 누웠던 자리에 물기가  있다. 누런 살쾡이는 텐트 아래에 놓여 있던 여우 팬티와 수건에 깔려 있던 남자 팬티를 챙겨 산기슭 거처로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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